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옥석가리기…금융사, 공동대출 방식 5조 ‘뉴머니’ 투입한다
다음달부터 230조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옥석가리기’가 시동을 켠다. 정상 사업장엔 원활한 자금 공급으로 숨통을 틔워주고, 사업성이 낮은 곳은 정리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은행ㆍ보험사가 최대 5조원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방식의 ‘실탄’으로 경ㆍ공매로 쏟아져 나올 부실 사업장을 재구조화하는 게 핵심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3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고금리ㆍ고물가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부실 사업장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뛰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체 금융사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35조6000억원에 이른다. 연체율은 1년 전보다 1.51%포인트 오른 2.7%를 기록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PF 부실의 과도한 누적과 이연은 정상 사업장까지 자금 경색을 초래할 수 있다“며 ”(PF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연착륙을 추진하는 게 대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사업장의 옥석을 가릴 기준(사업성 평가기준)부터 손질했다. 평가등급을 현행 3단계(양화ㆍ보통ㆍ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ㆍ보통ㆍ유의ㆍ부실우려)로 세분화한 게 특징이다. 이중 가장 성적이 낮은 ‘부실우려’ 등급은 추가 사업 진행이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여신 만기를 4회 이상 연장했거나, 연체 이자를 내지 않고 만기 연장한 경우, 경·공매에서 3회 이상 유찰됐을 때 '부실우려' 사업장이 된다. 사업장이 '부실 우려' 등급을 받으면 금융사는 충당금을 회수의문 수준(대출액의 75%)으로 쌓아야 한다. 사업장을 경ㆍ공매로 넘기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다.
평가 대상엔 브릿지론(토지 매입 단계 PF)과 위험성이 유사한 토지담보대출, 채무보증 약정을 추가했다. 또 평가 기관에 행정안전부가 관리ㆍ감독하는 새마을금고를 포함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처럼 평가 대상을 확대하면서 PF 사업성 평가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30조원에 이른다. 금융위는 이중 구조조정(유의ㆍ부실우려 등급) 대상 사업장 규모가 전체의 5~10% 수준(최대 23조원)일 것으로 추산했다.
사업성 평가기준에 따라 사업성이 충분한 정상(양호ㆍ보통 등급) 사업장에는 차질없는 자금공급을 지원한다. 최근 공사비 급증으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에 추가 보증을 제공한 게 대표적이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이 쏠린 부실 사업장(유의ㆍ부실우려 등급)은 ‘경ㆍ공매로 정리하고, 재구조화’ 하는 수술대에 오른다. 앞으로 금융사(대주단)들은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사업장 매각을 늦추는 게 쉽지 않다. 2회 이상 만기연장이 이뤄진 PF 사업장에 대해선 대주단 동의요건을 기존 ‘3분의2’에서 ‘4분의3’으로 높였다. 만기 연장 때 연체 이자는 원칙적으로 갚아야 한다.
또 경ㆍ공매 기준도 도입한다. 원칙적으로 반년 이상 연체한 PF 채권은 경ㆍ공매 대상이 되고. 구조조정이 미흡한 사업장은 시가 대신 공시지가로 평가한다. 사업장(토지) 가치를 공시지가로 쓸 경우 금융사의 충당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동안 만기연장으로 버틴 ‘좀비 사업장’에 경ㆍ공매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경ㆍ공매로 쏟아질 부실사업장을 재구조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경ㆍ공매 절차로 부실사업장의 몸값(토지 가격 등)이 낮아지면 신규자금을 투입해 사업을 재구조화하는 방식이다. 은행ㆍ보험업권이 최대 5조원 규모로 신디케이트(공동대출)로 신규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우선 5대 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은행)과 5대 보험(삼성ㆍ한화생명, 메리츠ㆍ삼성ㆍDB손해보험)이 1조원을 조성한 뒤 자금 수요가 있을 때 최대 5조원까지 투입하는 캐피탈콜을 진행한다. 신규 자금은 부실채권(NPL)매입이나 경매ㆍ공매에 필요한 경락자금대출 등에 활용된다.
이번 대책엔 1조원대 몸집의 캠코 펀드의 활성화 방안도 포함됐다. 대주단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해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우선매수권이란 부실 사업장을 캠코에 싸게 매각하면, 향후 사업장을 되살 수 있는 권리다.
당국은 PF 시장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사를 위한 당근(인센티브)도 내놨다. 부실 사업장에 신규자금을 지원할 경우 추가자금에 한해 한시적으로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한다. 또 신디케이트론 지원 등으로 손실이 나더라도 금융회사 임직원 면책을 보장한다. 이번에 개선한 PF 사업성 평가기준은 오는 6월부터 사업장별 순차적으로 적용한다. 인세티브 등 제도개선도 내달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이번 PF 정상화 방안에 대해 부동산 업계는 부실 사업장 정리 속도를 높여,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평가등급 세분화로, 부실자산과 재구조화가 필요한 사업장, 정상사업장이 확실히 분리됐다”며 “잎으로 정상 사업장은 자금공급이 강화돼, 공사착공으로 이어지는 등 부동산 공급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금융권은 아직 신중한 반응이다. 은행 등 일부 금융사가 이번 PF 정상화 방안에 ‘뉴머니’를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이 신규 자금 공급 시 자산건전성 정상 분류나 손실에 따른 면책권을 보장해준 것은 다행이다”면서도 “부동산 경기가 어려워진 요즘 부실 사업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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