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었는데 일 시킬 궁리만... 불신 생길 수밖에"

장영우 2024. 5. 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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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강규형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SPL지회장 인터뷰

[장영우]

2년 전 10월 15일 새벽, 평택 SPL(SPC 계열의 빵 생산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하였다. 이후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벌어졌고, SPC그룹은 잘못을 시인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총 1000억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SPC그룹 계열사인 샤니 성남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한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한편 SPC 그룹의 황재복 대표는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하고 승진 인사에서 불이익을 준 혐의로 올해 3월 구속되었으며 같은 혐의로 SPC 허영인 회장까지 구속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 있는 SPL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4월 중순 평택 SPL 근처의 카페에서 강규형 지회장을 만났다. 
 
 SPL지회 강규형 지회장
ⓒ 장영우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SPL 노동조합 지회장 강규형입니다. SPL에서 1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소보로 라인에서 빵 만들고 빵 만드는 기계를 분해하여 청소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SPL 평택공장은 동양 최대 규모의 빵을 만드는 공장인데요. 직원은 1300명이나 됩니다. SPL 평택공장에서 전국 파리바게뜨에서 판매되는 빵과 케이크의 80%를 생산합니다. 빵뿐 아니라 던킨 도너츠,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 사망 사고 발생 후 현장이 달라졌나요. 

"안전에 관한 피켓 만들어 구호를 외치고, 일터 곳곳에 플래카드는 많이 붙여놓았습니다. 사고 이전보다 인력을 좀 더 충원하긴 했고 휴식시간이 확보되고 연차 쓰는 게 좀 더 자유로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여전히 빵 만드는 기계에 불량이 많이 나서 일일이 손으로 불량을 고쳐가며 해결하고 있습니다. 빵 만드는 기계를 교체하고 불량을 줄여 사람이 기계와 접촉하는 기회를 줄이는 것이 사고를 막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기계 교체하는 데 비용이 든다고 중고로 계속 돌려쓰고 있습니다. 불량은 계속 생겨 기계에 몸을 넣고 반죽을 빼는데, 하필 그때 기계가 돌아가면 사고가 나는 겁니다.

또, 생산속도도 줄여야 합니다. 사고 이후 기계에 안전장치는 더 달았지만 작업량과 생산속도는 그대로면 안전장치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일을 적게 하면 진급도 안 시키고 수당도 덜 주니 적게 할 수도 없어요. 안전을 위해 생산속도를 줄여야하고 인력을 충원해야 해요."

- 근무 환경은 어떻습니까.

"세상을 떠난 SPL 노동자는 10시간 야간 근무를 하고, 교대 시간 2시간을 앞둔 시점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당일 너무 힘드니까 쉬겠다고 했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고 새벽까지 일 시키다가 사고가 난 겁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야 맞교대를 하고 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하는 주간조,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근무하는 야간조가 2교대로 근무하는 겁니다.

사고 나기 전에는 8분 휴식을 주었습니다. 2시간마다 15분 주는 데 청소하고 휴식하라니깐 실제로는 10분도 안됐지요. 휴식시간은 밥 먹는 시간에 포함되었고, 이마저도 안 줄 때도 있었습니다. 휴식시간 확보를 위해 사측과 많이 싸웠습니다. 사고 이후 휴식시간은 지켜주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연차를 쓰려면 경위서를 내라고 했습니다. 연차 쓰는 게 잘못도 아닌데 경위서라니 말도 안되지요. 심지어 경위서 쓰면 관리자들이 찢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인원이 조금 충원되고 연차를 쓸 수 있는 건 좋아진 점입니다. 아직도 연차 쓰려면 인원이 없다고 제한하는 부서도 있긴 합니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안 좋으니 가맹점이 늘지 않고 매출이 떨어져 일거리가 좀 줄었습니다. 그래서 물량이 많지 않아 노동강도가 좀 약해진 점은 있습니다. 올해 급여도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겨우 2% 올랐습니다. 회사가 일부러 인원감축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일터에서 기계 소음이 심해 소음 측정 해달라고도 해보고 빵가루 먼지가 많이 힘들어서 회사에 개선을 요구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입니다. 이런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신입자가 들어와도 견디지 못하고 얼마 일하다가 퇴사합니다. 그래서 장기 근속자가 거의 없어요. 숙련자가 없으면 일하다가 사고 날 확률은 더 높아지게 됩니다."

