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된 부동산PF 부실, 해결책이 고작 이거라니

이태경 2024. 5. 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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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13일 신규대출 등 정상화 방안 발표... 금융기관 부실대출 늘어날까 우려돼

[이태경 기자]

▲ 부동산 PF 관련 정책 방향 발표 금융위원회 권대영 사무처장이 13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
ⓒ 연합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만큼 커지자 그동안 미봉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부가 마침내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을 13일 발표했다.

사업성 평가를 강화해 부실 사업장을 솎아내는 트랙과 사업성이 있지만 유동성을 겪는 PF 사업장에 금융권이 신규 대출을 해주는 트랙으로 진행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윤 정부의 부동산 PF 정상화 대책은 뼈를 깎겠다는 수준의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데다 금융권 부실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어 심히 걱정된다.

윤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PF대책의 골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3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230조 원 규모의 부동산 PF 시장 연착륙을 도모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사업성 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며, 사업성 평가 분류를 현재 3단계에서 4단계로 세분화하고, 사업성이 가장 낮은 4단계 사업장에 대해서는 경·공매 절차를 추진한다는 것, 은행과 보험권은 PF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으로 최대 5조 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을 조성하고, 1조 원대 캠코 펀드는 우선매수권을 도입해 자금 집행력을 높인다는 것이 정책방향의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리스크가 한국경제 최대 뇌관으로 부상하자 다양한 연착륙 방안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윤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대부분 부실이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윤 정부는 그간 부동산PF사업장에 산소호흡기를 대주는 방식을 선호하고 부실사업장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한사코 외면해왔다. 

하지만 부동산PF사업장의 부실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이번에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사업성 기준은 강화하고 가망없는 사업장은 경·공매도 추진

이번 대책이 기존의 대책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간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평가받아온 PF 사업성 기준을 강화해 '엄정한' 판별을 유도하기로 한 점이다. 쉽게 말해 가망이 없는 사업장은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현행 사업성 평가 등급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하고, 사업성 부족 사업장(유의·부실우려)에 대한 적극적인 사후관리를 유도하기로 했다. '유의' 등급 사업장은 재구조화와 자율매각을 추진하고, 사실상 사업 진행이 어려운 '부실우려' 사업장은 상각이나 경·공매를 통한 매각을 추진하도록 했다.

이를 상술하면 2회 이상 만기연장이 이뤄지는 PF 사업장에 대해선 만기연장을 위한 대주단 동의요건을 기존 3분의 2 이상 동의에서 4분의 3 동의로 강화하고, 만기연장 시 연체이자는 원칙적으로 상환토록 유도할 계획이다.

또한 6개월 이상 연체된 PF 채권에 대해선 3개월 내 경·공매하도록 원칙을 정하고 공매 시 실질담보가치를 반영한 최종 공매가를 설정키로 했다. 경·공매 미흡 사업장은 시가가 아닌 공시지가로 평가해 속도감 있게 정리작업을 진행키로 했다. 금융회사들은 다음 달부터 새 기준에 따라 PF 사업장을 재평가하게 된다. 금감원이 7월부터 평가와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에 나선다.

또 평가 대상에 기존 부동산 PF 대출 이외에 위험 특성이 유사한 토지담보대출 및 채무보증 약정까지 넣었으며, 평가 기관에 타 부처 관리·감독을 받는 새마을금고를 포함한 것도 특징이다. 이에 따라 PF 사업성 평가 규모는 작년 말 기준 약 230조 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금융당국이 그간 관리·공표해온 PF 대출 잔액 규모(작년 말 기준 135조6천억 원)에 비해 무려 100조 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가장 기본적인 통계가 이렇게 고무줄 늘어나듯 늘어나면 정부 통계의 신뢰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편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유의'·'부실우려' 등급) 대상 사업장 규모가 전체의 5~10% 수준일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사업장 규모(230조 원)를 고려해볼 때 23조 원 규모의 PF 사업장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23조 원 규모의 PF사업장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구조조정대상 규모가 적정한지는 의문이다. 구조조정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PF사업장에 최대 5조원까지 대출하기로 한 금융권
 
 19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전국 공동주택(아파트·다세대·연립주택) 공시가격을 보면 올해 서울 공시가격은 3.25% 올랐다. 25개 구 중 7개 구는 떨어졌고, 18개 구 공시가격은 상승했다. 가장 많이 오른 구는 송파구로 10.09% 상승했다.
ⓒ 연합뉴스
 
이번 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자금 확보 방안이다. 이번 대책에는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의 재구조화·정리에 필요한 자금은 공공·민간금융이 함께 대기로 하는 방안이 담겼다. 우선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충분한 은행·보험업권이 다음 달 1조 원 규모로 신디케이트론을 조성해 민간 수요를 보강하고, 향후 상황에 따라 5조 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규 자금 투입은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충분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과 보험사(삼성·한화생명, 메리츠·삼성·DB손해보험)가 일시 어려움을 겪는 우량 사업장에 1조 원 규모로 공동 신디케이트론을 조성하고,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최대 5조 원으로 규모를 확대키로 했다. 신디케이트론은 PF 사업성 평가 결과에 따라 경·공매를 진행하는 PF 사업장에 대한 경락자금대출과 부실채권(NPL) 매입 지원, 일시적 유동성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1조 1000억 원 규모의 캠코 펀드의 자금 집행 제고를 위해 우선매수권 도입도 추진한다. 캠코 펀드에 PF 채권을 매도한 금융회사에 추후 PF 채권 처분 시 재매입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매도자·매수자 간 가격 협상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캠코는 올해 중으로 새마을금고와 저축은행업권에서 4000억 원의 부실 채권을 추가 인수하기로 했다.

또한 사업성이 충분한 정상 사업장에 대해서는 자금 공급을 충분히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워크아웃 등 건설사 이슈나 자금 조달 애로를 겪는 정상 PF 사업장이 공사비 증액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추가 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구조조정은 회피하고 금융권 부실은 커지는 것 아닌지? 

부동산PF문제가 국민경제의 뇌관으로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던 윤 정부가 뒤늦게나마 부동산PF대책을 들고 나온 건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윤 정부의 이번 부동산PF대책에는 두 가지의 치명적 문제점이 내장돼 있다. 하나는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정말 확고한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구조조정이라는 건 정말 인정사정이 없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자칫 건설사와 대출기관 살리기에 미련을 두는 순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부동산PF사업규모 및 금융당국이 제시한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규모를 보고 있으면 윤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미심쩍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권에서 무려 5조 원까지 PF 사업장 정상화를 위해 대출 해주도록 유도하겠다는 부분이다. 정부가 다양한 인센티브를 내걸긴 했지만 금융권이 부동산 시장이 언제 회복될지 기약도 없는 마당에 흔쾌히 부동산PF사업장에 돈을 밀어넣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으로선 금융권이 정부 눈치를 보느라 피같은 돈을 부동산PF사업장에 넣을 가능성이 높은데, 만약 이 돈들이 부실화되면 그 책임은 대관절 누가 진단 말인가? 

윤 정부의 이번 부동산PF정상화 대책이 자칫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금융권의 부실만 키우는 최악의 패착이 되진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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