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유튜브로 보는 이유…“언론이 우리를 무시하니까”

한겨레 2024. 5. 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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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보살핌과 경청에 있다”

뉴스의 정파적 소비, 즉 보수는 보수 매체만, 진보는 진보 매체만 소비하는 행위는 나쁜 것일까. 정치학자들은 다른쪽 이야기를 듣지 않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행위가 이념이 다른 이들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고 타협 여지를 좁혀 민주주의를 위해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양당 정치 체계에 익숙한 이들은 왼쪽과 오른쪽 메시지에 모두 열려있는 부동층이 많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이들의 사라짐에 우려를 나타낸다.

언론학자들의 답은 좀 더 복잡하다. 이들 역시 당파성을 넘어선 ‘다른쪽 이야기 듣기’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연구 결과는 나와 생각이 다른 기사나 대화가 사람들의 견해를 거의 바꾸지 않는다는 점 역시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대의 다이애나 머츠 교수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야기에 노출된 이들이 반발심리에 오히려 기존 견해를 공고하게 한다는 점을 증명한 바 있다.

한국에서 정파적 언론 소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계산은 더더욱 복잡하다. 다른 나라에서도 고급언론 기피와 소셜미디어 쏠림 현상이 목도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특정 플랫폼(유튜브)의 우위가 두드러진다. 지난주 한국언론학회에서 권오성, 한지영, 김창숙(이상 카이스트) 등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에는 이러한 정파적 언론 소비가 우파가 아닌 좌파에서 더 두드러지고, 여기에는 정권과 보수 언론에 대한 반발심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정파적 언론 소비의 순기능을 논하는 학자들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적 만족감을 이야기한다. 기존 ‘점잖은’ 주류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비속어 등 찰진 표현, ‘사이다 보도’를 접하며 얻는 속시원함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개인의 심리적 효능을 넘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과 댓글로나마 교류하며 얻는 소속감 역시 정파적 언론 소비의 순기능이다. 북유럽 등에서 발전한 고급 당파적 언론은 특정 정당이나 직능단체의 이익을 넘어서 사회적 대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토대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극단적인 저급 매체로 사람이 쏠리는 것이 현실이다. 돌파구는 무엇일까? 미국 위스콘신대의 수전 로빈슨은 실험을 고안했다. 이를테면 <한겨레> 기자가 <한겨레>를 읽은 적도 없고 읽을 생각도 없는 극우 유튜브 애청자와 1 대 1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단 기자는 “저희가 독자님 같은 분을 다룬 기사에서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같은 질문을 던진 뒤 반박하지 않고 경청해야 한다.

기자와 대화한 독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분노에 차 있었다.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 반대 진영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단순화해 등장한다는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만 등장할 뿐 정말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이 연구의 놀라운 결과는 인터뷰가 종료된 뒤 설문조사였다. 애초 진보 혹은 보수 언론을 불신하고 혐오해 연구 대상으로 선정된 인터뷰 대상자의 셋 중 둘은 대화 뒤 해당 기자와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했다고 답했고, 심지어 셋 중 하나는 해당 매체 구독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기자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신뢰도가 급상승한 것이다.

이 연구는 생각이 다른 매체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파적 언론 소비의 기저에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빈슨은 미디어 불신과 편식을 극복할 새로운 저널리즘 원칙으로 ‘보살핌의 윤리’를 내세운다. 미네소타대 조안 트톤토가 강조한 관심 기울이기와 책임감, 역량, 배려, 연대성 등이 언론과 독자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와 독자 공동체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연대하는 행위가 언론의 미래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저널리즘의 미래로 보살핌을 그리고 경청을 이야기한다. 심리 상담을 받아본 이들은 안다. 의사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들어주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치유가 시작된다는 점을. 유튜브로 떠난 독자들을 돌리기 위한 언론의 노력에는 돌봄이 있어야 하고 그 시작은 경청에 있을 것이다.

서수민

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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