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신혜선 연기 내공이 완성한 '그녀가 죽었다'
[장혜령 기자]
▲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
ⓒ ㈜콘텐츠지오 |
부동산 정보를 올리며 커뮤니티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가진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는 사실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악취미가 있다. 편의점이나 버스에서 온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생활을 염탐하는 낙도 포함. 고객이 믿고 맡긴 열쇠로 빈집에 들어가 염탐하는 이상한 습관의 소유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레이더에 새로운 인물이 걸려들게 된다. 소시지를 입에 물고 비건 샐러드 사진을 포스팅하는 겉과 속이 다른 여자 한소라(신혜선)다. 그날부터 구정태는 한소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으며 몰래 스토킹하면서 스릴을 즐겼다.
관찰 152일째가 되던 날. 구정태는 한소라의 집을 찾았다가 피 칠갑이 된 채로 소파에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줄행랑치게 된다. 사건의 목격자지만 떳떳하게 경찰에 나설 수 없던 만큼 그로 인해 살인 누명에 짓눌리자 억울함이 쌓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사망은 좁혀오고, 오영주(이엘) 형사와 대치하며 원치 않는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그저 보기만 했다고 주장하는 남자, 이 남자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
ⓒ ㈜콘텐츠지오 |
<그녀가 죽었다>는 극호감인 배우가 극비호감 캐릭터를 연기하는 차력쇼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관음과 관종의 서로 다른 캐릭터는 동정, 공감, 이해해 줄 마음이 털끝만큼도 생기지 않지만 끝까지 보게 되는 끌림이 있다.
기묘한 마음은 10년 전 김고은과 이민기 주연의 <몬스터>(2014)를 떠올리게 한다. 또라이와 사이코의 맞대결은 신선했다. 동네 '미친 여자'로 불리는 여성과 냉혈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파격적 캐릭터의 등장을 알렸던 영화였다. 두 배우는 현재 최고의 연기력과 인기로 스타가 되었다.
10년 후 <그녀가 죽었다>는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남자와 남에게 일상을 보여주기 바쁜 여자의 잘못된 만남을 주선한다. 누구에게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두 배우의 깊은 내공으로 캐릭터를 빚어 입체성을 부여한다. 이미 관음, 관종, 인플루언서, BJ, 스토커 등 범죄 영화 속 익숙한 소재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독특한 스타일의 스릴러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다. 이해 받을 수 없는 캐릭터를 제대로 해냈을 때, 배우의 연기는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녀가 죽었다>는 변요한, 신혜선 두 배우에게 플러스가 될 영화다.
김세휘 감독은 "비정상, 비호감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게 위험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SNS라는 현대 사회의 소통 방식을 막을 수 없고, 부작용까지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관객이 동정할 틈을 주지 않도록 해야 했다"라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두 사람의 내레이션이 전후반에 교차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해 불가인 캐릭터의 행동을 조금이나 전달하기 위해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치다. 초반 구정태를 통해 관객은 구정태의 시점에서 관망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듯한 목소리에 따라 극에 몰입할 수 있다.
▲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
ⓒ ㈜콘텐츠지오 |
구정태의 내레이션은 밖으로 향하는 말투라 친근하고 직접적이다. 본인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마음대로 고객의 집을 드나든다. 고장 난 전등이나 문고리를 고쳐주기도 하는데 스스로 착한 일을 하는 거라며 주문을 건다. 그때마다 전리품처럼 없어져도 티 나지 않을 물건을 하나씩 가져온다.
집에는 벽 하나를 완전히 차지하는 개미굴이 있고 은신처 창고에는 물건을 전시하는 악취미를 가졌다. 겉으로 봐서는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 호감형의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범죄자일 뿐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반면, 한소라의 내레이션은 안(내면)으로 향하며 끝까지 자기를 연민한다. 명품 가방 주인이 화장실 간 틈을 타 자신의 것인 양 사진을 찍어 포스팅하는 모는 걸 거짓으로 꾸미는 인플루언서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서슴없다. 유기 동물 임시 보호 및 다수의 봉사활동을 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따뜻한 인물처럼 보이나, 후원금을 받으려 끔찍한 일도 벌이는 섬뜩한 인간이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비뚤어진 자아는 더 높은 이상향을 만들어 냈다. 끊임없이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해 스스로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잘못한 게 전혀 없고 주변 환경, 남의 탓이라며 끝까지 합리화하는 모습도 가증스럽다.
▲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
ⓒ ㈜콘텐츠지오 |
영화는 결국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이 있을 뿐 누구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하자 '당신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며 영원한 시선으로 박제한다. 모든 범죄는 방관조차도 유죄임을 직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 소름 끼치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나만 아니면 되지', '나는 아니야'라는 생각은 언제라도 가해자가 된다는 서늘한 경고를 주되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병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다양한 민낯 종합선물 세트다. 두 배우는 부정적인 이미지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열연했다. 이는 마치 은퇴작 소리를 들었던 <마스크걸>의 주오남(안재홍)이 깔아 놓은 레드카펫을 걷는 또 하나의 문제적 캐릭터가 될 것만 같다.
변요한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영화가 끝나도 비호감 구정태를 혐오하길 바란다"며 캐릭터에 일침을 가해 철저한 대리만족감까지 쌍끌이 한다. 변요한의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으로 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가 생각보다 화력이 세다. 신혜선도 특유의 딕션을 무기로 복잡한 내면의 안하무인 인플루언서를 맛깔나게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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