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아픈 손가락’ 솔리다임 웃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5. 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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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부활’ 점치기엔 시기상조라지만…

최근 SK하이닉스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과 두 번째로 많은 영업이익을 거둔 가운데 낸드플래시사업부가 흑자전환해 주목받는다. 지난 수년간 조 단위 손실을 냈던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플래시사업부) 실적 회복 덕분이다. 인공지능(AI)용 서버 수요 급증으로 저전력·대용량 저장장치인 기업용 SSD 주문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1분기 실적에는 재고평가손실 환입이라는 일회성 요인이 반영된 만큼 추세 전환에 관한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낸드 사업 7분기 만 흑자

솔리다임 정상화 시동

지난 4월 25일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12조4296억원, 영업이익 2조886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전보다 매출은 144.3% 늘고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했다. 시장 추정치를 훌쩍 웃도는 ‘깜짝 실적’을 냈다. D램에서 2조원 넘는 영업 흑자를 냈고 낸드플래시 사업은 7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AI 열풍으로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D램과 고용량 낸드플래시 판매가 증가한 덕분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올해 메모리 시장 규모는 과거 호황기에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낸드사업부다. 2022~2023년 조 단위 분기 손실을 낸 솔리다임이 일부 정상화된 게 낸드 흑자 배경으로 꼽힌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12월 인텔 낸드사업부에 대한 1단계 인수를 마친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설립한 낸드플래시 메모리 자회사다. 솔리다임 인수에는 총 90억달러(약 12조원)가 투입됐다.

지난해까지 솔리다임은 SK그룹 ‘골칫거리’였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초대 CEO 퇴사로 경영 공백이 발생하는 등 지배구조를 정비하는 데 적잖은 자원을 투입했다. 그러던 중 낸드 업황이 곤두박질쳐 2021~2023년 7조원을 웃도는 누적 순손실을 냈다. SK그룹 내부에선 솔리다임 인수가 패착으로 부각되자 수뇌부 사이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아직 인수 잔금 수십억달러가 남은 상황에서 조 단위 손실이 쌓여가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행인 점은 낸드 업황이 조금씩 기지개를 켠다는 사실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낸드 평균판매단가(ASP)가 올 1분기에 전분기 대비 23~28% 오른 데 이어 2분기 13~18% 오를 전망이다. 솔리다임은 최근 수요 증가세가 가파른 기업용 SSD 강자로 평가된다. SSD는 낸드플래시 여러 개를 묶어 만든 데이터 저장장치다. 서버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고 읽고 처리하는 데 쓰인다.

특히 솔리다임은 삼성전자와 함께 QLC(Quadruple Level Cell) 구조 기반 SSD에 강점을 갖췄다는 평가다. 희망적인 대목은 생성형 AI 열풍 속 산업 트렌드가 범용·학습 AI에서 추론용 AI로 이동하면서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빠른 읽기 속도와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를 갖춘 ‘QLC eSSD’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 트렌드포스는 올해 QLC 기업용 SSD 출하량이 30엑사바이트(Exabyte)로 전년 대비 4배 증가할 것으로 봤다.

낸드는 셀 한 개에 담을 수 있는 정보(비트)에 따라 싱글레벨셀(SLC), 멀티레벨셀(MLC), 트리플레벨셀(TLC), 쿼드레벨셀(QLC) 등으로 나뉜다. 현재 셀 1개에 3비트까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트리플레벨셀 제품이 주력이다. 최근 낸드업계에서 QLC 방식이 주목받는다. 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용량을 집적할 수 있으므로 대용량 SSD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QLC 기반 SSD는 최대 64TB(테라바이트)까지 확장된 용량을 제공해 추론용 AI 서버에 적합하단 평가다. 범용 서버에 쓰이는 HDD는 일반적으로 20TB대 용량을 제공하는 반면, 64TB QLC 기업용 SSD는 전성비가 좋은 데다 저장 용량을 위한 공간도 적어 AI 서버 구축을 위한 총소유비용(TCO) 절감에 유리하다. 트렌드포스는 “AI 애플리케이션에서 QLC SSD 사용이 증가하는 주요 이유는 제품의 빠른 읽기 속도와 총 TCO 절감”이라며 “대용량 QLC 기업용 SSD가 주요 AI 고객에게 인기 있는 솔루션이 됐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들어갈 돈 산더미

