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팬텀’…한반도 55년간 누비며 하늘 지켰다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지킨 F-4E 팬텀 전투기가 지난 9일 고별 비행을 마쳤다. 수원 공군기지를 떠나 팬텀의 자취가 묻어있는 주요 거점을 돌아본 국토순례비행이었다. 다음 달 7일 공식 퇴역식을 앞두고 한반도 주요 영공을 둘러본다는 의미가 담겼다.
공군 팬텀기는 1969년 8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에 미국이 군사원조로 F-4D 6대를 지원했다. 75년 F-4E 5대를 추가로 들일 땐,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방위성금 163억원 중 71억원이 투입됐다. 최대 190대에 달했던 한국의 팬텀 계열 전투기는 순차적으로 퇴역해 지금은 F-4E가 10대 남짓 운용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F-4D 5대에 붙인 ‘필승편대’라는 이름은 제153전투비행대대 소속의 마지막 남은 F-4E 4기 편대로 이어졌다.
팬텀은 F-15 전투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복좌형 전투기였다.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타켓팅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팬텀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이성진 대구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대령)은 “공대지 미사일 팝아이를 비롯해 최대 8480㎏이라는 어마어마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다”며 “‘팬텀이 떴다’ 하면 북한이 도깨비 같은 위용에 짓눌려 아예 비행기를 띄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팬텀의 별칭이 ‘하늘의 도깨비’인 이유다.
팬텀은 71년 소흑산도에 출현한 간첩선을 격침하는 작전에 투입됐고, 83년 북한 이웅평 대위가 미그-19기를 몰고 연평도 상공으로 귀순했을 때도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83년과 84년엔 각각 옛 소련의 TU-16과 TU-95 폭격기를, 84년 핵잠수함을 차단했다. 98년 2월엔 러시아 IL-20 정찰기에 대한 전술 조치도 했다.
퇴역한 팬텀은 전국 곳곳에 전시될 예정이다. 일부는 공군 기지 활주로 주변에 배치해 북한군의 유도탄이나 각종 탐지 장비를 교란하기 위한 ‘디코이’ 역할을 맡는다. 이날 팬텀 비행에 참가한 박종헌 소령은 “불멸의 도깨비 팬텀은 퇴역 뒤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대구=국방부 공동취재단,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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