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 "미애로합의봐" 반감 컸다…민주당도 놀란 우원식 이변
국회의장 후보를 뽑기 위해 16일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추미애 당선인을 꺾었다. 경선 결과 발표 직후 당선인 총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이 “오…”라고 탄식할 정도의 이변이었다. 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당 경선으로, 정식으로 국회의장이 되려면 본회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의석(171)이 과반으로 우 의원은 22대 국회 상반기 국회의장이 확실시된다. 우 의원은 “앞의 국회와는 완전히 다른 국회가 될 것”이라며 “여야 협의를 중시하지만, 민심에 어긋나는 퇴보나 지체가 생긴다면 국회법에 따라 처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총회를 겸한 경선이 열렸던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빠져나오던 당선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경선 직전까지 “추 당선인이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명심(明心ㆍ이재명 대표 의중)’ 경쟁을 하던 정성호 의원과 조정식 의원이 12일 각각 자진 사퇴와 후보 단일화로 추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용민ㆍ김민석 등 친명계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추 당선인 지지를 선언하고, 친명계 핵심인 박찬대 원내대표가 물밑에서 조 의원(5일)과 정 의원(6일)을 개별적으로 만나 사퇴를 권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우 의원을 돕던 의원들조차 “너무 큰 표차로 지지 않게 해달라고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ㆍ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었다. 노골적인 교통정리에 의원들의 반감이 커졌다. 정치권에서 매우 드물게도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후보를 교통정리 하는 일이 벌어지자 중진의 반감이 특히 컸다고 한다. 한 중진 의원은 “3선짜리가 5선과 6선을 정리하러 다니는 게 말이 되나”고 비판했다. 22대 총선에 불출마한 우상호 의원이 “후보들이 어떤 권유를 받고 중단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결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한 것도 파장을 일으켰다. 한 재선 의원은 “다들 경선 결과를 재미있어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교통정리가 오히려 반감을 키웠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추 당선인으로 분위기를 몰아간 강성 친명 지지자들의 팬덤도 독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일부 당원들은 ‘미애로합의봐’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추 당선인을 지지한다는 2만여명의 서명을 들고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갔다. 당선인들에게는 “추미애를 뽑으라”는 문자 폭탄도 배달됐다고 한다. 그러나 “당원들 문자 폭탄을 받아보니 무섭다기보단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초선 당선인)는 반응이었다. 한 중진 의원은 중앙일보에 “원외에 있는 몇몇 스피커들이 유튜브에 나와 당원들에게 바람을 넣고, 당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당원 여론을 무기로 의원들에게 하명을 내리는 식의 정치가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우 의원과 추 당선인의 서로 다른 경선 접근법과 캐릭터도 표를 갈랐다고 한다. 우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은 물론 개별 당선인들 집과 지역 사무실까지 샅샅이 훑으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우 의원 측은 “초선 당선인들도 이런 우 의원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문재인계나 당의 주변부 인사들이 우 의원에게 결집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숫자가 압도적이진 않더라도, 이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경우 힘은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의원이 당 을지로위원회, 더좋은미래, 민주평화국민연대 등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우군도 다수 확보하고 있었다.
반면, 추 당선인은 개별 의원을 접촉하기보단 “이 대표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연히 과열이 되다 보니 우려가 큰 것 같다’는 말씀을 주셨다. 이 대표가 다른 후보에게는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한다”, “당심이 곧 명심이고 명심이 곧 민심” 같은 말로 공중전을 했다.
추 당선인에 대한 반감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한 재선 의원은 “추 당선인이 과거 환노위원장을 하면서 당 방침을 거슬렀다는 건 중진 정도만 기억하겠지만,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 여론의 역풍을 불러일으켰다는 건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며 “이런 식의 돌출 행동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을 거로 본다”고 전했다. 이 대표의 한 측근도 “추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전례가 있다”며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 또 어떤 일을 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추 당선인의 승리를 낙관하던 친명계는 혼란스러운 상태다. 정청래 의원은 경선 직후 페이스북에 “당원이 주인인 정당,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상처받은 당원과 지지자들께 미안하다”고 썼다. 여당에선 “강성 지지층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추미애 당선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원식 의원을 선택한 민주당이 무섭다”는 반대의 평가가 나왔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중도층을 향한 민주당의 변화가 두렵다”며 “선택의 기준은 대선 승리에 누가 더 도움될까 하나였다. 앞으로 민주당의 모든 기준은 대선 승리뿐”이라고 썼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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