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마음 읽기] 시골 절 부처님들

2024. 5. 15. 00: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태준 시인

부처님 오신 날을 맞으니 시골 절을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어머니는 절에 가실 때마다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내가 예닐곱 살 적부터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어머니는 그날만큼은 논과 밭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일찍 절에 가셨다. 절에 가기 전 수일 동안에는 드시는 것을 가리셨다. 꼭 필요한 말씀 외에는 말씀도 줄이셨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준비하되 농사를 지어 거둬들인 것 가운데 성하고 좋은 것으로 마련하셨다.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이고 가셨다. 나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 먼 길을 걸어 시골 절에 갔다. 인근 마을에 사는 신도들이 찾아온 절은 붐볐다. 나는 어머니가 부처님께 간절하게 절을 올리시는 것을 뒷전에서 지켜보았고, 더러 흉내를 내서 절을 하기도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덧 늦은 오후였다.

「 어머니 따라 다녔던 시골 절 생각
대중과 떨어져 살지 않았던 부처
선행의 삶이 자신을 보호하는 삶

김지윤 기자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 내가 보았던 부처님 오신 날의 풍경은 멋지고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지만. 내가 가까이에서 만났던 것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과 깨끗한 마음과 큰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모두에게 애타게 소망하는 것이 있었고, 모두가 삼가고 엄숙한 마음을 가졌고, 모두가 나누고 베풀려고 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을 이러한 마음으로 살기는 어렵겠지만, 부처님 오신 날에는 그렇게 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날에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고, 화를 내는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돌이켜보면 그분들이 호미를 쥔 부처님이요, 되질을 하며 장사하는 부처님이었다.

지난주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열린 법회에 다녀왔다. 한 스님의 기원문이 참 마음에 들었다. “부처님은 맨발에 헌 옷 하나 걸치고,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지만 왕보다 행복했고,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찾아와 인생을 상담할 만큼 지혜로웠습니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수천 대중과 함께 있어도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숲에 홀로 있으면 정진하기 좋았고, 시끄러운 저자에 있으면 교화하기 좋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수행하기 좋았고, 먹을 것이 많으면 베풀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비난하면 인욕을 하기에 좋았고, 사람들이 우러러 존경하고 따르면 법을 전하기 좋았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삶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삶을 본받기 위해 저희들은 부처님 오신 날을 행복하게 맞이합니다.”

부처가 어떤 삶을 사는 분인지를 쉽고도 간명하게 밝힌 기원문이었다. 소유욕과 같은 욕심을 버리고, 지혜롭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고, 법을 설하고,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사는 삶이 바로 부처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날마다의 생활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해서 부처가 늘 중생과 더불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저자에 사는 사람도 이렇게 마음먹고 이렇게 살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사실 경전 속에 등장하는 부처의 모습도 발원문의 내용처럼 매우 구체적이다. 부처는 사람의 무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떠난 자리에 있지 않았다. 대중의 고통과 고민 속에 살았다. 제자들이나 대중이 겪고 있는 실제적이고 세밀한 어려움에 대해 듣게 되면 그 해결법을 상세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제시했다. 가령 이런 내용이 경전에 있다. 어느 날 제자가 수행을 하다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부처가 보았다. 그러자 부처는 제자에게 잠이 달아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설했다. 예전에 들었던 법을 마음속에 외워보도록 했고, 그래도 잠이 없어지지 않으면 들었던 법을 남을 위해 설하라고 권했다. 그렇게 해도 잠이 없어지지 않거든 두 손으로 귀를 문질러 보라고 일렀고, 계속해서 잠이 달아나지 않으면 냉수로 눈을 씻고 목욕을 해보라고 조언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잠에 빠져들게 되면 밖에 나가 사방을 둘러보고 별들을 우러러보도록 했다. 경전을 읽다 이 내용을 접했을 때 크게 감동했다. 깨달은 분이라는 부처가 이렇게까지 낱낱이 자세한 모습과 음성으로 내 앞에 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나를 돌아보게 한 경전의 말씀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삶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을 내던지는 삶인지에 대해 부처가 설한 내용이었다. 부처는 아주 알아듣기 쉽게 말했다. 스스로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요, 스스로 악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를 내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은 내가 어렸을 적 부처님 오신 날 당일에 시골 절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다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고운 말을 하고, 마음에 그늘이 없이 행복해하던 그 사람들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문태준 시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