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때문 아니다, 이러다 가덕도신공항 망가진다" 설계업체 호소

강갑생 2024. 5.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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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자료 국토교통부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닙니다. 설계비가 적으면 (우리 회사는) 입찰 안 들어가고 다른 거 해도 됩니다. 하지만 공항사업이 망가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겁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지어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졸속 설계와 부실 공사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국내에서 손꼽는 엔지니어링사의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 가덕도신공항을 언급하며 이렇게 토로했다. 사연은 이랬다. 조만간 사업비가 10조 5000억원이 넘는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가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방식)로 발주될 예정이다. 국내 턴키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중앙일보 5월 13일 온라인 보도〉

여객터미널과 접근 교통망을 제외한 부지조성과 활주로·유도로·계류장·방파제·항행안전시설 등을 구축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가덕도신공항의 기초 뼈대를 만드는 중요한 사업이다. 모처럼 이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가 발주되면 설계와 감리를 담당할 엔지니어링업계, 시공을 담당할 건설업계 모두 반가워해야 일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하다.

엔지니어링업계로만 보면 우선 국토교통부가 책정한 설계비(817억원)에 대한 불만이 크다. 업계에서 주장하는 설계비는 1000억원이 더 많은, 최소 1800억원 이상이다. 양측의 계산 방식이 다른 데다 이를 놓고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못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설 예정부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마을 일대. 중앙일보


건설업계는 조달청이 밝힌 컨소시엄 구성요건을 두고 걱정이 많다. 상위 10대 건설사(시공능력평가액 기준)는 한 컨소시엄에 2개까지만 허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경쟁구도를 만들기 위한 취지라지만 건설사들로서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렇게 보면 얼핏 설계비를 더 올려주고, 컨소시엄 요건을 조금 완화해주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문제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거대한 장벽이 있다. 바로 너무 촉박한 공사기간이다. 조달청이 사전공개한 ‘입찰안내서’에 따르면 설계는 기본설계(150일)와 실시설계(150일)를 합해 10개월 이내에 끝마쳐야 한다. 그 뒤 공사는 60개월(5년) 내에 완료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엔지니어링업계 관계자는 “20~30m 깊이의 바다를 메워가면서 해야 하는, 국내에선 유례가 없는 공사를 위한 설계를 10개월 이내에 완벽하게 끝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새로운 공법을 검토하고, 실제 효과가 있을지를 판단해 설계에 적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바다와 육지에 걸쳐 조성되는 가덕도신공항의 입지적 특성을 고려하면 부등침하(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현상)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며 “이를 무시하고 10개월 만에 설계를 완료하라는 건 결코 합리적이지 못한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건설사들 역시 상대적으로 깊은 바다를 매립하면서 공항을 만드는 공사로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2029년 말 개항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국토부도 사업기간이 짧고, 변수가 많은 도전적인 공사라는 점은 인정한다. 이는 가덕도신공항의 개항 시기가 대거 앞당겨진 경위만 봐도 수긍이 된다. 당초 지난 2022년 4월에 공개된 가덕도신공항 사전타당성검토(사타) 결과에선 부등침하 등을 고려해 공항 전체를 해상에 건설키로 하고, 공사 기간도 9년 8개월로 잡았다. 이에 따른 개항 시기는 2035년 6월이었다.

자료 국토교통부


그러나 2030년 엑스포 유치에 힘을 쏟고 있던 부산시가 개항을 2029년으로 당겨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계획이 급변했다. 이듬해 4월 발표된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에서 해상공항 대신 육·해상에 걸친 공항으로 바뀌었고, 개항 시기도 무려 5년 반이나 당겨진 2029년 말로 변경됐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공항을 육상과 해상에 걸쳐 배치하면 해상매립량이 줄어 공사 기간을 2년 넘게 단축할 수 있고, 여기에 조기 보상착수와 부지조성공사 통합발주 등을 통해 공기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기를 5년 반이나 줄일 방안으론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그때도 나왔다. 또 애초 육·해상에 걸친 공항은 부등침하 우려 때문에 사타 때 최종단계에서 배제됐던 방안인 데다 공기도 9년 5개월이었다.

이처럼 개항을 크게 앞당기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오던 가운데 부산이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서 가덕도신공항의 공사 일정이 정상적으로 조정될 거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가덕도신공항 공사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말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가덕도신공항을 반드시 계획대로 제대로 개항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올해 들어서도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부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가덕도신공항의 2029년 말 개항을 재차 약속했다. 또 3월 20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선 “가덕도신공항이 2029년에 조기개항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끝까지 신경을 써달라”는 지역 인사의 요청에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초과해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토부로서는 개항 시기 조정은 감히 언급도 할 수 없는 ‘불가침의 성역’이 돼버린 모양새다. 논란이 되는 설계 기간과 공사 기간 모두 불변의 완공일을 기준으로 거꾸로 계산해서 나온 수치라고 한다. 부산 지역에선 개항 시기가 조정되면 자칫 사업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말 부산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가덕도 신공항이 온전한 글로벌 공항으로 개항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이 추진해 가겠다”고 밝힌 점까지 고려하면 가덕도신공항 사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은 현재로썬 거의 없어 보인다. 현직 대통령과 거대 야당 대표가 모두 추진을 약속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제대로 기능하는, 안전한 공항을 만드는 것이다. 바다에, 그것도 태풍도 적지 않게 지나가는 외해에 공항을 짓는 사업은 국내 엔지니어링업계와 건설업계에는 상당한 모험적 과제다. 이를 차질없이 해내려면 치밀한 설계와 세심한 시공이 필수다. 그러려면 그에 맞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무리한 속도전 속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자칫 국제적 망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고집만이 능사가 아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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