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뒤처진 리더십 스타일이 위기의 한 축 [김성탁의 시선]

김성탁 2024. 5. 1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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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4·10 총선에서 야권이 대승하고 여당이 참패한 이후 부쩍 세대 담론이 거론되고 있다. 영·호남 지역 변수를 고정으로 보고 세대 특성이 향후 선거를 좌우할 것이라는 견해다. 고령화로 인한 산업화 세대의 자연 감소로 보수 성향 유권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반면 산업화 이후 세대는 60대에 접어들었는데 40~50대까지 포함해 진보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젊은 세대가 어떻게 분화할지를 남은 변수로 꼽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던 한 졸업생이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있다. 뉴스1

세대론에는 함정이 있다. 다수 집단을 특정 정치 성향으로 묶는 것은 과하다. 2022년 대선 때 간발의 차이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보면 세대론만으로 선거 경향을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같은 세대라도 경제적 여건 등이 천차만별이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표를 행사할지 알 수 없다.

국내에서 세대론이 등장한 것은 ‘X세대’부터다. 1970년대 태어나 90년대 대학을 다녔다. 민주화 이후 풍요의 시절을 누렸다. 이들의 대학 시절은 86세대와 달리 시위가 계속 이어지던 때가 아니다. ‘오렌지족’이란 말이 회자할 정도로 가치가 다양화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런 특성을 가진 세대가 중년이 됐다고 진보든 보수든 하나의 군으로 묶이겠는가. 이후 세대의 스펙트럼은 더 세분화했을 것이다.

여당의 대패는 세대별 표심보다 집권 이후 보여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주원인이다. 물가 불안을 포함해 나아지지 않은 경제적 여건과 깊어진 양극화에 대한 대안 미비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값 폭등으로 민심을 잃은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심판을 부른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X세대' 중년층도 개인주의 성향
'입틀막', 검찰 인사 등 과거 회귀
권위주의 리더십은 지지 못 받아

한국 현대사는 질곡의 과정이었다.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권위주의와 작별하기를 원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늘 지적돼 온 것이 보여주듯 국가는 물론이고 민간 영역에서도 군림하려 드는 리더의 설 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집권한 동력 중 하나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꼽힌다. 상명하복의 권위적 질서가 남아있는 검찰 내부에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모습에 대중은 환호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여준 모습 중에는 당시와 다른 면모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바이든’ ‘날리면’ 논란 발언이다.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시빗거리가 됐는데, 정작 놀랐던 표현은 다른 것이었다. 외교부 장관 등 고위직들과 회의장을 나서면서 윤 대통령은 ‘이 새끼들이’라는 말을 썼다. 미국 의회가 아니라 국내 야당을 향한 것이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었는데, 국가 최고 리더가 고위 공직자들과 저런 표현을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것인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윤 대통령은 회의하면 90%가량 주도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적인 모임에서도 들으려 하지 않고 혼자 말하는 좌장이 있다면 리더로 인정받기 어렵다. 양팔을 좌우로 벌려 책상 위에 올려놓고 회의를 주재하는 사진도 종종 전해졌다. 그 자체가 권위적으로 비쳤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출신 대학이나 특정 인연 등이 반영됐다는 ‘고소영 인사’가 비판받았는데, 윤 대통령은 학교 선후배 등 인연이 있는 이들을 요직에 기용했다. 화룡점정은 ‘입틀막’이었다. 검색받고 입장하는 대통령 행사에서 발언이 부적절했을지라도 국회의원이 사지를 들려 나갔고, 카이스트 졸업식에선 졸업생이 경호원의 두툼한 손에 입을 틀어 막히는 사진이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진보·보수를 떠나 국민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를 억눌러선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쟁취한 성과물이다. '입틀막'에 윤 대통령이 주의를 줬다면 반복되지 않았을 텐데, 당시 대통령실 경호처 차장이 최근 병무청장에 임명된 것을 보면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검찰 인사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당시 정권이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하려 했을 때 반발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하던 이들을 모두 갈아 치우고 핵심 자리에 측근을 앉혔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상의했는지도 불투명하다. 수능 킬러 문항 배제를 갑자기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출제기관장이 물러났고, 의대 증원 2000명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시비에 휩싸여 있다.

시대에 뒤처진 리더십은 금방 표가 난다. 국민이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인사와 정책 추진 등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낮추고 경청하는 리더십으로 바뀌지 않으면 지지 회복은 요원하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자산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때다.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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