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도산' 암울한 전망... 성장엔진 꺼버린 윤석열 정부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윤석열 정부 2년을 집중 진단합니다. 윤정부 2년의 역사적 퇴행을 바로잡고 정책을 복원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이며, 이 글은 그 여섯 번째로 '혁신 퇴행'입니다. <편집자말>
[염한웅]
▲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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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우리나라는 유엔(UNCTAD)이 공식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땀 흘린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두툼한 연구개발(R&D)예산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역대 모든 정부는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 기업이 인재를 키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하였으며, 덕분에 우리나라의 혁신생태계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 정부 연구개발예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1%대까지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혁신생태계를 선진국 모방형에서 첨단기술과 산업을 창조하는 선도형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강력한 예산 뒷받침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디지털 전환, 탈탄소 에너지 전환도 정부 역할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연구개발예산을 역대급으로 삭감했다. 성장엔진을 꺼버린 것이다. 벤처투자 펀드 조성에 필요한 정부 출자금은 반토막 났고,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기술개발과 시장개척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혁신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계를 키우겠다", "과학기술로 국가를 발전시킨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던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실 과기보좌관을 폐지했다. 2022년 말 정부는 과기부 소속의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을 교육부로 이관하겠다는 황당한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다행히 과기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은 2023년 6월 연구개발예산을 대폭 삭감하라고 지시하였고, 단 2주 만에 2024년 연구개발예산이 16.6%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하였다(국회에서의 논의 후 14.8% 삭감).
발칵 뒤집힌 연구현장
정부 연구개발예산 삭감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였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사업비가 20~30%나 깎였다. 한국연구재단은 신규 개인 기초연구 사업을 일부 중단하고, 다년간 진행되는 계속과제 예산도 일괄 삭감하였다. 각 부처의 국책 연구사업 예산은 일괄 삭감됐고 신규 사업은 중단되었다. 4대 과학기술원의 사업비는 10~15% 삭감되었으며, 이는 학생연구원에 대한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
급작스러운 예산 삭감은 중장기 연구의 질적 저하를 낳고, 그간 정부가 구축해 온 전 주기적 연구자 지원체계에 균열로 일으키고 있다. 대학연구실의 인건비 삭감은 대학원생과 비전임연구원의 고용축소로 이어졌고, 이공계 젊은 연구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서 이공계 이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깎인 예산은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한 번 떠난 연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윤 정부는 잊은 모양이다.
윤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적 퇴행
연구개발예산 삭감이 가져온 막대한 직접적 폐해와 더불어,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적 퇴행도 반드시 짚어야 한다.
첫째, 윤 정부는 연구개발예산 편성의 법적 절차를 위배하고 법치 구조를 붕괴시켰다. 연구개발예산은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가 세부안을 마련하고, 이를 최종 정부안으로 제출하는 과정이 법제화되어 있다. 그런데 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마련한 세부안을 백지화해버렸다. 그것도 최종안 승인기일을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급작스레 폐기한 것이다. 이후 윤 정부는 2주 만에 '대폭 삭감안'을 뚝딱 만들었지만, 삭감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부실 예산안 그 자체였다.
둘째, 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 예산편성 거버넌스를 파괴하였다. 장기에 걸쳐 힘겹게 구축한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의 예산 편성기능을 대통령실이 주도하여 박탈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무부서인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과학기술부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정부 삭감안에 반대하는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는 무시되었고,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상호존중과 소통의 틀은 무너졌다.
셋째, 윤 정부는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법적 계획주의를 붕괴시켰다.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은 법정계획인 과학기술기본5개년계획을 통하여 5년 단위의 계획하에 시행되고 있다. 그만큼 중장기 계획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연구개발예산을 삭감함으로써 과학기술기본법의 입법 취지를 무시하였다.
꺼져버린 제2벤처붐
2000년 벤처버블 붕괴 이후, 문재인정부는 침체한 창업과 벤처투자 열기를 되살려내 제2벤처붐을 조성하였다. 창업지원 예산을 2016년 5764억 원에서 2021년 3조 5578억 원으로 7배 가까이 늘렸고, 정부 모태펀드에 5조 원을 출자함으로써 벤처 투자자금을 세 배 이상 확대했다.
▲ 벤처투자 |
ⓒ 포럼사의재 |
그렇다 보니, 싹을 틔우던 벤처기업들은 투자자금을 구하지 못해 도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회사를 매각하려 하나 사줄 기업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 이후에 수많은 벤처기업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윤 정부 들어 터진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 PF 부실로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있으며 그 불길이 벤처투자 시장에도 옮겨붙은 상황이다. 이에 더해 정부가 벤처투자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민간 투자자들의 실낱같은 의욕마저 꺾어버렸다.
퇴행 바로잡고, 과학기술정책과 중소벤처정책 복원해야
정부는 먼저 삭감된 연구개발예산과 벤처투자 예산을 과거 수준 이상으로 크게 증액하고, 첨단기술의 사업화 활동을 되살려야 한다. 또한 민간 금융기관이 벤처투자에 뛰어들 수 있도록, 금융기관의 위험가중자산(RWA)과 자기자본비율(BIS) 산정에서 벤처펀드 출자금에 대한 위험가중 비중을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윤 정부 스스로 위법 행위를 멈추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법을 위반하고 연구개발예산 편성 거버넌스를 무너트리는 상황에서는, 연구개발예산을 복원하더라도 제대로 집행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의 심의기능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자문기능을 존중하면 된다. 과기기술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면 된다. 윤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포항공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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