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었던 사람들, 조선시대 공휴일은 이것과 관련이 있다

김종성 2024. 5.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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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N <세자가 사라졌다>

[김종성 기자]

옛날 사람들은 쉼 없이 일한다. 사극 속에서는 그렇다. 사극의 등장인물들은 휴일을 반납하고 사는 사람들마냥 항상 끊임없이 일한다. 사극에서, 한두 사람이 온종일 쉬는 장면은 볼 수 있어도 집단 전체가 공휴일을 쇠듯이 함께 쉬는 장면은 잘 나오지 않는다.

사극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직업인 관료 직군의 경우도 그렇다. 이들은 조정에 나와 항상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책을 읽든가, 기방에서 술을 마신다. 그들이 휴일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찾기 어렵다. 옛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기회가 텔레비전 사극에서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조선시대 공휴일
 
 MBN 사극 <세자가 사라졌다> 관련 이미지.
ⓒ MBN
 
이런 가운데,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MBN 사극 <세자가 사라졌다>에서 조선시대 공휴일이 짤막하게 언급됐다. 지난달 13일 방영된 제1회의 47분경에 세자 이건(수호 분)이 궁녀·내관·별감 등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있었다. 맞은편에는 쟁반을 손에 든 어린 궁녀가 고개를 숙인 채 걸어오고 있었다.

궁녀는 세자의 코앞에 다가간 뒤에야 세자 행렬을 발견하고 놀란다. 궁녀는 손에서 쟁반을 놓쳤고 세자 뒤편의 별감이 이것을 받아든다. 궁녀는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당황한 목소리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한다.

세자는 쟁반 위의 약과를 건네주며 "먹거라"라는 말로 안심시킨다. 머뭇거리던 어린 궁녀는 "이것을 제 어미에게 가져다 줘도 되겠습니까?"라며 "실은 며칠 있으면 순휴일이라 어미와 동생에게 맛보여주고 싶어서 약과를 몰래 감추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열흘에 한 번 돌아오는 공휴일에 집에 갖다 주려고 약과를 슬쩍 했다고 실토한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옛날 사람들은 달과 태양의 움직임에 더욱 긴밀히 연동되는 일상을 살았다. 옛날 한국인의 다수를 차지한 농민들은 특히 그랬다.

농민들의 휴일은 달과 태양에 더해 날씨에 의해서도 좌우됐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나 눈 혹은 우박 등은 이들의 휴일 여부를 강제적으로 결정했다. 이들은 24절기를 통해 예측 가능한 휴일을 제공받는 한편, 비·눈·우박 등을 통해 불규칙적인 휴일을 제공받기도 했다.

임금의 샐러리맨인 관료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휴일 제도하에서 살았다. 1895년에 일주일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최소한 혹은 기본적으로 열흘에 한번은 쉬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공휴일 제도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은 음력으로 태종 13년 11월 11일자(양력 1413.12.4) <태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의정부가 태종 이방원에게 제출한 계문(啓聞, 보고서)에 고려시대 이래의 삼가일(三暇日) 제도가 언급됐다. 의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한 달에 사흘 쉬는 이 제도는 중국 송나라의 순휴일(旬休日)을 모델로 했다. 상순·중순·하순에 하루씩 쉬는 제도가 한국에서는 삼가일로 불렸던 것이다.

삼가일의 모델이 된 순휴일 제도

삼가일의 모델이 된 순휴일 제도 하에서는 열흘에 하루뿐 아니라 음력 3월 3일(삼짇날), 음력 5월 5일(단오), 음력 9월 9일(중구일)도 법정 휴일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법정 휴일이 40일이 안 되지만 실제는 훨씬 많았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날에도 쉬었다. 모든 사회규칙이 다 법률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므로, 실제의 휴일은 법정 휴일보다 많았다.

금년 2024년에 주5일 직장인은 120일 정도를 쉰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이 정도만큼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휴일을 보장받았다. 연산군 직전인 성종 임금의 재위기인 1485년부터 시행된 <경국대전>의 이전(吏典) 편에 따르면, 이들은 다양한 명목으로 휴일을 쓸 수 있었다.

헌법 기능을 수행한 이 법전은 "부모를 보러 가거나 조상의 묘를 보러 가거나 부모를 영광스럽게 하러 가거나 조상에 묘에 영광을 고하러 가거나 죽은 조상에게 벼슬이 추증됐거나 혼례가 있으면 모두 7일의 휴가를 주며, 아내·장인·장모의 장사에는 모두 15일의 휴가를 준다"고 규정했다.

또 부모가 병에 걸렸을 때도 휴가를 쓸 수 있었다. 부모의 집이 경기도에 있으면 30일, 경기 이외의 지역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면 50일, 먼 데 있으면 70일을 줬다. 교통 상황을 감안해야 하므로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체감 휴일'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30일·50일·70일보다 훨씬 적었다.

위 휴가 사유 중에서 본인 혼례나 배우자 장례식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부모와 관련된 것이다. 육아 휴직이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현대인들에게는 자녀 양육이 휴가 문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반면,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효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 관직이 주로 남성들에게만 개방되고 자녀 양육이 여성의 전유물로 치부되던 시대의 풍경이다. 또 노년 세대에 대한 부양이 국가의 책임이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한정되던 시대의 풍경이기도 하다.

부양하거나 제사 지내야 할 부모나 조부모가 많은 경우에는 법정 휴일 이외의 휴가를 신청하기가 수월했다. 그래서 실제로 쓸 수 있는 휴일은 법정 휴일을 능가했다. 영조 임금 때 세자시강원의 정4품 필선(弼善)인 임광필(林光弼)은 이런 휴일 제도를 개혁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주상 비서실인 승정원의 업무일지인 영조 3년 11월 13일자(1727.12.25)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임광필은 형조참판 이명언이 소송 적체를 해소해 칭송을 들은 것은 매일 같이 새벽에 출근하고 별을 보며 퇴근한 덕분이라며 휴일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휴일 제도하에서는 열흘에 한번 쉰다. 임광필은 5일에 하루로 줄이자고 건의했다. 관료들의 실제 휴일이 열흘에 한번보다 많았기에 이런 상소가 나온 것이다. 휴일을 줄이자는 상소가 나온 것은 이 시대 직장인들 역시 휴일을 충분히 보장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쉼없이 일만 한다. 마치 휴일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쉬는 장면은 나와도 집단이 전체적으로 쉬는 날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휴일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갈망이 사극에 보다 많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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