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측 황당 논리 "이태원 당일, 전단지 안 주워 행인 다쳤으면 어떡하나" [이태원 공판기]
[김성욱 기자]
▲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13일 오후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 출석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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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를 주워와라, 혹은 피켓을 수거하는 것도 용산구의 본래 임무다. 예를 들어, 만약 그 피켓이 그냥 걸려있고 용산구가 그걸 제거하지 않아 거길 지나가는 사람이 피켓이 떨어져 다쳤다면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용산구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중략) 그 시점(이태원 참사 당일)에서 용산구는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는데 둘 중 하나를 한 것이다. 그게(전단지 수거)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한 것이라는 건 부적절한 주장 아닌가."
13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김병일·백송이) 심리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박희영 용산구청장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공판에서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이 한 말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한 시간여 전 박 구청장이 안전관리를 하는 대신 용산 대통령실 앞 시위 직후 길거리에 뿌려진 전단지와 피켓을 줍도록 지시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반박하며 내놓은 논리다.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6분께 발생했는데, 이곳에서 불과 1400미터 떨어진 대통령실 앞 대규모 집회는 같은 날 오후 8시 33분께 종료됐다. 시위가 끝나고 집회에 사용된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이라고 적힌 종이 피켓들이 인근에 다수 뿌려졌고, 박 구청장은 오후 8시 59분 부하 직원들과의 카카오톡에서 "김진호 용산경찰서 외사과장(에게) 빨리 전화하세요", 오후 9시 4분 "강태웅(당시 더불어민주당 용산 지역위원장) 현수막 철거도 부탁해요"라고 말했다. 이에 용산구청 직원은 곧장 "민주당 현수막은 전부 새벽에 제거 예정입니다! 시위피켓은 당직실 통해서 바로 제거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박 구청장 측은 전단지 수거를 요청한 경찰과 부하직원을 연결시켜준 것일 뿐, 수거 '지시'를 한 건 아니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김진호) 용산서 외사과장에게 전화를 받고 비서실장에 연결해 두 사람이 통화하도록 했고, 그 통화 내용에서 외사과장이 전단지 제거 요청을 한 것으로 안다"라며 "그렇다면 이건 경찰의 요청이지, 박희영의 지시라고 보긴 어렵다"고 강변했다.
나아가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이 사고를 예견했다면 이렇게 하면 안됐겠지만, 그건(검찰 측 주장은) 사후적인 것"이라며 "위험하게 걸려있는 피켓을 수거하는 것도 용산구의 본래 임무"라고 강조했다. 가로로 두 뼘 크기 정도 되는 종이피켓이나 현수막도 '위험'할 수 있다며 이태원 참사 사전 대응과 비교한 것이다. 변호인 측 주장과 별개로, 시위피켓에 대한 당시 용산구청이나 경찰의 반응은 그날 해당 기관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일 수 있다.
▲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13일 오후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 출석한 뒤 차량으로 향하며 시계를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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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재판에서는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직후 찍힌 CCTV 영상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박 구청장은 참사가 벌어지고 40여분이 지난 오후 10시 59분경 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박 구청장 자택은 참사 현장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져 있다. 그에 앞서 박 구청장은 고향인 경남 의령에 들렀다가 오후 8시 22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집에 도착해 있었다.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검찰은 피의자 박희영이 경광봉을 들고 서성이고 있다고 묘사했는데, CCTV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장에 들어오려는 일반인을 통제하고 부상자들이 통행하는 길을 여는 활동을 했다"라고 했다. 변호인은 "박 구청장이 가장 요긴한 활동을 했는데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 구청장이 이태원 골목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엉켜있던 인파들의 분리와 수습이 이뤄진 상태였다.
이날 공판을 참관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최종연 변호사는 통화에서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구급대원들이 다 와서 환자이송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라며 "구청장이 거기서 경광봉을 들고 있을 게 아니라 구청을 지휘했어야 했음에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지적인데, 전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재판부 "현장 갔어야 한 것 아니냐" - 박희영 "준비하고 있었는데..." https://omn.kr/28b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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