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꿈꾸는 발달장애인 많은데… 현실은 드라마 같지 않더라고요”

오상훈 기자 2024. 5. 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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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성]③ 그들의 연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발달장애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사진=ENA 제공
“저도 한땐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비혼주의자에요.”

20대 발달장애인 전해은 씨는 연애에 회의적이다. 결혼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럼에도 ‘발달장애인의 연애’를 주제로 한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주변에 연애하고 싶어 하는 동료 발달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6만 3000명. 국내 발달장애인 수다. 이들도 비장애인처럼 연애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주하게 되는 벽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당사자들에게 물어봤다.

◇“제가 좋아한다고 하면 그렇게 싫어하더라고요”

해은 씨는 소아 때 앓았던 백혈병 합병증으로 모야모야병을 진단받았다.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원래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취미로만 노래를 부르라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현재는 ‘아트위캔’이라는 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에서 소프라노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해은 씨는 한때 연애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중학생 땐 또래들과 이상형에 대해 얘기했고 고등학생 땐 캠퍼스 커플을 꿈꿨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저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도 제가 좋아한다는 걸 알면 그렇게 싫어하더라고요. 너무 꾸미지 않아서 화장을 좀 해볼까 생각했는데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냥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자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대학생이 돼도 상황은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술은 못 먹었지만 또래들이랑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조금씩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습실 아니면 도서관에 있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력하다 보니 소비되는 에너지가 많았다. 해은 씨는 때마침 학업도 어려웠고 가족들과의 마찰도 잦아서 위경련이 자주 찾아왔다고 말했다.
전해은 씨./사진=오상훈 기자
◇헤어지자고 했더니 폭력으로 대답

다가온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같은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시각 쪽에 문제가 있었지만 비장애인이었다. 해은 씨는 둘의 관계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연인과 똑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일하는 곳에 취업하는 걸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점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계속 돈을 쓰게 만드는 거예요. 나중에 계산해보니 천만 원 이상을 썼더라고요. 성적으로 자기 뜻대로 휘두르는 것도 서슴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무서워하고 있더라고요. 조금씩 거리를 두다가 헤어지자고 얘기를 했어요.”

이별 통보 후 돌아오는 건 폭력이었다. 두 번의 이별 통보 과정에서 소리 지르는 건 다반사였다. 길거리에서 멱살을 잡혔다가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는데 다행히 그 장면을 본 직장 동료들에 의해 저지될 수 있었다. 부모까지 합세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은 후에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사회복지사이신데 장애인 권익보호 쪽 일을 하세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오셨어요. 결국 고소는 하지 않았는데 많이 참으신 것 같았어요.”

그 이후 해은 씨는 오랫동안 앓았다고 한다. 골반염으로 고생했고 악몽을 자주 꿨다. 한동안 사람들과 닿는 것 자체가 싫어 버스랑 지하철도 못 탔다. “중심을 못 잡아서 부딪칠 수 있는데 그게 못 참겠어서 사람들을 째려봤어요.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 이후로 연애는 못하겠구나 싶었죠.”

◇“연애하고 싶다면 성교육 받아야죠”

모든 발달장애인의 연애가 자신의 경험과 같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해은 씨도 알고 있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피플퍼스트라는 단체에서 동료 발달장애인들을 상담해보면 다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본인보다 정도가 덜한 발달장애인이나 비장애인과의 연애를 꿈꿔요. 그런데 비장애인 입장에서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기란 어렵잖아요. 본인이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대방이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연애를 이어가는 발달장애인들도 있는데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해은 씨는 연애하고 싶다는 발달장애 당사자들에게 먼저 현실은 드라마 같지 않다고 조언한다. 그 다음으로는 꼭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이 데이트 폭력에 대해서 아는 것 같아도 반복적으로 교육받는 게 중요하다. 또 누군가 잘해준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무조건 고백하지 않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연애를 한다면 부모님이나 주변 선생님, 동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좋다. “저도 연애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래 걸렸어요. 주변의 교육과 이야기가 없었다면 아마 더 오랫동안 몰랐을 것 같아요.”

연애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발달장애인의 일상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게 해은 씨의 꿈이다. “시각장애, 지체장애 유튜버는 많은데 발달장애 유튜버는 없더라고요. 발달장애 당사자가 스스로 계획하고 살아가면서 겪는 느낌이나 문제점 등을 영상에 담아보고 싶어요. 지금 편집이라든가 촬영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발달장애인도 사람 만날 기회 늘어나… “결혼 꿈꿔요”
김명일 씨./사진=오상훈 기자
40대 발달장애인 김명일 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 많지 않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엔 조금 바뀌었다는 걸 체감하곤 한다. “복지관 등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어요. 최근엔 장벽 없는 마을이라 해서 음식점 같은 데 보면 턱 때문에 휠체어가 못 올라가곤 하잖아요. 휠체어뿐만 아니라 유모차나 어르신들이 끌고 다니시는 장바구니 그런 것들도 올라가기가 어려운데 구청에서 경사로를 만들라고 지원을 해줘요. 동료들과 경사로가 필요할 만한 장소를 찾으러 다니고 있어요.”

명일 씨는 언젠가 결혼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최근엔 연애도 시작했다. 같은 발달장애 당사자로 서울시립 남부복지관에서 만났다. 아직 이렇다 할 데이트를 해보진 않았다고 한다. “지금 여자 친구랑은 만난 지 얼마 안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단 같이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결혼을 꿈꾸고 있죠.”

◇기초수급자 탈락 우려에 하루 3시간만 노동

결혼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집과 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현재 복지관에서 하루 3시간 씩 청소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은 월 60만원을 조금 넘는다. 결혼을 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다. “비장애인도 똑같잖아요. 결혼하려면 집과 안정된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엔 수입도 적고 일도 계약직이다 보니 좀 불안정한 것 같아요.”

명일 씨가 일을 3시간밖에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일을 더하면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여야 한다. 소득인정액이 62만3368원을 넘으면 생계급여, 83만1156원을 넘으면 의료급여 탈락이다. “천식 때문에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데 혹시라도 수입이 조금 늘어 의료급여에서 탈락하게 되면 앞으로의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어져요. 저처럼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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