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국회의장→당대표…경쟁 사라지는 野 ‘추대정치’
추대, 추대, 또다시 추대.
4·10 총선에서 171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내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 원내대표에 이어 국회의장 선거 후보자도 추대 기류가 커지는 가운데, 이 대표 연임론까지 탄력을 받으면서다.
국회의장 경선 후보로 나섰던 조정식·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약속이라도 한 듯 물러났다. 조 의원은 추미애 당선인과 만나 단일화에 합의했고, 정 의원은 사퇴 입장을 밝혔다. 우원식 의원이 완주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명심(明心)이 추 당선인으로 기울었다”는 뒷말이 돌고 있다.
의장 후보 등록 때만 해도 4파전이던 경쟁 구도가 허물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친명 핵심인 박찬대 원내대표는 조정식(5일), 정성호(6일) 의원을 찾아가 사실상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됐는데, 국회의장까지 친명이면 ‘친명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박 원내대표의 설득을 놓고 “이재명 대표의 의중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용민(8일), 김민석(12일) 의원 등 다른 친명계도 SNS에서 추 당선인을 지지하면서 거들었다.
추 당선인도 ‘명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 당선인은 13일 방송인 김어준씨 유튜브에 출연해 “이 대표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연히 과열이 되다 보니 우려가 큰 것 같다’는 말씀을 주셨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가 다른 후보에게는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 과정도 비슷했다. 박찬대 의원이 출마를 공식화하자 서영교·김민석·김병기·김성환·박주민·한병도 의원 등이 모두 출마 의사를 접었다. 친명계는 “총선 민심을 반영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사람이 원내대표를 해야 한다”(4월 26일, 민형배 의원)고 분위기를 잡았고, 이재명 대표도 “의원은 독립된 헌법 기관이라 할지라도 민주당이라는 정치 결사체의 한 부분”이라고 거들었다.
결국 원내대표 선거는 3일 당선자 총회에서 찬반 투표로 치러졌고 박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이 경쟁이 아닌 추대로 진행된 것은 2005년 1월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추대 이후 19년 만이다. 다만 정세균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통과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천정배 원내대표를 대신해 총대를 멘 성격이 짙었다. 야권 관계자는 “경쟁자들이 압박 속에 출마를 접은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추대 정치는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의 연임 도전이 굳어지면서다. 이미 친명계 최고위원들은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총대를 멜 것”(11일 정청래), “이 대표께서 연임을 결단해달라”(12일 장경태)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이 같은 추대 정치를 두고 야권 내부에서는 “건전한 경쟁과 비판이 사라지는 배경에는 강성 팬덤 정치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친명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의장 경선을 앞두고 ‘미애로합의봐’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추 당선인을 일사불란하게 지원 사격했다. 후보에서 사퇴한 조정식 의원은 13일 이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서 “저의 충심을 헤아려 달라”는 인증글을 올렸다. 한 민주당 수도권 의원은 “의장 경선뿐 아니라 일부 강성 당원들은 이 대표 연임 촉구 서명 운동도 하고 있는데, 반대하면 문자 폭탄을 각오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치권의 시선은 이 대표를 향하고 있다. 치료 차 휴가 중인 이 대표는 15일 복귀한다. 당 관계자는 “국회의장 경선과 본인 연임 문제에 대해 이 대표가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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