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지킴이들, 포기 대신 연대를’···교회 역할 확장한다

최기영 2024. 5. 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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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7월 도입하는 자살예방교육 의무화에 따라 우리 사회 각계에서 정신 건강, 마음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천하보다 귀한 생명’(마 16:26)을 강조해 온 한국교회가 생명 지킴이로서의 대응책 마련과 지속적인 연대의 물꼬를 트는 사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강동구 은혜광성교회(박재신 목사)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임석순 목사) 발표회에서는 고립으로 인해 위기에 몰린 청년 세대가 집중 조명됐다. ‘위태로운 다음 세대, 해법은 있는가’를 주제로 개최된 발표회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곽혜원(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교수는 청년 고독사가 급증하는 실태를 진단하며 우리사회와 교회가 연대할 실질적 방향을 제시했다.

그래픽: 강소연


실제로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전국 단위로 진행한 ‘고립·은둔 청년(19~34세)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2030세대의 5%에 해당하는 54만여 명이 은둔형 외톨이로 판명됐고 서울시에만 13만 명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7명 이상이(75.4%)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고, 10명 중 3명 가까이(26.7%)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살 생각’ 응답률이 2.3%였던 것에 비하면 무려 33배 높은 수치다. 고립·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살 생각과 시도 비율도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곽 교수는 “노인 고독사와 청년 고독사 현장의 결정적 차이점은, 청년의 경우 ‘나는 할 수 있다’고 적힌 메모, 수백 통의 이력서 등 꿈을 향한 열정이 좌절된 흔적이 빼곡히 발견된다는 것”이라며 “이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이라며 고개 숙이지 않도록 국가적인 관심과 대응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곽혜원(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강동구 은혜광성교회(박재신 목사)에서 열린 한복협 발표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한복협 제공


곽 교수는 한국사회와 교회가 협력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1인 가구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확충과 관련 기관 재정비’ ‘성경적 원리에 입각한 사회경제적 공평과 정의 정착’ ‘한국교회 차원의 상생·연대의 공동체 복원’ ‘건강한 가정 공동체 재건’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일본, 스웨덴 등 우리보다 앞서 고독사 문제를 겪었던 국가들은 지역사회 공동체 복원을 위한 전 사회적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공동체성을 상실한 이들에게 한국교회는 정서적 울타리가 돼 줄 공동체를 제공해왔다”며 “현 상황에서 교회가 최우선으로 주력해야 할 사명은 사회적 치유를 위한 ‘영혼 돌봄 시스템’ 정착”이라고 덧붙였다.

생명 살리기 운동에 탄력을 더하려는 교단적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오정호 목사)은 지난 9일 총회회관에서 생명윤리 전문기관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자살 고독사 낙태 안락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협력을 선언했다.

총회 생명존중위원회(위원장 강문구 목사) 주관으로 진행된 협약식을 통해 교단은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대표 조성돈)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홍순철)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상임대표 이상원) 행동하는 프로라이프(상임대표 이봉화)와 생명윤리 연구, 생명 살리기 운동을 함께 해나가기로 했다.

예장합동은 지난해 9월 108회 총회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생명존중을 위한 교단적 활동을 결의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살 유족들을 돕기 위한 예식을 시행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낙태 및 자살 예방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지속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협약식에 참석한 오정호 총회장은 “복지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지향하지만, 교회는 요람에서 천국과 영생까지 인도한다”며 “생명을 지키는 성경적 동지들의 연대가 우리 사회에 강력한 생명 살리기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내에는 ‘자살’과 ‘자살 유가족’을 위로보다는 정죄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터부시하는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 보수교단인 예장합동의 이 같은 행보가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생명존중 문화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거룩한빛광성교회(곽승현 목사)에서 12일 진행된 ‘우리가족 사랑해요 가족사진 캠페인’에서 성도와 가족들이 즉석 사진을 촬영하며 미소짓고 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제공


개교회 차원의 생명존중 활동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거룩한빛광성교회(곽승현 목사)는 매년 가정의 달 5월에 ‘우리가족 사랑해요 가족사진 캠페인’을 펼친다. 가족 단위 성도들을 대상으로 즉석 사진을 촬영해 기념 액자를 제작해주고 서로에게 메시지를 적어 보내면서 삶의 위기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보호요인인 가족을 생각하며 이겨내도록 돕는 캠페인이다.

12일 열린 캠페인 현장에서 곽승현 목사는 “삶은 늘 흔들리지만 생명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회는 다음 달 셋째 주 수요 예배에 자살예방 외부 강사를 초청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자살예방 특강도 진행할 예정이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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