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일제란 화두 [김선걸 칼럼]
삼성그룹 임원들이 주말에 출근해 주 6일 근무를 한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고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10년 전인 2014년으로 기억한다. 주말에 삼성 임원과 등산을 갔다. 오전 6시 언저리에 만나 산을 오르는데 계속 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힐끗 봤더니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당시 그룹 최고위 인사였다. 주말 새벽에도 일하냐 물었더니 오전 2시에도 이미 한 차례 보고를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폰과 애플의 아이폰 경쟁이 절정인 때였다. 아이폰6가 나왔고 갤럭시는 S5와 노트4로 맞불을 놨다. 미국, 유럽, 중동 할 것 없이 피드백이 온다고 했다. 전 세계 피드백을 실시간 대응하느라 미래전략실장은 24시간 잠도 안 잔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당시 삼성이 업무에 임하는 결기를 느꼈다.
노동에 대한 평가 기준은 업종·형태마다 달라야 한다. 전통적인 농업이나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투입 시간이 산출량에 비례하면 당연히 노동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에는 그런 분야가 줄고 있다. 오히려 집중력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은 줄이는 섹터가 늘고 있다.
기자라는 직업도 그런 종류다. 근태보다는 기사의 질로 역량이 평가된다. 근무 시간보다는 특종이나 용기 있는 기사를 쓰면 좋은 기자다.
2015년 청와대 출입을 할 때다. ‘무박 4일’의 남북회담이 있었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43시간 동안 협상을 했다. 취침 없이 나흘 밤을 새는 극단적인 마라톤 협상이었다. 시시각각 브리핑이 열렸다. 속보가 중요한 방송기자들의 요청으로 대변인이 밤 12시와 오전 6시쯤 브리핑을 하는 데다 급한 변동 사항은 새벽에도 한두 번 브리핑을 했다. 43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일한 수십 명의 동료 기자 모두 탈진했지만 퇴근 시간을 거론한 사람은 없었다. 직업의 본질과 특성상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정부가 언론사도 ‘52시간’과 같은 근로 형태를 강요했다. 그러나 남북회담 중 퇴근하거나, 기자회견 중 집에 가는 기자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들은 적은 없다.
‘2 대 8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개미 100마리가 일하는데 성과의 80%는 그중 20%가 낸다.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20%만 빼놓으면 그중에 또 80%는 놀고 20%만 일한다. 다시 그중 20%를 떼내길 반복해도 여전히 표본의 20%만 일한다는 이론이다. 개미도 꿀벌도 사람도 똑같다고 한다. 결국 핵심은 진짜로 일할 20%라는 얘기다. 이 이론으로 미래를 바꾼 게 바로 삼성이다. 故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천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자주 말했다. S급 인재를 사장보다 연봉을 더 주며 데려왔고, 아예 CEO 평가 척도에 S급 인재 스카우트 항목을 넣었다. 삼성의 역사를 바꾼 생각이었다.
다시 2014년 얘기다. 그 삼성 임원이 새벽 2시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은 날은 바로 토요일이었다. 삼성은 이미 10년 전 주말 새벽에도 산에서든 바다에서든 일하는 회사였다.
이제 AI와 융합의 시대다. 그런데 10년 전 근로 시간을 초월했던 삼성이 6일제를 끄집어냈다. 아이러니다.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하다. 일부 조직이 흐트러졌다는 얘기가 있기는 했다. 결국 삼성의 주 6일 이슈의 본질은 근로 시간이 아닐 것이다. 자세에 관한 문제다. 10년 전, 20년 전의 결기를 되찾고 싶은 것 같다.
위기일수록 기본을 생각하라고 한다. 결국 한 명의 인재, 혹은 ‘일하는 20%’의 열정을 되살리는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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