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가증스러운 얼굴로 죽음마저 관심 도구로…
"공감할 수 없어 뒤틀린 욕망으로 표현"
밉살스러운 편집증 연기, 주체 고민 부재 메워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관종은 관심과 종자의 합성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보편화되면서 시대를 지배하는 증상으로 대두됐다. 기존 존재론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타자가 사라질수록 돋보이는 속성부터 이해해야 한다. 관심을 얻으려는 충동에 폭력성이 내재할 수밖에 없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서 한소라(신혜선)는 허공에 성을 쌓는 관종이다.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먹으면서 SNS에 비건 샐러드 사진을 올린다. 카페에서 옆자리 손님의 가방을 몰래 찍어 자기 물건처럼 포스팅하기도 한다. 관심을 끌고, 모으고, 벌고, 축적하는 행위로 삶을 지탱한다. 그 외에 다른 이상이나 목적은 없다.
신혜선은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로 활동하나 일상까지 거짓으로 꾸미진 않는다"며 "한소라를 조금도 공감할 수 없어 뒤틀린 욕망으로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관객이 동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증스러운 얼굴을 극대화해 표현했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처럼 나타나길 바랐다. 영화 중후반에 한소라의 내레이션이 배치돼 있다. 자기 연민으로 채워져 있어 혹여 관객이 불쌍히 여길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과잉된 표현으로 그럴 여지를 원천 봉쇄하고 싶었다."
과도한 연기는 장르적 재미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근저에 흐르는 정신세계가 생략돼 그 이상의 의미까진 부여하지 못한다. 바로 주체의 상실이다. 관종은 대상과의 절대적 관계를 팔로워와의 상대적 관계로 치환함으로써 존재한다. '보이스(2021)'를 연출한 김곡 감독은 저서 '관종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관종은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사이-존재(inter-esse)'라는 새로운 존재성이 '존재'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가 바로 그 '사이'로 흩어져 사라진다. 관심은 관종의 모든 존재다."
한소라는 관심이 비난으로 바뀔 만한 약점을 구정태(변요한)에게 들킨다. 그래서 자기가 살해당한 듯한 상황을 연출한다. 구정태를 끌어들여 위기를 넘기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계획이 실행되는 순간 팔로워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차단된다.
그녀에게는 또 다른 위기이자 기회다. 지난 세기는 적어도 존재의 시대였다. 최소한 주체는 존재했다. 대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살아도 살지 않은 자들이고 죽어도 죽지 않은 자들이라서, 존재보다 시급한 문제가 없었다.
인터넷과 SNS를 타고 도래한 관종은 다르다. '좋아요'와 별풍선 모으기로 불안은 온데간데없이 해소되고 존재성은 충만해진다. 그러나 관심의 빛은 반사되지 않는다. 그렇게 될 타자, 즉 대상 자체가 없어서다.
한소라가 일상의 불안으로 자처한 고립은 잃어버린 주체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세휘 감독은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팔로워와의 관계에서 고조된 편집증 강도를 높여 긴장을 쌓는 데 몰두한다.
편집증은 가상 자아와의 동일시로 진행되는 자기성애 질환이다. 발달과 함께 심화하는 강박증과 달리 발달 이전으로 퇴행하는 유아기적 성향을 보인다. 자아를 보전하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꾸며내고 위조하기를 반복한다.
신혜선은 현실감을 상실한 증상을 망상으로 표현해 입체성의 결핍을 메운다. 그려낸 자아는 억압은커녕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또는 '나는 누구에게도 관심받을 수 있다'라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다시 SNS에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 그렇다. 신혜선은 "시나리오에 적힌 지문보다 더 밉살스럽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한소라가 오랜만에 켠 카메라 앞에서 납치됐다가 풀려난 피해자처럼 팔로워들을 속이지 않나. 분량은 짧은데 촬영을 앞두고 고민이 많이 됐다. 단순한 위선으로 부족해 보였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소시오패스의 얼굴이 필요했다. 이를 두고 제작진과 의견이 엇갈렸지만,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이중성이 나타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했다."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한소라는 자신의 새로운 확장을 확신한다. 중력마저 소거할 수 있다고 믿는 얼굴이다. 존재와 관심을 맞바꾸며 느낄 법한 저항은 조금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2018년 루이지애나주에서 전 여자친구를 겁박해 페이스북 라이브로 사과하게 하고 방아쇠를 당긴 조나단 로빈슨과 비슷하다. 그는 총을 쏘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 "다들 유명해지고 싶어 하잖아. 오늘 유명해지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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