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제약회사의 추악함 밝힌 투쟁
[장혜령 기자]
▲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컷 |
ⓒ 찬란 |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제87회 아카데미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시티즌포>의 '로라 포이트라스'의 신작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감독의 사회 문제를 다룬 날카로운 시선은 전 세계가 주목했고, 제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로서는 베니스영화제 역대 두 번째 황금사자상이라는 이례적인 진기록을 세웠다. 제95회 아카데미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컷 |
ⓒ 찬란 |
낸 골딘에게 있어 사진은 곧 언어였다. 언니와의 친밀했던 기억은 큰 상처를 안겼다. 바바라의 극단적 선택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을 렌즈 너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항, 투쟁은 언니로부터 였고 곧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부제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란 언니 바바라의 일기장에 쓰인 내용에서 발췌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어머니와 격리 차원으로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다양한 집단과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1969년 여성의 예술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시절에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대 초부터 예술가 집단의 솔직함을 담은 인물 사진으로 업계의 파란을 일으켰다. 그녀의 사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80년대부터다. 낸 골딘 본인, 친구, 연인 등 지인을 피사체로 선택했다. 당시 유명인이 아닌 사람,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일상을 찍는다는 건 문외한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편견에 도전이라도 하듯 사회적 금기와 에로티시즘을 소재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냈다. 카메라를 든 관찰자의 관점이 아닌, 피사체의 입장에서 담는 영화 같은 스타일이 포인트다. 영혼을 솔직히 담은 사진으로 인물 사진의 개념까지 바꾼 위대한 아티스트다. 왕가위, 라이언 맥긴리, 자비에 돌란, 정정훈 촬영감독 등이 영향받았다고 꼽는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가 낸 골딘이다.
드래그 퀸, 게이, 레즈비언, 에이즈 환자, 중독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사생활, 성문화를 드러냈다. 파격적인 사진의 이면에는 본인조차 알지 못했던 맨얼굴, 표정 등 인물의 진가가 담겨 있다. 사진은 대부분 일기장을 들춰 보듯 솔직하고 대범하다. 자연스러운 포즈,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은 거침없으며 내밀한 속마음이 바닥끝에 닿은 손길처럼 경이롭다. 피사체와의 친밀함이 없다면 결코 찍을 수 없는 구도인데, 16세부터 시작된 오랜 공동체 생활은 예술적 정체성과 경력에 영향을 미쳤다.
▲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컷 |
ⓒ 찬란 |
낸 골딘은 본래 사진작가였지만 현재 주도적으로 정부나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활동가로 더욱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해 왔던 경험을 살려, 위상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여생을 편하게 전시하며 살 수 있었던 아티스트가 갑자기 시위대의 주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14년 손목 수술 후 처방전대로 옥시콘틴(오피오이드 계열 마약성 진통제)을 먹었는데 하루 만에 약물에 중독되어 3년동안 힘든 시간을 견뎠다. 자세히 따져 보니 복용한 약을 만든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꼭대기에는 '새클러 가(家)'가 있었고 미국 내에 마약성 진통제가 어떤 과정으로 퍼져 있는지 알게 된다.
억만장자 일가는 중독성 있는 약을 무해한 약이라고 속여 팔아 돈방석에 앉은 제약회사의 큰손이었다. 이들은 의사를 포섭했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로비했다. 마케팅의 일환이라며 과대광고를 버젓이 떠들어 남의 고통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약물과용 및 중독으로 20여 년 사이 미국에서만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컷 |
ⓒ 찬란 |
P.A.I.N은 약물중독을 예방, 피해 저감, 약물의 비범죄화, 중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적극적인 치료를 주장하는 단체다. 영화 속에서는 새클러 가문이 후원하는 미술관, 박물관, 대학교 등을 돌며 시위, 퍼포먼스를 펼치며 끈질긴 압력을 가한다.
미국뿐만 아닌 다양한 나라를 순회하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얻어 낸 성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본인의 영구 소장품을 소유한 미술관을 돌며 최악의 상황과 위험을 감내하며 시위대의 주체로 활동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등이 새클러가의 기부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후원자의 이름을 내릴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한다.
영화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굴곡진 삶과 명성, 성공의 이면에 가려진 약물중독의 아픔을 들춘다.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투쟁하는 전과정을 담았는데 과거와 현재를 병치 구성으로 담는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시도를 했다. 생존까지도 하나의 예술로 승화하는 아티스트이자 활동가의 단단한 내면이 전달된다.
낸 골딘의 여러 작품과 슬라이드 쇼, 내레이션, 시위, 주변인의 인터뷰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시간과의 대화 같아 생동감을 더한다. 과거에는 주로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했다면 현재는 제약회사의 피 묻은 돈과 싸우는 중이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인생에서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낸과 같은 사람은 결코 만난 적이 없다"며 경력이 끝날 수 있는 위기에도 여전히 행동하는 진정한 혁명가라고 평가한다.
영화가 끝나면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는 묘한 기분이 동반된다. 어렵게 쌓은 명성과 목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모범적인 사례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참고로 마약성 진통제 관련 작품에 관심 있다면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돕식: 약물의 늪>, 넷플릭스 <페인킬러>를 추천한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옥시콘틴과 새클러가문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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