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다이어리] 혐일을 팝니다

베이징=김현정 2024. 5. 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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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은 방사능 오염수를 마셔라."

지난 4일 중국과 일본에서 판매되는 한 음료 컵 슬리브(포장 띠)에서 발견된 문구다.

이 슬리브는 샹퍄오퍄오의 한 직원이 독단적으로 기획해 제작했으며, 그는 일부 제품에 이 같은 슬리브를 끼워 일본에까지 전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제품이 판매됐다고 당초 알려진 일본 소매점의 매장 관계자가 "이러한 슬리브가 장착된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공식 부인하면서 여론은 악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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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은 방사능 오염수를 마셔라."

지난 4일 중국과 일본에서 판매되는 한 음료 컵 슬리브(포장 띠)에서 발견된 문구다. 제조사는 중국의 음료 회사 샹퍄오퍄오(香飄飄). 문구의 의미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중국 사회에 깔린 반발심을 제품 포장에 그대로 반영해 적은 것이다.

이 슬리브는 샹퍄오퍄오의 한 직원이 독단적으로 기획해 제작했으며, 그는 일부 제품에 이 같은 슬리브를 끼워 일본에까지 전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확산한 소식은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4일과 5일 이어진 라이브 방송 판매에서 이 회사의 유사한 음료 제품 6종 가운데 3종이 매진됐다. 매출은 평소 2500위안(약 47만원) 수준에서 400배 급증한 100만위안에 달했다.

사진 출처= 중국 웨이보

회사의 주가는 지난 6일 상한가인 19.21위안까지 치솟는다. 오염수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직원의 과격한 행동, 그리고 회사 측의 발 빠른 마케팅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후 SNS에는 이번 일을 기획한 직원들을 위한 현수막('샹퍄오퍄오는 전사들의 귀환을 환영합니다')을 들고 이들의 일본 출국을 배웅하는 회사 관계자들의 사진과 이들에게 10만위안(약 1900만원)의 포상금을 줬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여러 인터넷 글에서 이들 직원은 '영웅'으로 묘사됐고, 샹퍄오퍄오 주가는 7일 21.13위안까지 뛴다.

그러나 이날을 고점으로 상황은 반전을 시작한다. 또다시 SNS에는 며칠 간의 일들이 의도된 애국심 마케팅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당초와 달리 일본에는 똑같은 슬리브를 끼운 제품이 유통되지 않았고, 중국에서만 판매됐다는 정황이 발견된다. 또한 뒤에 진열된 제품엔 슬리브가 없다는 점을 들어 판매용이 아니라 잠깐 사진 촬영용으로만 사용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제품이 판매됐다고 당초 알려진 일본 소매점의 매장 관계자가 "이러한 슬리브가 장착된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공식 부인하면서 여론은 악화했다. 8일 주가는 18.44위안으로, 9일엔 18.09안으로 뒷걸음친다.

강성 민족주의 언론인으로 알려진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마저 이번 일에 등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SNS에 "대중의 순박한 애국심을 희롱해 소비시키려는 이런 행위가 조장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애국주의 마케팅은 수년간 불패 신화를 써왔다. 최근 친일 기업의 오명을 쓴 음료기업(농푸산취안)이 불매운동으로 아찔한 나락의 길을 걸었던 것도 비슷한 전례다. 하지만 투박하다 못해 허술했던 샹퍄오퍄오의 혐일 마케팅은 아무래도 무위에 그칠 모양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번 해프닝이 이뤄지는 와중에 샹퍄오퍄오가 인터넷 제품 판매와 마케팅 회사를 새롭게 설립(지분 100%)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회사를 통해 좀 더 정교하고 그럴싸한 마케팅을 하겠다는 의지인 것인지.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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