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칼 빼든 정부… 정리 않고 버티면 ‘현장 점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옥석 가리기가 다음 달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금융 당국은 총 230조원 규모의 부동산 PF 사업장 중 5~10%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재구조화나 새 주인 찾기에 쓸 5조원 실탄을 마련했다.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소극적인 제2 금융권을 얼마나 움직이느냐가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13일 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정책 방향’을 내놨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부실이 쌓이면 정상 사업장에 공급될 자금까지 경색되고 세계 경제에 충격이 오면 (금융권) 전반으로 충격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면서 “평가 기준 개선을 통해 각 사업장의 사업성을 엄정히 따져보고 부족한 곳은 경·공매 등으로 금융사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사업장의 사업성 평가 강화다. 현재 사업장은 ‘양호’ ‘보통’ ‘악화 우려’ 3단계로 평가되는데 앞으로는 ‘양호’ ‘보통’ ‘유의’ ‘부실 우려’ 4단계로 분류된다. ‘유의’와 ‘부실 우려’ 단계의 관리 수준은 깐깐해진다. 보유한 사업장의 사업성이 ‘악화 우려’인 경우 지금은 금융사가 내준 대출금의 30%를 대손 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데 앞으로 ‘부실 우려’가 되면 의무 적립률이 75%까지 상향된다.
이뿐 아니라 ‘유의’ 등급을 받은 사업장은 재구조화나 자율 매각 대상이, ‘부실 우려’ 사업장은 경·공매 대상이 된다. 금융 당국은 전체 사업장 중 3~7%가 ‘유의’ 등급을, 2~3%가 ‘부실 우려’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230조원 규모의 전국 사업장에서 많게는 23조원어치의 구조조정 물량이 나올 수 있다.
구조조정에 필요한 ‘뉴 머니’는 공공과 민간이 함께 마련한다. 곳간 사정이 넉넉한 은행권과 보험업권이 경락자금대출 실행이나 부실채권(NPL) 매입 등에 쓰일 1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다음 달 조성한다. 이는 향후 5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캠코(자산관리공사)는 1조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어 후방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부동산 PF 위험 노출액이 많은 저축은행·캐피털·증권업권은 10조원이 넘는 추가 손실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 당국은 이들 업권이 2018~2021년 부동산 시장 호황기 PF로 큰돈을 번 만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은 사업장을 보유한 금융사가 무분별하게 만기를 연장하지 못하도록 대주단(대출 금융사 단체) 내 금융사 동의 기준을 ‘3분의 2 이상’에서 ‘4분의 3 이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2회 이상 만기 연장 시 반드시 외부 기관에서 사업성 평가를 받도록 했다. 지난달 초 저축은행권을 대상으로 6개월 이상 연체 사업장 대상 3개월 내 경·공매 처분을 의무화한 조치도 점차 다른 업권에 확대 적용한다. ‘유의’ ‘부실 우려’ 등급 사업장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금융사로부터 계획서를 받고 미진한 경우 현장 점검에도 나선다.
금융 당국이 이렇게 강도 높은 압박 카드를 꺼낸 것은 제2 금융권 내 일부 금융사가 부실 사업장을 쉽사리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브리지론(토지 매입 등에 쓰이는 단기 대출) 단계의 사업장을 많이 보유한 저축은행권은 지난해 말 기준 연체율이 6.55%를 기록해 전년 말(3.41%)의 2배 가까이 급등했고 5600억원에 육박하는 합계 순손실을 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제2 금융권 일부에 ‘안 팔고 버티면 결국 돈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그동안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했다”면서 “현장 점검까지 예고한 만큼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김준희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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