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올 대입 의대증원 ‘법원 허들’ 넘었다

신성식, 문현경, 남수현 2024. 5.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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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등 의료계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멈춰 달라며 낸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 구회근)는 16일 부산대 의과대학 재학생 5명, 연세대 대학병원 전공의 3명,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4명, 서울대 의과대학 준비생 6명이 모여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 대해 의대생이 낸 신청은 기각하고 나머지 전공의·교수·수험생이 낸 신청은 각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료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필수의료·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 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을 우려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질 자체는 우수하나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의료 위기의 원인 중 하나를 의사 수급 실패에서 찾은 것이다. 재판부는 “적어도 필수의료·지역의료의 회복·개선을 위한 기초 내지 전제로서 의대 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배치를 잘 못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장이 달랐다. 결정문에서 “이러한 상황(의료 위기)을 단지 현재의 의사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용진(의사·법학자)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이번 신청이 기각된 것은 의대 증원 정책의 명분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정책 추진 절차에 하자가 없고, 정책 논의 과정이 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일부 미비점이 있지만 무산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정문에서 “지난 정부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는데”라고 강조한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나 현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해 왔다”고 밝혔다. 이는 “2000명 증원 정책의 근거가 없고,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재의 증원 규모가 다소 과하다면 향후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해 증원 규모나 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부 “의료계, 사법부 결정 존중해달라”…단체행동 자제 당부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기각 등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는 이번 결정에 큰 기대를 걸고 정부의 재판부 제출 자료를 공개하는 등 여론전을 폈지만 판을 뒤집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다. 다만 항고심 재판부는 의대 증원 절차를 멈춰선 안 된다는 결론은 1심과 같았지만, 신청인들 가운데 의대 재학생들의 신청 자격을 인정한 점에선 달랐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이 사건 1심을 포함한 7건에선 교수·전공의는 물론 의대생들도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서 신청 자격이 없다며 모두 각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하지만 “의대생들은 증원 처분으로 인해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돼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신청인 자격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의대 재학생들이 입을 손해에 비해 의대 정원 증원 중단에 따른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봤다.

신청인들을 대리한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결정 직후 “회복할 수 없는 손해와 긴급성이 인정된 점은 의료계의 승리”라면서 “다만 공공복리를 우선한 점을 감안해 일단은 무승부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고법의 나머지 사건과 함께 대법원의 판단이 필요불가결할 것”이라고 재항고 의사를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한 총리는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았지만 오늘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이 큰 고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이어 “아직 학칙을 개정 중이거나 재심의가 필요한 대학은 법적 의무에 따라 관련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예정대로 5월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 입학전형 시행 계획을 승인하고 각 대학별 모집인원을 발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한 총리는 “사법부 결정을 존중해 달라”며 단체행동을 예고한 의대 교수들에게는 자제를 요청했다. 또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도 “돌아와 달라”고 당부했다.

김경진 기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법원이 의대 증원을 공공복리에 있어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한 것을 환영한다”며 “증원 과정에서 의대 교육의 질이 하락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예산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정광재 대변인은 논평에서 “의대 증원 정책이 정부의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 결정”이라며 “의대 증원은 국민적 요구이자 공공·필수·지방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시대적 개혁 과제”라고 말했다. 반면에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법원 판단은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대원칙을 확인해 줬을 뿐”이라며 “정부가 법원 결정을 빌미로 한꺼번에 2000명을 늘리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혼란과 갈등은 더욱 격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법원 결정과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가 급히 머리를 맞대 증원 규모를 조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은철(예방의학) 연세대 의대 교수는 “의학 교육 여건을 고려하면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도 무리고, ‘백지화’만 주장하는 의료계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것”이라며 “양측이 절반씩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 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히 논의한 뒤 증원 규모를 정하는 게 해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문현경·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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