- 그간 산재는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저도 손에 상처가 몇 군데 있습니다. 몇 번 손이 잘릴 뻔 했습니다. 돌아가는 임펠러(회전날개)에 손이 끼었습니다. 딱 물려서 돌아가는데 주먹을 쥐어서 그나마 손이 잘리는 건 모면했습니다. 그간 산재사고도 많았지만 산재 신청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다쳐서 깁스하고서도 일을 하러 나왔습니다. 산재신청은 안 되고 돈은 벌어야 하니까요. 커팅기에 걸려 손 잘린 사람이 많아요. 회사는 산재처리 안 하고 반장으로 승진시켜주는 것으로 무마했습니다. 관리자들이 안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 노동조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원래 한국노총 대의원으로 있었습니다. 4년 전 회사에서 상여금을 깎으려고 했습니다. 우리 임금체계가 기본금이 적고 상여금 비중이 커서 상여금이 중요해요. 조합원 동의 없이 상여금 깎지 말라고 소식지를 돌렸어요. 이후 미운털이 박혀 대의원 권한 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억울해서 거기 있을 수 없게 되어 4년전 민주노총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다수노조인 한국노총 노동조합은 회사와 결탁하여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피켓 시위 중인 강규형 지회장
ⓒ 강규형
 
- 소수노조로서 어려움이 많을 거 같습니다.

"지금 언론에서는 주로 파리바게뜨 노동조합 활동 탄압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SPC 그룹 다른 계열사에서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복수노조를 이용해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해 왔습니다. 여기 SPL에서도 우리 노동조합을 지속적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소수노조로 권리가 없는 상태인데 사측에서 탄압까지 하니 너무 힘듭니다.

제가 처음 노동조합을 결성하니 조합원이 288명까지 불어났습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업무시간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불렀습니다. 관리자한테 불려가 계속 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라인을 비우면 결국 옆에 있는 사람이 일을 더 해야 하는데 눈총을 받습니다.

이에 못 견디고 빠져나간 조합원이 많습니다. 민주노총 노조 탈퇴 할 때까지 계속 상담하면서 고립을 시키며 괴롭히는 거예요. 노조 탈퇴하면 승진시킨다고 회유하기도 했어요. 이런 건 부당노동행위예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소식지 돌리면 관리자들이 보고 찢어버리기도 했어요.

신입자들이 입사하면 노조사무실에 보내서 한국노총에서 유니온샵이라고 가입 원서를 받습니다. 우리한테는 얘기도 안 해주고요. 우리는 소수노조라 들어가지 말라고 한답니다. 소수노조가 있긴 한데 그건 이상한 데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런 것도 부당노동행위입니다.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고 승진도 안되니 우리 노동조합 가입하라고 이야기도 못 꺼내겠어요. 지금은 10명으로 줄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 임금과 복지, 노동안전조건을 개선시키려고 했지 회사와 싸워 이기려고 노동조합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사사건건 회사와 부딪치게 되어 저도 지금 힘든 상황입니다. 관리자들은 제가 피켓시위하면 몸을 툭툭 치기도 하고 심지어 빨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사측과는 적대적으로 되고 나를 고립시키니 직장 내에서 마음 터놓고 일할 수 있는 동료는 점점 없어져 버렸어요.

회사에 괴롭힘을 많이 당하고 울분이 쌓여 평택 근로감독관에게 찾아 갔더니 애들처럼 왜 그리 징징대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런 근로감독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고립된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열사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요즘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은요?

"2년 전 사고 났을 때 폴리스라인을 찍으려고 가봤어요. 근데 사람이 죽었는데도 옆에서 일을 하더라고요. 사망한 당일, 그 노동자가 소스를 많이 만들어 둔 게 아까워서, 버리지 못 하고 일 시킨 거라고 봅니다. 전량 폐기처분 했으면 거기서 일을 할 수가 없거든요. 사람이 죽었는데도 일을 시킬 궁리만 하는 회사에 충격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이러니 회사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현재 언론에 우리 회사가 오르내리니 사람들의 관심이 많지만 1, 2년 지나면 세상의 관심이 덜할 겁니다. 지금도 저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는데 관심마저 식으면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영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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