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테러가 사전 연습”… 공포에 떠는 올림픽

장은현 2024. 5. 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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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도시 파리에 짙은 테러 그림자
지하디스트 부활에 유럽 초긴장
게티이미지뱅크


가자지구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중동 정세를 틈타 이슬람국가(IS) 등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부활하고 있다. 소탕된 줄 알았던 이들 세력이 온·오프라인에서 조직을 재정비해 이전보다 더 급진적·조직적인 방식으로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지난 3월 총격 테러가 발생하자 서방 정보기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IS가 국제적인 테러를 다시 자행한다는 분명한 신호였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에서 지하디즘(이슬람 근본주의 무력투쟁)의 부활을 목격한 서방 국가들은 자국이 다음 표적이 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하계올림픽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 개최를 앞둔 프랑스와 독일은 긴장 수위가 치솟는 중이다. 프랑스 정치학자이자 지하드 전문가인 질 케펠은 “모스크바를 공격할 수 있다면 파리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모스크바는 파리를 위한 사전 연습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3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공연장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총격·방화 테러가 발생해 건물이 화염에 휩싸인 모습. 이슬람국가(IS)의 분파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이번 테러로 144명이 사망하고 551명이 다쳤다. AP뉴시스


오는 7월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은 이미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사정권에 들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지난달 30일 “올림픽 기간 중 자폭 테러를 감행하려던 10대가 기소됐다”고 전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지하드 관련 서적과 IS에 대한 충성 서한을 발견했다. 르몽드는 “이 사건은 파리올림픽을 직접 겨냥한 최초의 테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파리 센강을 따라 열기로 했던 올림픽 개막식 행사를 축소하기로 했고 ‘플랜 B’를 준비 중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테러 공격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힌다. 이는 라이시테(프랑스식 세속주의, 정교분리)의 영향이다. 프랑스에서는 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소속을 보여주는 복장이나 표식의 착용을 금지해 이슬람권 출신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프랑스 정부가 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 착용을 금지했을 때도 논란이 일었다.

독일과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안전하지 않다. 독일은 1972년 뮌헨올림픽 때 ‘검은 9월단 사건’을 겪었다.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납치한 뒤 경찰과 총격전 끝에 인질 전원이 희생된 사건이다. 2017년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 아레나에선 미국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이 끝난 직후 공연장 바깥에서 IS의 폭탄 테러가 발생한 바 있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의 피터 네서는 “유럽에서 지하디스트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며 “그러나 이들이 조직을 재정비하면 과거보다 조직적인 유형의 공격이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탐지 어려운 ‘자생적 폭력조직’ 증가

서방 국가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디스트들이 괴멸된 것으로 판단했다. 과거에 벌인 테러리스트 축출 작전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전복시키고 알카에다를 축출했으며, 2011년 파키스탄에선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알카에다의 후예들이 2014년 이라크·시리아의 대부분 지역에 칼리프국(초기 이슬람 신정일치국)을 조직했지만 그들의 거점도 2019년 파괴됐다.

사라진 줄 알았던 지하디스트들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케펠은 “2000년대에는 알카에다가 직접 공격을 지휘했고, 2010년대엔 이들과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의 공격이 있었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엔 지도자가 없는 자생적 폭력 조직인 ‘주변 지하드’가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내 IS 분파 중 가장 극악무도하다는 이슬람국가아프간분파(ISKP)는 지난 1월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추모식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95명이 사망했다. ISKP는 2021년 한 차례, 2022년 네 차례, 지난해 12차례 해외에서 테러 공격을 기도 또는 실행했다.

테러 대상도 분파마다 다르다. 일부는 가까운 적(정부)과 싸우며 영토를 장악하는 데 집중하고, 다른 세력은 먼 적(서방)을 겨냥한다.

이들 거점서 서방 영향력 감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거점으로 삼는 지역에서 서방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쿠데타 벨트’로 불리는 아프리카 사헬 지역이 대표적이다. 프랑스군은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서 철수했고 유엔 평화유지군도 말리에서 철수했다. 미군은 니제르와 차드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현재 이들 지역에선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그룹 등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

AP통신은 지난해 11월 “아프리카 베냉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지하디스트의 공격이 2022년의 3배에 가까운 80건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베냉 북부의 가난한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하디스트들은 “우리가 집권하면 도로와 병원을 만들겠다”고 호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발간된 유엔 보고서는 “알카에다의 각 지부가 서아프리카 해안 국가들을 위협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 ‘테러리스트 성역’이 구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등에 주둔 중인 미군은 이란의 대리 세력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어 주둔 병력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지하디스트들이 온라인 활동을 늘리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소셜미디어에는 지하드 전도자 등 이들 단체를 홍보하는 여러 영상이 다양한 언어로 공유되고 있다. 알카에다는 8개월째 이어지는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해 대원들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는 새로운 세대의 무슬림들을 급진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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