의료개혁 손 들어준 法 “의대생 손해보다 공공복리 더 중요”
필수·지역의료 회복 중요하다 봐
의대생 원고 적격성은 인정
재항고 밝힌 의료계 휴진 예고
의대 증원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한 항고심 법원은 정부의 증원 추진이 필수·지역 의료 회복을 위한 전제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 정부가 증원 규모도 향후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점을 감안하면 무리가 없다고 봤다. 의료계는 즉시 재항고 입장을 밝히며 대학 병원 일주일 휴진 등을 예고했지만, 재판부가 의대 증원을 ‘공공 복리’라고 인정한 만큼 투쟁 명분은 사라지게 됐다.
16일 법조계에서는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가 집행정지 항고심을 기각한 것을 두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행정 작용에 너무 선제적으로 판단하면 입법부 내지 행정부 역할을 하는 게 된다”며 “법원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맞느냐는 고심이 깔린 판단 같다”고 말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2000명이 맞느냐 1000명이 맞느냐는 건 행정의 내용의 측면”이라며 “그런 부분을 법원이 심사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집행정지 심문에서 “모든 행정 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2000명 숫자는 어떻게 나왔는지 최초 회의자료가 있으면 내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 때문에 항고심 판단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지만 재판부는 각하 또는 기각으로 결정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결정문을 쓴다면 인용이 나오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앞선 재판부 발언은 재량권 일탈 여부 등을 좀 더 꼼꼼히 따져보겠다는 취지 발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의대 교수 등에 대해서는 각하 결정을 했지만, 의대생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리며 원고 적격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대생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구체적 판단에서는 의대생이 일부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의료개혁이라는 공익적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의료의 질은 우수하나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지역 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2000명 증원 규모가 의사들과 합의되지 않은 수치라며 “주술적 영역”이라고 깎아내렸다. 재판부는 이번 결정에서 2000명 자체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집행정지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부가 의대 증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해 왔고 그 결과 이 사건 처분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는 의대생의 원고 적격을 인정받았으나 기각 결정이 내려진 것은 ‘무승부’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재항고 뜻을 밝혔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증원 백지화에 대한 기대는 낮아졌다. 증원 근거에 대한 의·정 다툼이 고법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재판부가 정부 손을 들어준 만큼 대법원 결정에서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본안소송이 이뤄진다 해도 입시안을 확정한 뒤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당장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기각된 이후에는 특별히 의료계에서 뭐를 더 할 게 없다”며 “이미 교수들도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근무를 줄이며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이날 법원의 판단에도 의료계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대비해 휴진 일정을 재조정하기로 했다. 최창민 전의비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각까지 됐으니 전공의나 학생들이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당장 병원들이 살아남는 문제가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의료계는 소모적인 갈등과 대정부투쟁을 거두고,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대화와 논의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유나 양한주 이경원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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