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블랙홀’ 된 피부미용시장…“정부 통제 필요”

신대현 2024. 5.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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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보완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공의들이 피부미용 분야로 빠져나가면 무용지물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 인력이 피부미용으로 쏠리지 않도록 필수의료 지원을 확충하는 동시에 미용시술 자격을 강화하고 불법시술은 엄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피부미용 분야가 필수의료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들이 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가운데 지난달 피부미용 관련 학회가 문전성시를 이룬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통상 1000여명이었던 해당 학회의 등록자 수가 올해는 1400명으로 늘었는데, 이 중 약 500명은 전공의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부미용 의사의 팽창에 대한 우려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에서도 제기됐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기구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며 보건의료 전문가와 정부 위원 그리고 노동자, 소비자, 환자단체 등이 추천하는 수요자 대표, 의료단체가 추천하는 공급자 대표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9월19일 제3차 보정심 의사 인력 전문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 참석한 A위원은 “미용성형 분야를 치열한 경쟁 시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미용성형 시술 유형에 따라 시술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조정해 나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B위원도 “의대 졸업 후 전공의 수련기간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15일 제7차 보정심 회의에서 C위원은 “의대 졸업생 중 15~20%는 인턴 수련을 받지 않고 피부미용 일반의로 빠진다는데 이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일반의(GP·General Practitioner)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딴 후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은 의사를 일컫는다.

필수과를 택했지만 중도 포기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전문과목별 전공의 중도 포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련 중도 포기 전공의 수는 총 342명이다. 이 중 내과 전공의 53명이 수련을 접었다. 다음으로 산부인과(20명), 소아청소년과(13명), 응급의학과(12명) 순으로 많았다.

소위 인기과와 비(非)인기과 간 양극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증을 따지 않고 인기 진료과인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분야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는 2017년 말 128명에서 2023년 9월 245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2023년 9월 기준 이들의 절반 이상인 160명이 피부미용 분야인 성형외과(87명)와 피부과(73명)에서 종사하고 있었다.

정부는 임상수련 경력이 없는 일반의들이 피부미용 분야에서 근무할 수 없도록 ‘임상의사 면허’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을 마친 의사만 개원할 수 있도록 하겠단 것이다. 지난 2월6일 보정심 회의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미용의료 기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와 관련한 국민 의료비 지출이 늘고 있다”면서 “미용의술에 대한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환자 피해가 없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의사들이 전공의 수련을 하지 않고 피부미용 분야로 몰리는 것은 위험 부담이 적으면서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보톡스와 필러 등은 의과가 아닌 치과, 한의과 병·의원에서 시행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과 임상 경력이 없어도 세후 월 100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도시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칭하는 ‘무천도사(無千都師)’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김동현 대한피부과학회 홍보이사(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는 1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흉부외과 등 바이탈과 의사가 더 이상 그 과 진료를 보지 않고 피부미용을 하는 게 대세가 된 것 같다. 그런 경향이 앞으로 계속될까봐 걱정이다”라며 “피부과 전공의는 기초연구도 많이 하고 다양한 피부질환을 두루 보는데 이들이 세태에 물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낮은 수가와 의료소송 부담으로 인해 생명을 다루는 바이탈과 소속 의사는 계속 줄어든다”며 “확실한 정책적 비전 제시 없이 의대 증원만으로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피부과 전문의들 사이에선 일반의를 포함한 타과 의사들이 미용시술을 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피부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에게 피부미용 시술이나 진료를 받았다가 감염, 괴사, 암, 실명, 병변, 화상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병원을 다시 찾는 환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권 전북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피부과 전문의 2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1.1%가 “비전문의가 피부과 의사를 사칭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86.7%는 “레이저, 보톡스, 필러 같은 피부미용 시술로 부작용이 생긴 환자를 경험했다”고 했다.

김 홍보이사는 피부과가 비단 미용 시술뿐 아니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피부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부과 임상 경험이 없는데도 병원 간판에 피부과를 전문 진료과목이라고 쓴 곳이 많다. 이들 병원은 전문적인 피부과 진료를 보지 않으며 미용 분야 중에서도 아주 일부만 진료한다”면서 “사람들의 오해를 일으키는 이런 문제는 정부가 통제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올해 피부과학회도 문제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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