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걸리면 가야 한다

나성원 2024. 5. 1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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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원 사회부 기자

검찰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동정론이 일 정도로 철저한
수사로 의혹 규명 나서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됐을 때 주변 지인들은 기자에게 “왜 이렇게 검찰이 이 회장을 괴롭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앞서 이 회장이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만 해도 잘못을 했다면 재벌 총수도 처벌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이미 옥살이까지 한 이 회장을 검찰이 3년 만에 또 겨냥하자 주변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검찰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도 2020년 6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검찰은 권고를 따르지 않고 이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3년5개월간 재판만 100번 넘게 열렸고 지난 2월 1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됐다. 기사에는 면죄부라는 비판보단 올바른 판단이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앞서 이 회장은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매입으로 그룹 지배력 확보에 나섰다. 2008년 삼성 특검에서 이 회장은 불기소됐고, 그해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61.3%가 “봐주기 수사”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에 이어 경영권 승계 의혹까지 고강도 수사가 오히려 ‘동정론’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재드래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호적 시각이 많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자라 해도 검찰에 심하게 당했다는 느낌을 줄 때면 반대로 동정 여론이 강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적어도 패륜범죄나 직접 ‘검은돈’을 받은 게 아닌 이상 말이다. 검찰도 국민적 의구심이 있는 사건은 끝까지 파헤쳐 털어내야 ‘봐주기 수사’라는 뒤끝을 남기지 않게 된다. 그러지 못해 검찰뿐만 아니라 수사 대상자 역시 장기간 논란에 휩싸였던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 중이라고 강조하지만 세간에는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의혹에는 고강도 수사를 벌이고 김건희 여사 의혹에는 느슨하게 대응한다는 인식이 많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부정적으로 보는 보수층도 장기간 현미경 수사가 진행됐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그의 정치활동이 도의적으로 옳은지는 별론으로 해도 일가가 전방위 수사를 받은 건 사실이다.

이 대표와 조 대표 혐의는 법원에서 유무죄가 가려질 것이다. 문제는 야권 인사들과 김 여사 문제가 대비돼 검찰 수사와 정권의 불공정 논란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정권의 부담은 역설적으로 검찰이 김 여사 수사를 ‘고강도로 해서’가 아닌 ‘하지 않아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이 원칙대로(설령 다소 과하다 할지라도) 김 여사를 소환해 조사한 후 의혹의 진상과 처분 이유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오진 않았을 것이다. 주가조작 의혹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4년이 됐는데 검찰은 “필요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문재인정부 때부터 고강도 수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수사가 어떻게 이뤄졌고, 무엇을 규명했는지 공식적으로 설명 들은 게 거의 없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 두고두고 검찰의 짐이 됐을 때 한 검찰 간부는 “차라리 수사기록을 전부 공개하고 싶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단 ‘봐주기 수사’ 프레임이 자리잡은 뒤에는 백약이 무효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사회가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지만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로 화제가 됐는데, 지금 검사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검찰은 이제라도 김 여사 의혹에 법 허용 범위 내 필요한 조사를 전부 진행하고, 과정과 결과를 티타임(비공개 정례 브리핑), 수사결과 브리핑, 공식 보도자료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알려야 한다. 처벌이 어렵다면 사실관계와 법리적 이유를 국민적 의구심이 남지 않을 때까지 설명해야 한다. 그래도 한 나라의 영부인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느냐는 ‘동정론’을 일으킬 정도가 돼야 검찰과 정권 모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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