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인 첫 퓰리처상 우일연 "한국 창의성 폭발, 자부심 느낀다"
“요즘 한국에서는 창의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쏟아져 나오는 창의성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저에게 진정한 자부심의 원천입니다.”
논픽션 『주인 노예 남편 아내』(Master Slave Husband Wife)로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한 한인 2세 우일연 작가는 13일(현지시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 작가는 “제게 감동을 준 한국 문학 작품과 영화가 너무 많아 하나도 빼고 싶지 않지만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는 ‘미나리’였고 소설 중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한국 예술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미국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지난 6일 우 작가를 제108회 전기(傳記) 부문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917년 창설된 퓰리처상은 뉴스ㆍ사진 등 보도 부문과 문학ㆍ드라마 등 비보도 부문에서 매년 수상자를 뽑는데, 한국계 사진기자가 보도 부문에서 수상한 적은 있었지만 비보도 부문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상을 받은 것은 우 작가가 처음이다.
『주인 노예 남편 아내』는 1848년 노예제가 있었던 미 남부 조지아주에서 흑인 노예 부부가 극적으로 탈출하는 실화를 다뤘다.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 사이에 태어나 피부색이 옅었던 엘렌 크래프트는 백인 농장주로, 남편 윌리엄은 엘렌의 노예로 각각 변장하고 노예제를 폐지한 북부를 향해 탈출했다. 탈출 성공 후 영국으로 이주한 부부는 1860년 『자유를 위해 1000마일을 달리다』(Running a Thousand Miles for Freedom)라는 책을 내고 노예제의 철폐를 외쳤다.
163년 전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부부의 삶이 우 작가의 손끝을 통해 “생명과 자유, 정의라는 미국의 교훈에 도전하는 러브 스토리“(퓰리처상 선정위원회)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출간 후 뉴욕타임스는 “소설적 디테일로 몰입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연구ㆍ스토리텔링ㆍ공감ㆍ통찰 등 모든 부문에서 탁월하다”며 그의 작품을 ‘올해의 책 10선(選)’ 중 하나로 꼽았다.
우 작가는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대학원에 다닐 때 크래프트 부부 이야기를 처음 읽고 매료됐다. 그 후 20년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생각했고 문헌과 사료를 뒤지면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다른 많은 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밝혔다. “책을 통해 특정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보단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공유하는 게 더 중요했다”는 그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크래프트 부부를 자유를 위해 도전하고 싸운 위대한 영웅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Q : 지난해 1월 책 출판 직후부터 주목을 받았는데 수상을 예감했나.
A : “아니다. 전혀 몰랐다. 세상의 반응은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찬사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
Q : 책을 쓰기 전 가장 영감을 준 게 있다면.
A : “엘렌 크래프트가 영감의 원천이었다. 자유를 향한 탈출을 다룬 정말 멋진 이야기에 큰 영감을 받았다. 1860년 출판된 『자유를 위해 1000마일을 달리다』에서 내러티브의 주인공은 남편인 윌리엄이었기 때문에 엘렌의 목소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엘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신문이든 기록자료든 편지든 닥치는 대로 다양한 문헌을 살펴봐야 했다.”
Q : 집필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A : “대학원에 다닐 때 『자유를 위해 1000마일을 달리다』를 처음 읽고 흠뻑 매료됐다. 그때는 이런 책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만 이후 20여 년 동안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를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그들은 원작에서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들이 답하지 않은 많은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그들에 대한 다른 종류의 책을 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Q : 원작과 차별화되는 메시지가 들어있어야 하지 않나.
A : “조금 조심스러워지는 얘기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게 더 중요했다. ‘스토리에 어떻게 생동감을 더 불어넣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했던 대목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분들은 크래프트 부부를 자유를 위해 싸운 미국의 위대한 영웅, 나아가 세계의 영웅으로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다양한 종류의 행동주의에 한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 작가는 지난해 미국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 서술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특히 노예제도의 참상을 축소하는 경향에 대해 언급하며 “나는 말하고 싶었다”고 했었다.
Q :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A :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고 저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상황과 환경, 그들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모든 증거들을 제공하되 독자들에게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다고 말하는 작가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 일이 아니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가능한 한 온전히 불러오는 것이 제 일이다.”
Q : 다음 작품 집필 계획은.
A :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아직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우 작가는 2010년 내놓은 『위대한 이혼』(Great Divorce)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여성에겐 시민권ㆍ재산권이 없던 1818년 뉴욕주 최초로 여성의 이혼과 재산권ㆍ양육권을 쟁취한 유니스 채프먼이 남편과 국가를 상대로 벌인 5년간의 법정 투쟁을 담은 이야기다.
Q : 한국의 많은 작가들도 이번 수상을 축하하고 있다.
“한국에서 받은 모든 사랑에 너무나 감동했다. 『Same Bed Different Dreams』(같은 침대 다른 꿈)로 퓰리처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제 친구 에드 박도 애정 어린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 한국 작가와 한국계 미국인 작가 모두 저에게 귀감이 된다. "
Q : 한국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요즘 한국에서는, 특히 영화나 문학 분야에서 창의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굉장히 고무적이다.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Q :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는 한국 작가들이 있나.
A : “물론이다. 그 질문에 답을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이를테면 에드 박은 제가 존경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많은 한국계 미국인 또는 한국 출신 작가들 중 한 명이다.”
■ ☞우일연 작가
「 2010년 논픽션 『위대한 이혼』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평단의 주목을 받은 한인 2세 작가. 미국 예일대에서 인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대에서 영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8올림픽선수촌, 환기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설계한 재미 건축가 우규승씨가 그의 부친이며, 1961년 한국인 최초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과 영피플스 콘서트에서 협연하며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서 데뷔한 피아니스트 김정자씨가 그의 모친이다.
」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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