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로 내리꽂힌 '군인' 도지사들, 국립묘지에 묻혔습니다
[임재근 기자]
▲ 고광도 중장의 묘비(대전현충원 장군2-5호)에 ‘충북도지사’가 적혀 있다. |
ⓒ 임재근 |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을 둘러보다 보면, 비석 뒷면 장군들의 공적에서 특이한 이력을 발견하곤 합니다. 장군들이 군을 예편한 후에 국영기업 사장 또는 감사 등 기업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도지사를 역임한 경우도 있는데요, 이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군을 예편하지 않고 도지사를 역임한 경우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군인들 중에 도지사를 역임한 이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장군들이 군을 예편하지 않고 도지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때문입니다. 군사 반란에 성공한 군부는 자신들을 '혁명정부'라 칭하며, 5월 24일부로 전국 9개 도지사를 일시에 군인으로 임명해 발령합니다. 이때 도지사로 임명된 이들은 경기도지사 박창원, 강원도지사 이규삼, 충북도지사 고광도, 충남도지사 윤태호, 전북도지사 이존일, 전남도지사 송호림, 경북도지사 박경원, 경남도지사 최갑중, 제주도지사 김영관이었습니다. 김영관만 해군 준장이고 나머지는 육군 준장으로 이들은 당시 모두 준장 급이었습니다.
또 서울특별시장으로 육군준장 윤태일을 임명했고,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전주, 원주, 춘천, 수원 시장도 군인으로 임명했습니다. 서울특별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들은 중령 또는 대령 급이었습니다.
군부는 이후 '국가재건비상조치법(1961.6.6. 제정 및 시행)'을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고, 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 인구 15만 명 이상의 시의 장(長)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내각이 임명하도록 규정했고, 이외의 지방자치단체장은 도지사가 임명하도록 규정화했습니다.
1960년 4.19혁명 후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지방선거 대상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확대되어 처음으로 민선 도지사를 선출한 지 불과 6개월도 안된 시점이었습니다. 5.16군사쿠데타로 지방자치 시도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 1961년 5월 24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임명한 각도지사 및 시장들의 임명식 선서 사진. 왼쪽부터 경기도지사 박창원 준장, 강원도지사 이규삼 준장, 충북도지사 고광도 준장, 충남도지사 윤태호 준장, 경북도지사 박경원 중장, 경남도지사 최갑중 준장, 전북도지사 이존일 준장, 전남도지사 송호림 준장, 제주도지사 김영관 준장. 이날 임명장은 장도영 내각 수반이 수여했다. |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 고광도 준장에서 이어 충북도지사로 임명된 최세인 준장이 1962년 3월 20일에 송요찬 내각수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
ⓒ 국가기록원 |
최고통치기관의 지위로 설정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지방자치단체장 뿐 아니라 모든 권력 요직에 현역 군인을 배치했습니다. 5.16군사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는 처음에는 장도영 중장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리에 앉혔으나, 44일 만에 장도영을 의장에서 몰아내고 최고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부의장 박정희 등을 암살하려 했다는 소위 '반혁명' 혐의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내각수반을 겸하고 있던 장도영 등 44명을 1961년 7월 3일에 체포했습니다, 같은 날 장도영을 의장과 내각수반에서 해임했고 박정희를 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장도영이 겸했던 내각수반은 예비역 중장 송요찬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박정희는 내각수반마저 차지하면서 권력 독점에 나섰습니다.
▲ 1961년 11월 21일, 군복을 입은 육군 준장 윤태호 충남도지사가 충남도청 2층 대회의실에서 시장군수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충남역사박물관 |
▲ 경남도지사를 맡았던 양찬우 소장의 묘비(장군2-155호) 뒷면 하단에 적힌 이력에 ‘1961년 경상남도지사’가 적혀 있다. 양찬우 소장은 1963년 12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바로 내무부 차관에 임명되었고, 1964년 5월 제3공화국의 2기 내각 개편에서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7년부터 80년까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4선을 했다. |
ⓒ 임재근 |
서울특별시장 윤태일, 경기도지사 박창원, 충남도지사 윤태호, 경북도지사 박경원, 제주도지사 김영관은 1961년 5월부터 1963년 12월까지 2년 6개월가량의 모든 군정 기간 동안 지방자치단체장을 맡았습니다.
쿠테타 반성없던 도지사들
▲ 김인 준장의 묘(대전현충원 장군1-86호). 이재일 준장에 이어 1961년 8월 25일 전북도지사가 된 김인 준장은 민정 이양으로 전북도지사를 그만두고 군에서 예편했지만, 곧바로 경북도지사에 임명되었다. |
ⓒ 임재근 |
5.16군사쿠데타 당시 이미 준장급 이상이었던 9개 지역 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은 이미 국립묘지 장군묘역 안장대상에 해당되었기에 사후 대부분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 등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중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는 전북도지사를 지낸 김인 준장(장군1-86호),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는 충북도지사를 맡았던 고광도 준장(장군2-5호), 강원도지사를 맡았던 이용 소장(장군2-61호), 경남도지사를 맡았던 양찬우 소장(장군2-155호), 전북도지사를 맡았던 이존일 소장(장군2-306호), 충남도지사를 맡았던 윤태호 중장(장군2-502호)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서울현충원에는 전남도지사 김용관(제1장군-44), 서울특별시장 윤태일(제1장군-134), 강원도지사 이규삼(제1장군-163), 경기도지사 박창원(제1장군-250), 충북도지사 최세인(제3장군-6), 전남도지사 송호림(제3장군-54), 제주도지사 김영관(제2충혼당 504실 118호) 경북도지사 박경원(제2충혼당 506실 104호)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1961년 5월부터 석 달간 경남도지사를 맡았던 최갑중은 국립묘지 안장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최갑중은 1980년에 구속자 석방을 미끼로 5억원을 사취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데, 이와 관련성이 있어 보입니다.
5.16군사쿠데타는 4.19혁명을 미완의 혁명으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속에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임명된 군인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명하복의 전제조건은 정당한 명령일 때만이 성립가능한 일입니다.
▲ 전북도지사를 맡았던 이존일 소장의 묘비(대전현충원 장군2-306호)에도 ‘전라북도지사’가 적혀 있다. |
ⓒ 임재근 |
[참고자료]
"9개도지사와 9개시장발령 24일 혁명정부에서," <조선일보>, 1961.05.25.
"「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전문," <조선일보>, 1961.06.06.
"최고회의의장에 박정희소장 내각수반엔 송요찬장군 임명," <조선일보>, 1961.07.04.
"군정스태프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동아일보>, 1964.05.16.
"서울지법서 전 경남지사 3년선고," <경향신문>, 198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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