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굴욕외교에 따라다니는 경제적 희생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2022년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일본의 기업인 단체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 대표단 접견에서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부터 허창수 전경련 회장, 윤 대통령,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 |
ⓒ 대통령실 |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의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네이버를 압박하는 상황은 정보력 면에서 국가권력에 뒤지지 않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통제 욕구를 반영하기도 하고,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층 심해진 자국 이기주의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와도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
윤 정부는 '역사에서 양보하고 경제에서 실익을 보상받는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한국의 '양보'가 일본의 눈에 '굴복'으로 비쳐질 경우에는 그런 보상이 힘들 수밖에 없다. 한 곳에서 굴복을 받아내면 그 여세를 몰아 다른 데서도 굴복을 받으려 하기 마련이다.
윤 정부는 한국이 '양보'하면 일본도 성의 표시를 할 것이고 이것이 미래의 경제관계에 유리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떠안기로 하는 박진 외교부장관의 제3자 변제 선언(2023.3.6)으로부터 열흘 뒤에 열린 한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그것이 나타났다. 3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역사문제 '양보'가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리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고자 했다.
"양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안보, 경제, 인적·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양국의 풍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 안보와 첨단과학뿐 아니라 금융·외환 분야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이 당시 윤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양국 경제인단체인 전경련(한경협)과 게이단렌을 함께 무대에 올렸다. 한국의 통 큰 '양보'가 대규모 한일 경제협력으로 이어지리라는 인상을 심어줄 만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인야후 모회사인 A홀딩스를 일본 소프트뱅크와 함께 경영하는 네이버가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게 됐다. 행정지도 명목으로 가해지는 이 압력으로 인해 네이버가 라인야후에 대한 지배적 권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내각 관방장관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행정지도 내용은 안전관리 강화와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 등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며 보안강화 조치에 네이버 지분 매각이 포함될 필요가 없는 듯이 발언했다. 한국 내의 반일여론을 진화하고자 이런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상황을 확단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명확한 의중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윤 정부가 굴욕외교를 은폐하며 경제협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가운데서 출현한 현상 중 하나는 위 공동기자회견 발언처럼 양국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일례로, 정상회담 1개월 뒤인 2023년 4월 17일에는 외교·국방 당국자들의 2+2 외교안보대화가 7년 만에 열렸고, 5월 31일에는 한일 특허청장 회의가 6년 만에 개최됐다. 나흘 뒤에는 4년 만의 국방장관회담이 제20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 참석 차 싱가포르에서 있었다. 6월 15일에는 문화장관회의, 29일에는 6년 만의 재무장관회의가 열렸다.
박정희 집권기 한일관계에서도
윤 정부와 기시다 내각은 자주 만나 긴밀히 협의했다. 그런 속에서도 일본 정부는 계속 역사왜곡을 하고 "독도는 우리 땅"을 주장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라인도 우리 기업'인 양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국의 굴욕으로 첫 단추가 꿰어진 윤 정부의 한일관계하에서 한국은 명확히 피해를 입고 있다.
굴욕외교 뒤에 피해를 입는 양상은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직후에도 있었고,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직후에도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와 1910년 국권침탈 직후에는 피해가 한층 확대됐다.
이런 일은 윤 정권의 대일외교 모델인 박정희 집권기의 한일관계에서도 있었다. 이 시기에도 한국 정부가 경제협력을 구실로 굴욕외교를 정당화하고 뒤이어 양국 각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한국 경제의 대일 종속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만성적자에 시달리게 되고, 일본 경제의 하청 비슷한 처지로 전락했다. 식민지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경제적 예속이 박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 직후부터 가속화됐다.
그것이 경제 예속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1960년대 후반에 있었다.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갖게끔 만드는 일이 이 시기에 추진됐다. 지금의 양국 장관들이 툭하면 머리를 맞대듯이 한일협정 직후의 두 나라 각료들도 그랬다. 1967년 3월 11일 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한일각료회의의 정례화가 그런 무대를 만들었다.
이 기사는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정기각료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며 "이 정기회의는 매년 한번씩 열게 되며 경제 문제를 포함한 한·일 양국 사이에 걸린 문제를 전반적으로 토의·조정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제1회 한·일 정기각료회의를 보도한 그해 8월 9일 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회의의 한국측 참가자는 경제기획원·외무부·재무부·농림부·상공부·교통부 장관과 국세청·수산청장 및 주일대사였다.
이때 일본 정부가 강력히 요구한 것이 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에 대한 조세 부과를 경감해달라는 요구였다. 한국에 주재하는 일본 기업들의 이중과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었지만, 실상은 한국 내에서 일본 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갖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굴욕외교 뒤에는
1967년 2월 4일 자 <동아일보>는 일본 정부의 제안으로 조세협정 문제가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2월 3일에 확인됐다고 보도했고, 동년 8월 10일 자 <매일경제>는 전날 도쿄에서 개막된 제1회 한일 정기각료회의 때 일본 정부가 "재한(在韓) 일본 상사에 대한 과세가 부당하게 높다"며 "한·일 양국의 원만한 경제 계류(系流)를 위해 조세협정이 조속히 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일을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양국 경제의 연계와 교류를 위해서는 일본 기업에 대한 조세 부과가 축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근한 협박을 담은 주장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 측은 한일협정 직후부터 조세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정기각료회의의 주의제였다. 결국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1968년 제2차 정기각료회의에서 조세협정의 원칙이 합의되고, 1969년 제3차 정기각료회의에서 조세협정이 가서명됐다. 뒤이어 1970년 3월 3일 이후락 주일한국대사와 아이치 기이치 외무대신이 '소득에 관한 조세의 이중과세 회피 및 탈세 방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협약(한일조세협약)'에 정식 서명했다.
협정 체결로부터 6개월 정도 흘러 이 협정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도가 높아진 뒤에 발행된 그해 9월 29일 자 <매일경제>는 미쓰이그룹 등이 혜택을 입게 됐다며 한국 정부가 입을 재정적 손실을 "영업세·소급면세규정으로 총 7억 5천만 원의 세수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가 크게 증대될 가능성이 엿보"인다며 일본 기업의 한국 활동이 용이해진 현실을 지적했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외교정책' 코너에 따르면, 2023년 12월 현재 한국이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총 99개국이다. 이처럼 지금은 이 협정이 흔하지만, 1970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1970년 3월 2일까지만 해도 한국과 이 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0개국'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훨씬 먼저 한국에서 세제 혜택을 입었다. 이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되고 한국 경제가 일본에 예속되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윤석열 정부처럼 박정희 정부도 일본과 머리를 맞대고 장관급 회의를 열었지만, 그 결과는 한국 기업의 피해와 한국 경제의 대일예속이었다.
이처럼 굴욕외교 뒤에는 경제적 예속이나 손실이 따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하에서 제2, 제3의 라인사태가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은 소리 소문 없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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