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가 서열 2위 국회의장, 당대표가 정하는 게 맞나”

정용환 2024. 5. 15. 0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4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앞에 조정식·정성호 후보 이름에 ‘사퇴’ 표시가 된 제22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자 등록 공고문이 게시돼 있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은 추미애 당선인과 우원식 의원의 양자 대결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다. [뉴시스]

다선 중진들이 앞다퉈 “내가 적임자”라고 외치던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경선 분위기가 돌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4파전 구도였던 경선 초반만 해도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왜 국회의장감인지를 역설했다. “내가 환노위원장 때 당리당략을 버리고 초당적으로 노조법 문제를 해결했다”(추미애 당선인), “제가 국회의장 단상에 뛰어올랐을 정도로 내면은 불같은 성격”(조정식 의원)이라는 어필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 12일을 기점으로 기류가 확 바뀌었다. 정성호 의원은 돌연 “후보직을 사퇴한다”는 짤막한 입장을 냈다. 조정식 의원은 추 당선인과 회동한 뒤 물러났다. 이어 이재명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 “충심을 헤아려 달라”고 신고하듯 인증글도 올렸다. 당내에선 “호랑이라던 후보들이 갑자기 얌전한 고양이가 됐다”는 관전평이 나왔다. 경선 완주 의지를 다지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개혁·혁신을 얘기하던 후보들이 갑자기 선수·나이·관례를 말하니까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식의 ‘교통정리’에 이 대표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친명을 넘어 ‘찐명’(진짜 친명)으로 불리는 박찬대 원내대표는 조정식(5일), 정성호(6일) 의원을 차례로 찾아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박 원내대표는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됐는데, 국회의장까지 친명이면 ‘친명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김용민(8일), 김민석(12일) 의원 등 다른 친명계도 경쟁하듯 추 당선인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명심(明心)은 추미애”라는 말이 돌았던 것이 단지 우연이었을까.

추 당선인은 13일 김어준씨 유튜브에 출연해 “이 대표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선이 과열되다 보니 우려가 큰 것 같다’는 말씀을 주셨다”며 “이 대표가 다른 후보에게는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14일 라디오에서는 “당심이 곧 명심이고, 명심이 곧 민심”이라는 말도 했다. 일각에선 “국회의장 경선이 아니라, ‘친명 오디션’ 같다”(야권 관계자)는 냉담한 반응이 나왔다.

4·10 총선에 불출마한 우상호 의원은 “후보들이 어떤 권유를 받고 중단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결정하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공개 비판했다. 다른 중진의원은 “민주 절차를 무시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참담하다”며 “원래 추 당선인을 뽑을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는 중에도 친명계에선 “추 당선인에게는 의장으로서, 이 대표 대신 싸워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군역을 대신 져주는 ‘대립군(代立軍)’ 같은 역할이다”는 말이 나온다.

국회의장은 대통령에 이은 국가 의전 서열 2위이자 3부(입법·사법·행정) 요인이다. 진영에 치우치지 말고, 중립을 지키라는 의미로 당적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명심’과 추대론만 난무하는 민주당 국회의장 경선판에서는 중립에 대한 고민도, 국회 의사봉의 무게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결정지을 민주당 당선자 총회는 16일 열린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