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특종 인터뷰, 앤드루 왕자는 왜 BBC를 택했나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특종의 탄생> 포스터. |
ⓒ 넷플릭스 |
2010년 뉴욕, 제프리 엡스타인의 집에서 갓 20살이 되었음직한 여자들이 나온다. 경호원이 쳐다보지도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그러곤 영국의 앤드루 왕자가 나오더니 엡스타인과 산책을 한다.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힌다. 9년이 지난 후 런던, 굴지의 언론사 BBC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하여 임직원 450명 해고를 결정한다. 뉴스 부서와 쇼 부서 전체가 대상이다.
회사는 힘들어도 뉴스는 제시간에 시작되어야 하기에 나이트라인의 인터뷰 PD 샘 맥알리스터는 오늘도 섭외에 공을 들인다. 때마침 앤드루 왕자가 피치앤팰리스라는 재단을 설립해 한창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9년 전에 엡스타인과 함께 산책했던 사진이 신문에 실린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범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앞둔 시점에 감옥에서 자살했기에 세상이 떠들썩한 와중이었다. 나아가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였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한 이가 나타났다.
앤드루 왕자 측은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BBC의 샘을 찾는다. 그래도 BBC는 기조상 앤드루를 물어뜯지 않을 것이었다. BBC 측은 특종을 놓칠 수 없었다. 물어뜯진 않되 날카로운 질문으로 앤드루한테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했다. 그가 직접 털어놓다시피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터였다. 과연 BBC 에밀리 앵커와 앤드루 왕자의 세기의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BBC와 앤드루 왕자의 세기의 인터뷰
BBC 인터뷰 PD 출신의 샘 맥알리스터는 < Scoops: Behind The Scenes of the BBC's Most Shocking Interviews >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특종으로 이어진 BBC의 가장 충격적인 인터뷰들의 뒷 이야기를 다뤘다. 그녀가 인터뷰를 성사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과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을 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특종의 탄생>은 이 책의 앤드루 왕자 챕터를 바탕으로 했다. 원작의 작가인 샘 맥알리스터와 앤드루 왕자 등이 본명 그대로 주인공이다. 앤드루 왕자가 어떻게 BBC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지와 BBC는 왜 앤드루 왕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지가 주요 내용이고 인터뷰 진행 과정과 이후 파장까지 다뤘다.
언론이 해야 하는 일, 굴지의 언론사 내에서 다양하게 얽히고설키는 역학 관계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현대사를 바꿀 수도 있을 만한 선택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다. 조금 투박하고 정이 없는 듯한 전개이지만 스피디해서 지루하지 않다.
세기의 인터뷰 뒤, 싱글맘의 개인적인 이야기
영화는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또는 거시적 이야기와 미시적 이야기 또는 알려진 이야기와 소외된 이야기의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앞엣것은 엡스타인 사후 BBC와 앤드루 왕자 간에 이뤄진 세기의 인터뷰, 뒤엣것은 세기의 인터뷰가 있기까지 BBC 인터뷰 PD 샘 맥알리스터의 피, 땀, 눈물이다.
앤드루 왕자 측은 BBC야말로 해명 인터뷰에 완벽한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미리 입을 맞춰볼 대본은 없다지만 준비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봤다. 한편 BBC 측에선 날카롭되 최대한 앤드루 왕자가 직접 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를 당황시켜야 했다.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나올 터였다.
그런가 하면 샘은 싱글맘으로 아이에게 죄인이고 회사에선 맡은 역할 자체로 지적을 받기 일쑤다. 주위에선 그녀가 하는 일을 보고 어떻게든 누구라도 데려오면 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물밑에서의 각고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또 그녀가 데려오는 이들과 BBC의 고매함은 종종 충동을 일으킨다. 그런데 앤드루 왕자라니?
세상을 뒤흔들 만한 특종이 '만들어지기'까지
앤드루 왕자와의 인터뷰라는 절대적 사건이 영화의 줄기라면 샘의 개인적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와 주위를 환기시킨다. 결국 일이란 게 아무리 거대해도 사람 한 명이 가지는 힘이 엄청나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일이 진행될 수 있다. 타인의 역할을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세에 몰릴수록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알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 철저한 준비로 정면돌파해야 한다. 이 중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역풍에 휘말릴 것이다. 앤드루 왕자는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영국 왕실의 영원한 수치로 남았으니.
특종 하나가 세상을 뒤흔들고 또 바꾼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특종이 이리도 힘겹게 또는 전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매우 전격적으로 빠르고 대차게 '내보내는' 것인지 알았는데 말이다. 이토록 집요하고 똑똑하게 만든, 다쳐야 할 사람만 다치는 특종을 또 접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