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갈등' 치닫는 한미약품 오너가…멀어지는 경영 안정

이춘희 2024. 5.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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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한미약품그룹 오너가 내부의 경영권 분쟁이 다시 시작됐다. 당초 분쟁이 자금 조달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만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일단락된 듯했던 분쟁의 뇌관이 다시 터진 것이다. 가족 내 지분이 서로 나눠진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방향키를 잡을 경우 다른 쪽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인 만큼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약품그룹 오너가.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과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14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대표(한미약품 그룹 회장)를 전격적으로 대표 직에서 해임했다. 지난달 초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와의 공동대표 체제가 발표된 지 불과 한 달여만이다. 회사는 공시에서 "경영 효율화를 위해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해임은 임종윤·종훈 형제 측과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이 임원 인사, 투자 유치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진 영향으로 전해진다. 특히 인사 문제의 경우 사내에 공지까지 됐지만 대표의 재가가 없었다는 이유로 열흘 만에 철회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공동대표 체제에서는 두 대표가 모두 합의하지 않으면 회사의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만큼 회사의 비전 재편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임 대표가 공동대표 체제의 전격 청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형제는 승자의 여유가 부족했고, 모녀는 패자의 인정이 부족했다"며 "가장 기본적인 인사도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어머니에 대한 해임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이사회 종료 후 기자들에게 "회사 발전에 속도를 빨리 내야 한다"며 속도감 있는 운영을 강조했다.

양측의 투자 유치 철학이 다른 점도 갈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모녀 측이 그룹 경영을 주도했던 약 2년여간 이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접촉했던 건 주로 전략적 투자자(SI) 역할을 할 수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바이오 기업이나 금호석유화학, 솔브레인, 한국콜마, OCI처럼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투자처를 찾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형제 측은 재무적 투자자(FI) 중심의 투자 유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 측이 주주총회에서 승리한 후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칼라일, 베인캐피탈, EQT파트너스 등 유수의 사모펀드들이 빠르게 원매자로 물망에 올랐다. 반면 송 회장은 올해 초 분쟁 과정에서 아들들에게 "지분을 값을 많이 쳐주겠다고 유혹하는 해외펀드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여러 차례 해외펀드에서 지분 매각 제안이 들어왔지만 모두 물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모녀도 FI인 사모펀드 에쿼티퍼스트홀딩스와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이는 5년 후 주식을 되사오는 환매조건부로 경영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매도에 나선 사안이었다. 모녀뿐만 아니라 임종훈 대표도 함께 매각에 참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송 회장이 이 같은 FI 유치 시도에 계속 거부감을 드러냈고, 그러면서 이번 대표 해임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는 제대로 된 투자를 유치하기가 어려워 이 같은 갈등이 이어질 경우 미납 상속세(2644억원)와 주식담보대출 상환액(5379억원) 등을 합쳐 8000억원이 넘는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오너가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형제 측(28.4%)과 여기에 합류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4%)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을 합쳐도 40.8%로 과반에는 못 미친다.

투자업계에서는 경영권을 절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과반의 지분, 또는 최소한 형제와 모녀 모두의 합치된 의사에 따른 지분 양도 없이는 쉽사리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불과 두 달 전까지 한쪽의 일방적 지분 매각 시도로 인해 내홍을 겪은 회사에 이 정도 보장도 없이 투자하는 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송 회장의 대표 해임으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다시 불거진 만큼 투심이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형제 측이 경영권 장악 후 가족과 회사의 화합을 강조하며 기존 인사를 크게 뒤흔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이번 송 회장 해임을 계기로 대대적인 인사 개편에 나설 경우 회사 운영의 안정성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모녀 측은 물론 형제 측까지도 과반 지분 매각에 대해서는 "자금 조달은 고려 중이지만 (50% 이상 지분) 매각은 말도 안 된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어 자금 조달은 더 어려울 전망이다. 자금 조달의 필요성은 있는 만큼 일부는 매각에 나설 수도 있지만 경영권을 넘기는 방식은 검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임종윤 이사 측 관계자는 "형제들에게 자금 조달 압박이 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임종윤 이사의 경우 자신이 100% 보유한 코리그룹의 지분 일부를 매각할 수도 있고, 임종훈 대표도 추가 담보대출을 받을 여력이 남아있어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도 상속세 납입 재원을 마련하는 게 완전히 어렵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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