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계 주술 영역 아냐” vs “근거없는 비난 유감”…‘증원 근거’ 갈등 격화

남수현 2024. 5. 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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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서울의대교수협의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입학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정부답변 검증 결과 요약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의대증원 근거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양측은 13일 기자회견과 브리핑을 번갈아가며 열며 신경전을 벌였다. 의료계는 정부 제출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며 “2000명 증원 근거는 없었다”고 주장한 반면, 정부는 “2035년에 의사 1만명이 부족해진다 연구를 토대로 의대 증원을 결단했다”고 맞섰다.

정부를 상대로 집행정지를 제기한 의대생·교수·전공의들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이날 정부가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의대증원 근거 자료 일체를 언론에 공개했다. 법원은 오는 17일까지 의대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결을 내릴 전망이다. 앞서 정부가 지난 10일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는 증원 규모가 결정됐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 결과를 비롯한 문건 47건과 별도 참고자료 2건 등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대한의학회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자료를 검증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정부는 수천장의 근거자료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기존(에 알려진) 보고서 3개를 인용한 주장 외에는 없었다”며 “수없이 많은 회의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2000명을 증원한 근거는 논의된 바 없었고, 2월 6일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며 시급히 진행한 보정심에서 유일하게 (2000명이) 언급돼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중요한 대계는 주술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더 이상 이런 정책의 폭주로 인한 의료 농단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의료계 지적대로 정부 발표 전 2000명 증원 규모가 언급된 자료는 보정심 회의록이 유일했다. 정부는 지난 2월 6일 개최한 보정심 회의에서 처음 위원들 의견을 물은 뒤 1시간여만에 회의를 끝내고 증원을 발표했다. 당시 일부 위원들은 “2000명은 우리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증원 범위를 벗어난 것” “폐교된 서남의대를 20개 이상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될 것” 등의 우려를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 앞서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의료계가 이런 자료를 공개한 데 대해 정부는 “여론전을 통해 재판부를 압박해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재판부가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최소한 금주 내로 내려질 결정 전까지만이라도 무분별한 자료 공개를 삼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복지부는 보정심 의결 과정을 문제삼는 데 대해 “보정심은 만장일치로 의결하는 방식이 아니며,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한 끝에 안건 의결에 이견이 없음을 확인하고 의결했다”고 반박했다. 복지부는 “회의에 참석한 위원 23명 중 19명이 2000명 증원에 찬성했고, 의사인 위원 3명 등 총 4명이 반대했으나, 반대의 경우에도 규모에 대한 이견으로 증원 자체에는 찬성이었다”고 밝혔다.

박민부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정부는 앞으로 10년도 남지 않은 2035년에 의사 1만 명이 부족해진다는 복수의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의대 증원을 결정했다”며 “의대 교육과정이 6년인 점을 감안할 때 2025년에 2000명 증원이 필요한 것은 바로 계산이 나오는 산수”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화체인 의료현안협의체에서 결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의사단체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적으로 했다”며 “협의체에서 논의가 잘됐다면 (의료계가 모범사례로 꼽는) 일본보다 더 모범적으로 의사결정을 했겠지만, 그게 어려운 현실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맨왼쪽)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의교협, 대한의학회 주최로 열린 '의대입학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전의교협·의학회 기자회견이 끝난 뒤, 복지부·교육부 출입기자단 대상으로 긴급 백브리핑을 열고 재차 의료계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브리핑에서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료계가 보정심 회의에서 나온 반대 발언 등을 부각하는 것을 겨냥해 “일부 자료나 특정 발언만 편집해 전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문제 삼거나 왜곡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또 “(집행정지) 신청인 측에서 근거 없이 정부를 비난하고, 여론을 조성해 법원의 판단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각 의대가 증원 역량이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현장점검을 14개 의대에 대해서만 했다는 점 등 의료계에서 ‘졸솔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해명했다. 이날 의료계 기자회견에서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정부 제출 자료를 검증한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실사는 14개 대학만 했는데, 마치 모든 대학을 점검한 것처럼 기술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병왕 실장은 “40개 대학 전체에 대해 비대면 회의를 통해 상황을 확인했다”며 “기본적으로는 자료들이 충실히 왔기 때문에 그중에서 (현장점검이) 필요한 곳들을 샘플링해 30% 정도 되는 14개 기관을 직접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증원 근거로 삼은 3개 보고서에 대해 “복지부 의뢰를 받은 것이라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의료계 비판에 대해서는 “3개의 보고서가 복지부가 모두 발주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전 실장은 “그 중 하나는 복지부가 했지만, 다른 하나는 병원협회가 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정부기관이 했다”며 “또 모두 독립적으로 연구된 것이라 2035년 1만명 의사 부족 추계는 상당히 신뢰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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