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실학산책] 큰일 났다! 책을 안 읽는 세상

2024. 5. 16. 00: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18년의 귀양살이, 전라도의 땅끝 강진이라는 바닷가 고을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며 세월을 보낸 다산 정약용.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통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역적죄인으로 유배 사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폐족이 되어 출셋길이 막힌 불행한 가족이었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하마터면 좌절할 수도 있는 아들들,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편지를 통한 가르침을 계속하였다.

「 “짐승이 안 되려면 책 읽어야”
유배지 다산이 아들에게 당부
출판사·문인들 어려움 걱정돼
독서인이 없으면 미래도 없어

나는 오래전에 아들·제자·형님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를 그의 문집에서 찾아내 한문으로 된 글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했다. 1979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이름으로 ‘시인사’라는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뒤에 ‘창비’라는 출판사로 옮겨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독자들이 급감하면서 책을 사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반가운 독자의 감사글

다산 정약용이 숱한 저작을 남긴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중앙포토]

오늘도 나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꺼내 들고 이곳저곳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잊어가는 기억을 되살리며 삶에 대한 다산의 지혜를 기억해내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나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이 살아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에서다.

출판사들마다 아우성이고, 글을 쓰는 문사들도 안 팔리고 읽지 않는 책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편지에서 다산이 아들들에게 가장 간절히 강요하던 것은 독서하라는 이야기였다. 짐승은 독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짐승에 머물러 있지만, 사람은 독서를 하기 때문에 문명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면서 “짐승이 안 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다산의 목소리를 편지마다 들을 수 있다. “짐승이 되려고 태어났느냐”고까지 하는, 독서에 대한 극단적 강조는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바로 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읽지 않는 시대에도,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감동을 하였다는 글을 발견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책을 읽고 : 감탄하고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고귀한 삶과 학문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실감 나게 만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의 높은 학문, 뛰어난 인격. 절절한 애국심, 자식에 대한 한없는 애정, 공직자의 자세, 제자들을 향한 가르침, 더 좋은 세상을 그리며 세상을 바꿔나가려던 큰 뜻에 저절로 머리가 숙어졌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제가 꼭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것들입니다. 옆에 두고 자주 읽어야 할 책입니다. 18년간 귀양살이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배웁니다. 끊임없는 독서와 초서(鈔書·베껴 쓰기), 집필, 수많은 저서와 편지들. 덕분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살아있는 인생 교훈과 삶의 태도를 얻습니다.”

글 끝에는 편역을 한 필자에게 감사한다는 맺음말이 달렸다. “1979년 첫 편역부터 지금까지 헌신해 주신 덕분에 귀한 책을 읽게 됩니다. 읽는 내내 가슴 벅찬 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옆에 두고 자주 읽으며 가르침을 실천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독서하고 초서하고 글 쓰는 삶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다산 “독서는 인간의 본분”

책이라고는 읽으려는 생각이 사라져가는 세상이어서 큰일 났다는 불안을 떨굴 수 없는 오늘, 우연히 찾은 블로그의 글을 만나고 보니 너무 기뻐 ‘아니,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출판사가 큰일 났고 책방이 문을 닫는 요즘,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데 나라가 융성할 방법이 있겠는가.

『성경』을 읽어야 예수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 『논어』나 『맹자』를 읽어야 공자나 맹자의 사상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 어떻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다산 같은 탁월한 학자이자 경세가인 실학자의 책을 안 읽는다면 그분의 지혜를 어디 알아낼 수 있겠는가.

다산은 아들에게 “독서란 인간의 본분(本分)이니라”라고 가르쳤다. 인간이라면 실천해야 할 본분이 독서인데, 독서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출판사가 문을 닫고 책방이 없어져 간다면 인류에게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큰일 났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 고전도 읽어야 하고 신간의 책을 읽어야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속담이 새삼스러운 오늘이다. 책을 읽어 앎을 지니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본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