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막 기업]"내 손 거친 집만 150가구…고령 친화 인테리어 핵심은 '이것'"

박유진 2024. 5. 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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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내집연구소 대표

"제가 어르신 집수리에 참여한 것만 해도 150여 가구네요. 안전 손잡이, 바닥재 교체, 단차 제거 이 3가지만 있어도 어르신들을 위한 '배리어 프리' 환경이 어느 정도 만들어집니다."

이용민 내집연구소 대표는 학교에서 20년 동안 시니어 주거를 연구해온 전문가다. 주거환경을 전공한 그는 노인 맞춤 주택 관련 저서를 쓰고 노인·장애인 주거계획과 주택 개조 관련 연구과제에 다년간 참여했다. 그가 지난 2021년 고령자 맞춤 집수리 컨설팅 회사 겸 인테리어디자인업체인 '내집연구소'를 창업한 건 "필요하지만 없어서"였다.

이후 150개가 넘는 노인 가구를 수리하면서 쌓은 현장 전문성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자문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토교통부의 주거약자용 주택의 개조방안 마련 연구, 경기도의 주거약자를 위한 주택개조 매뉴얼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가올 고령화 시대에 '살던 집에서 늙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용민 내집연구소 대표는 20년 동안 학교에서 시니어 주거환경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사진=내집연구소

-창업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대학생 때부터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시니어 주거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엄청난 사명감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지도교수가 30년 전 미국에서 관련 연구를 했고, 한국에 와서도 했던 분이라 자연스럽게 나도 이쪽에 관심 갖게 됐다. 덕분에 박사학위도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주거계획 과정에 대한 연구로 땄다. 이후 건국대학교 산업기술연구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했다.

-직접 회사를 차린 이유가 궁금하다.

▲이론과 현장의 괴리를 느꼈다. 노인 주거 관련해 정부·지자체 연구개발 사업을 하면서 국가 제도와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늘 강조했는데, 잘 반영되지는 않더라. 그래서 직접 시공업체 겸 디자인업체를 차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을 통해 사업을 시작했다.

-총 몇 채의 집수리를 해왔나. 어떤 집을 수리했는지 궁금하다.

▲인천, 서울 등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고령자 맞춤 주택 수리 사업을 통해 150가구 이상 해왔다. 아무래도 지자체를 통한 사업은 공공의 지원이 있다 보니 소득계층에 제한이 있기는 하다. 오래된 빌라, 단독주택, 아파트 등 다양하고, 주로 20평대 이하가 많다. 개인적으로 의뢰가 와서 공사한 경우도 있다.

직접 가서 집을 살펴본 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컨설팅을 먼저 해준다. 어르신들의 행위를 관찰한 후 설치할 손잡이의 알맞은 위치 같은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긴다.

-노인 맞춤형 집수리에 꼭 필요한 3가지를 고르자면.

▲일단 기본적으로 안전 손잡이가 꼭 필요하다. 거치형, 부착형, 핸들형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가 있다. 두 번째로는 미끄러운 바닥재 교체다. 화장실 타일 등 넘어지기 쉬운 바닥재를 바꾸는 일이다. 세 번째는 단차를 없애 바닥 레벨을 맞추는 거다. 옛날 집들을 많이 수리하다 보니 문턱이 많다. 허리나 무릎이 안 좋고 걸을 때 균형감이 떨어지는 분들에게는 필수다. 이렇게 세 가지만 바꿔도 '배리어 프리'에 가까운 집이 된다.

이용민 내집연구소 대표가 집수리 대상 가구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수리 후 바뀌게 될 집 인테리어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내집연구소

-그렇게 집을 고치는 데는 얼마나 드나.

▲집마다 적정 수준이 다 달라서 통일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위 3가지를 다 고치려면 총 400만~500만원 정도 드는데, 인천시에서 공사비를 이 정도로 책정한다. 특히 노후화된 주택에서 사는 분들은 노후주택 수리 관점으로도 봐야 하기 때문에 좀 더 드는 것도 있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이 있어 재가급여를 받을 수 있는 분들은 복지용구 측면에서 지원을 더 할 수 있다.

-고령자에게 친화적인 집으로 만들기 위한 용품은 시장에 충분한가.

▲지금 고령친화 주택개조 용품이 있는 시장이 장기요양보험에서 복지용구를 살 때 쓸 수 있는 재가급여 시장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급여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용구 시장에는 18개의 한정된 품목만 있고, 그 기준이 엄격해서 조금만 새롭고 다른 기능이 들어가도 건강보험공단 급여 품목에 들어가는 복지용구로 인정받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욕조 거치형 안전손잡이나 의자 등이 필요한데 이런 제품들은 복지용구 시장에 진입 자체가 어렵다. 문제는 그래서 이런 제품들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도 시공할 때 일본 제품을 수입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제품이 훨씬 종류가 다양하다.

-시니어 주거 관련해서는 일본이 발달해있는 편이다.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할 점도 있지만, 벤치마킹하기에는 너무 다른 점도 있을 것 같은데.

▲먼저 주택 유형의 차이가 있다. 일본에 가면 단독주택을 쉽게 볼 수 있다. 자기 집을 짓고 관리하는 문화가 발달해있다. 나한테 맞춰서 내 집을 만들고 관리하는 게 발달한 문화 말이다. 그래서 노인이 됐을 때 집을 수리하고 개조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고령화 대응 주택 개조 사업이 활발해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주택이 이미 지어져 공급된 상태에서 구입한다. 주어진 공간에 들어가서 사는 입장이고, 정주성이 떨어진다. 집을 바라보는 관점도 자산 증식을 위한 매매 수단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셀프 인테리어 시장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지만, 미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어 노화 대응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이 든 몸에 맞게 수리가 필요한 데도 "고치고 나서 안 팔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부터 먼저 한다. 이런 이유로 현장에서 상담을 다니다 보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주택을 개조하지 말라고 말리는 경우도 본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연구와 현장을 연결해줄 수 있는 기업이 되고 싶다. 어르신을 위한 주택개조가 활발한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좀 더 시장이 발달하고 커져야 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가장 편하게 지내던 집에 있으면서도 안전사고에 처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집이 내게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만 아직은 고령친화 집수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할뿐더러 노인들이 알아서 정보를 찾아야 하는 단계다. 매뉴얼을 찾지 못해 자녀분들이 직접 시간과 품을 들여 집을 고쳐주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 '내가 늙어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은 노인들에게 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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