낸드 산업 한계 지적도

다만, 솔리다임의 ‘완벽한 부활’을 점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솔리다임은 지난해 영업손실 4조344억원을 기록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부채가 13조7140억원에 달하는데, 아직 인수 잔금도 남았다. SK하이닉스는 1차 인수대금 70억달러(약 9조4000억원)를 2021년 지급했고, 내년 3월 잔금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를 마저 내야 한다. 계약 당시보다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른 점은 부담 요인이다.

앞으로도 돈 들어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SK하이닉스 역시 곳간 사정이 빠듯하지만 지금까지 솔리다임 운영자금으로만 8조원 이상 쏟아부었다. 1·2차 인수대금 90억달러(약 12조원)에 빌려준 운영자금 8조원을 더하면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만 20조원에 육박한다. 20조원을 쏟아부은 결과물이 조 단위 영업손실이라는 점은 SK그룹 입장에선 뼈아픈 대목이다. 중국 다롄 팹(Fab) 운용과 시설 교체 등에 투입될 비용까지 고려하면 소요 자금은 더 늘어난다.

이 탓에 SK하이닉스 이사회에서도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솔리다임에 조 단위 자금 대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두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8월 SK하이닉스 이사회에 솔리다임 자금 대여 건(약 1조3000억원)이 안건으로 올라왔으나 이 안건은 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부결됐다. 2주 뒤 재개된 이사회에선 사외이사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재계 관계자는 “자금 대여를 두고 사내이사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이사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됐지만 사외이사는 숙고 끝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무적 부담에 관한 우려는 SK하이닉스 감사보고서에도 엿보인다. SK하이닉스 감사보고서에는 “지속적 실적 부진 등을 고려해 손상 징후가 있다”며 핵심 감사 사항 셋 중 하나로 솔리다임 자금 대여를 꼽았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계속기업 가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사안을 핵심 감사 사항으로 꼽는다”며 “감사 과정에서 손상 우려를 두고 사측과 난상토론을 벌였을 것”이라 봤다.

낸드 시장 자체가 갖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D램과 달리 낸드 시장은 주요 5개 업체를 중심으로 파편화된 점유율 구조를 보여 감산 등을 통한 가격 통제력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황에 따른 손익 변동성 통제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종 애널리스트는 “낸드 자체가 부가가치가 크지 않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솔리다임 중국 다롄 공장 내 장비 반입 문제도 우려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실적에는 재고평가손실 환입 효과 기여도가 높다는 점도 추세 판단을 유보하는 요인이다. 재무제표상 재고자산은 저가법으로 평가한다. 저가법은 재고자산을 취득원가와 시가 가운데 낮은 쪽을 장부가액으로 평가하자는 것. 재고자산을 시가로 평가할 경우 자산 변동성이 큰 폭 확대되므로 가장 낮게 표시되는 가액을 기록하자는 취지다. 쉽게 말해, 과거 100원에 사둔 반도체 재고 시세가 50원으로 반 토막 났다면, 재고자산 평가손실 50원이 매출원가로 반영된다. 반대로, 재고자산 시세가 다시 100원이 됐다면 평가손실 50원을 환입시켜 ‘플러스(+)’로 인식한다. 다만, 환입 규모는 최초 장부가액(취득원가)을 초과할 수 없다. 즉, 올 2~3분기에도 반도체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재고평가손 추가 환입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고 감소와 가격 상승폭 둔화로 시간이 갈수록 환입 규모는 축소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수익성 중심으로 낸드 전략을 전환한다. 낸드 분야 전문가인 안현 SK하이닉스 솔루션개발담당(부사장)도 새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곽노정 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최근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 솔리다임의 eSSD 구매가 큰 폭 증가해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며 “솔리다임의 고용량 스토리지 제품 경쟁력과 SK하이닉스의 낸드·시스템온칩(SoC) 기반 제품 개발과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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