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힌 8명, '더 에이트 쇼' 선정성 통할까
[오수미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 포스터 이미지 |
ⓒ Netflix |
"쥐꼬리만 한 월급 그거 모아봤자, 서울에 집 한 채라도 살 수 있냐. 우리 세대는 더이상 그런 식으로는 미래가 없어. 제대로 된 돈은 투자로 버는 거야. 인생 한 방이야. 너한테도 아직 기회 있다?"
친한 형의 감언이설에 속아 9억 원까지 사채를 빌려 쓰며 투자했으나,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건물 외벽 청소 등을 전전하며 사채업자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배진수(류준열 분)씨의 사연이다.
지난 2021년 주식·코인 시장이 활황기를 맞으면서 많은 2030 젊은 세대들이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는 투기성 상품에 큰돈을 넣었다가 경제적 위기에 처했다. 오는 17일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The 8 Show(더 에이트 쇼) >(아래 <더 에이트 쇼>)는 바로 그 재테크 열풍에 뛰어들었던 한 30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매일 죽도록 일해도 점점 불어나는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 절망에 빠진 주인공은 모든 걸 끝내기 위해 양화대교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그 순간, 띠링 휴대폰 알림음과 함께 100만 원이 입금된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포기한 시간을 살 테니, 함께 하고 싶다면 차에 타라는 메시지와 함께 리무진이 눈앞에 도착한다. 1초에 100만 원씩 입금하며 메시지를 통해 말을 걸었던 미지의 상대방은 이렇게 주인공을 '쇼'로 초대한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 스틸 이미지 |
ⓒ Netflix |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자 배우 천우희, 류준열, 박정민, 문정희, 박해준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받았던 <더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이 되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2018년부터 연재되어 글로벌 누적 조회수 3억 뷰를 기록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 <파이게임 >을 원작으로 한재림 감독과 이현지, 송수림 작가의 각색을 더했다.
<더 에이트 쇼>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대성공을 전후로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생존게임' 포맷 열풍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작품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에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설정이나 서로 번호로만 호칭하는 것은 <오징어게임>, 시청자들이 볼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은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를, 층마다 상황이 다르거나 배송구로 음식을 내려보내야 아래층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부분은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더 에이트 쇼>는 이들보다 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자극을 선사한다.
화장실도, 창문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출연자들은 버티는 시간만큼 돈을 벌게 된다. 대신 휴지, 이불, 쓰레기통, 심지어 변기까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은 시중 가격의 100배를 내야 구매할 수 있다. 8층으로 구성된 건물의 곳곳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출연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처음엔 모든 게 평화로웠다. 출연자들은 음식을 층별로 나눠먹기로 하고, 팀을 나눠 이틀에 한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며 돈을 벌어들인다. 몸이 불편해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맨 아래층 사람 대신, 다른 사람들이 자진해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맨 아래층은 대신 위층의 쓰레기들을 방에 보관해 준다. 밀폐된 공간에서 형성된 작은 사회는 잠시나마 인간적인 형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런 생존게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사람들은 서로 배신하고 갈등하며, 쇼의 규칙은 가혹하게 변해간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 스틸 이미지 |
ⓒ Netflix |
<더 에이트 쇼>는 명백하게 우리 사회의 계급 간 격차를 은유한다. 8층을 선택한 인물(천우희 분)은 하루에 수억 원을 벌 수 있지만, 1층을 선택한 인물(배성우 분)은 겨우 그 1/50 정도를 벌 뿐이다. 물가가 100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본의 격차는 수천 배로 벌어진다. 벌어들이는 돈이 다른 만큼 권력의 크기도 다르다. 식량과 물은 8층에만 배달되고, 이를 분배할 수 있는 권력도 그의 손에 있다. 8층 사람이 아무에게도 분배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나머지 모든 인물들은 그대로 쫄쫄 굶어야 하는 셈이다.
권력의 격차는 착취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혹하게 변모한다. 약자를 착취하고 폭력을 가하는 장면들은 현실을 풍자했다고 하기에도 시청하기에 몹시 불편할 정도다. 사회적 연대를 배제하고 약육강식을 강조한 장면들은 여러 생존게임 콘텐츠에서 반복되었지만 여기서는 그 잔인성이 극한에 달한 듯하다.
'쇼'를 시청하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인 3층 배진수를 응원하게 되지만, 그가 앞으로 많은 돈을 벌어 행복하게 사회로 다시 나가 9억 원의 빚을 갚고 재기할 확률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시사회에서는 전체 8부 중에 5부만 공개되었다.) '쇼'는 배진수에게 '돈이 대체 무엇이길래'라고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쇼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끝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까지 가 닿을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콘텐츠 무한 경쟁의 시대에 론칭한 <더 에이트 쇼>는 매일 재미를 만들어내야 하는 참가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리고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한재림 감독 역시 가장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향을 선택했다. 이 전략은 또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시청자들은 '돈'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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