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청자 60점··· 포스코미술관서 '천기'와 '비색' 드러내다
국내 '청자 마니아'들이 소장해온 청자가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 미술관에서 6월 2일까지 전시된다. 포스코 창립 56주년 기념 특별전 '천기누설 고려비색(天機漏洩 高麗翡色)'으로, 우리 대표 문화유산인 고려청자를 집중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60여 점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컬렉터 4인의 소장품이다. 이 중 두 명의 컬렉터가 소수의 작품을 내놓은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2인의 소장품 전시다. 전시엔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가 고루 나왔으며, 여기엔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 등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두 점도 포함돼 있다.
맑은 비취색, 유려한 곡선미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맑은 비취색의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다. 연꽃 위에 표주박 형태의 주전자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뚜껑까지 섬세한 연꽃 모양이다. 볼륨감 있는 몸체, 곡선미가 빼어난 손잡이, 절제 있게 새겨진 문양 배치가 고려청자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윤희 포스코미술관장은 "고려청자 주자 중 몸체와 뚜껑, 승반을 모두 갖춘 작품이 드물어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방병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번 전시에서 '청자상감연판문매병'을 이번 전시 제목 '천기누설, 고려비색'에 가장 걸맞은 작품으로 꼽았다.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와는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역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다. 방 교수는 "고려청자의 화려한 문양 중엔 학이 춤을 추거나 도사가 거문고를 켜는 풍경 등이 주로 보이는데,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하게 보조 문양으로 쓰이던 연판문(연꽃의 꽃잎을 펼쳐 놓은 모양이 연속으로 이어진 것)을 주 문양으로 썼다"면서 "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대담하게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흑백 상감의 대비도 눈길을 끈다.
방 교수는 "고려가 단순히 수입된 청자 기술을 토대로 중국식 청자 생산만 고집했다면 아직도 중국 청자의 아류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고려 장인들은 청자 기술 수입 100년 후 독자적인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작품도 그런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고려 장인들은 색조와 형태, 문양 등 여러 면에서 우리 미감에 맞는 청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이런 독특한 작품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청자양각과문과형주자'는 전체적으로 맑은 청록색으로 생동감 있게 새겨진 양각 문양이 눈길을 끈다. 몸체에 균일한 간격으로 세로로 열 한 개의 골이 패어 있으며, 몸체 전면에 새겨진 참외 넝쿨이 리듬감 있게 표현돼 있다. 세 가닥의 줄기를 꼬아서 제작한 손잡이까지 곡선이 유려하다.
'청자과형병'은 언뜻 단아한 멋이 돋보이는 화병으로 마치 8개의 잎으로 싸인 듯한 형태다. 담녹색에 맑고 투명하게 입혀진 유약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또 '청자상감죽학문매병'은 몸체에 커다란 대나무가 흑상감, 매화나무가 백상감으로 새겨져 회화성이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엔 분청사기도 여러 점 나와 있어, 화려함을 내세웠던 청자가 고려 말에 접어들며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고려 말 청자의 길쭉한 병 모양에서 동그란 형태로 변화하며 실용성을 추구하게 된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방 교수는 "고려청자는 성형과 조각 솜씨, 비색을 내기 위한 도공들의 끊임없는 실험과 우수한 원료의 원숙한 사용 등이 합쳐진 고려 과학의 결정체였다"며 "그러나 몽골과의 전쟁과 정치·사회적 혼란, 왜국 침입 등으로 고려청자는 장식과 조형이 서서히 퇴색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5일 휴관. 관람료 없음.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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