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아동학대 살인사건, 아이의 '마지막 그림'에 담긴 메세지
[이준목 기자]
'2008년 울산 아동 계모 살인사건'은 계모가 7살 의붓아들을 잔인하게 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충격적인 아동학대 살인사건이었다. 가해자는 아이에게 끔찍한 일을 벌여놓고서는 방송에 나와 아이를 걱정하며 찾는 척, 뻔뻔하게 거짓 연기를 한 사실까지 드러나며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사후에 아이가 남긴 그림에서는 차마 말하지못한 아동학대의 흔적과, 간절히 구원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뒤늦게 밝혀져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정작 무고한 아이를 학대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는 시간이 흘러 지금은 멀쩡하게 세상에 다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아이는 왜 그토록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으며, 아이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5월 9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서준이가 사라졌다'라는 부제로 울산 아동 살해사건의 비극적인 진실을 조명했다.
2008년 2월, 설 연휴를 앞둔 날 울산의 한 지구대에 한 여성이 찾아왔다. 생기 하나없는 지친 표정으로 등장한 그녀는 집 앞에 놀러 간 아들이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아이의 이름은 최서준, 2002년생으로 당시 7세였다. 신고한 여성은 바로 서준이의 엄마 안씨였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아동 실종사건이 속출하면서 경찰은 서준이 사건도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닐수 있다는 연관성에 무게를 싣고 곧바로 집중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대대적인 인력을 동원하여 인근 지역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어디에서도 서준이의 흔적도 목격자도 찾을수 없었다. 이에 서준이의 부모는 방송에까지 출연하며 아이를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서준이의 엄마는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장만한 서준이의 원복을 공개하며 "제발 무사무탈하게 집으로 보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모습은 숙연함을 자아냈다. 서준이의 부모는 이후로도 보이는 사람들마다 직접 실종전단을 배부하기도 했다. 만나는 시민들은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방송출연 이후 여러 가지 제보 전화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뚜렷한 소득 없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수색이 막막해진 상황에서 어느날 한 자리에 모인 형사들은, 그동안 탐문한 정보들을 공유하다가 문득, 뜻밖의 사실을 알게된다. 서준이의 엄마 안씨가 이틀 전 백숙을 해 먹는다며 시장에서 닭을 사갔다는 것이다. 아이를 잃어버려서 낙심해있을 엄마의 행동으로는 뭔가 어울리지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서준이 엄마의 이상한 행동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얼마 전 서준이가 다닐 예정인 유치원을 찾아가 신학기 물품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방송에서도 공개했던 서준이의 유치원복과 가방은 모두 해당 유치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경찰이 한층 서준이를 찾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서준이의 엄마만은 마치 아이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상함을 감지한 형사들은 이때부터 서준이 엄마를 '용의자'로 규정하고 사건의 시작으로 돌아가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서준이의 아빠는 실종당일인 2월 6일, 직장이던 시장 떡집에서 하루종일 근무했다는 동선과 알리바이가 확인됐다.
서준이 엄마는 경찰조사에서 아이가 실종된 당일의 타임라인, 서준이와 나눈 대화, 심지어 아이에게 줬다는 동전의 개수까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이고 일관된 서준 엄마의 주장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포착하고, 사전에 '준비된 진술'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결정적으로 경찰은 아이가 실종된 날 수변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는 서준 엄마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휴대폰 위치조회 결과, 서준 엄마는 아이가 실종된 날 울산 자택에 없었고, 무려 25킬로미터나 떨어진 경주의 한 외딴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제 서준이 엄마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확신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수사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경주로 가는 길목의 모든 CCTV를 조사했으나 서준이와 엄마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명확한 증거없이 정황만으로 피해자의 가족을 추궁한다는 것은 자칫 역풍을 맞을수도 있었던 데다, 용의자가 적당히 핑계를 둘러대며 부인해버리면 입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하여 베테랑 수사관을 투입하여 서준이 엄마에 대한 대면조사에 나섰다. 수사관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기습적으로 "경주에는 왜 가셨나"는 질문을 던졌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서준이 엄마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담배를 한 대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사실을 모두 알아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그때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실 안씨는 서준이의 친모가 아니었다. 서준이가 2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생모는 집을 떠났고, 이후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서준이는 5개월 전부터 새엄마 안씨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준이의 실종을 둘러싼 충격적인 진실이 마침내 밝혀졌다. 실종 신고 하루 전날, 안씨는 할머니 방에서 TV 시청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준이의 뺨을 때렸고, 이후 저녁시간에는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한 것에 또다시 분노해 플라스틱 빗자루로 등과 허리 부분을 여러 차례 때렸다고 진술했다.
또한 안씨는 서준이가 맞은 뒤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은 데 더욱 격분하여 복부를 발로 걷아찼고 쓰러진 서준이를 재차 주먹으로 여러 차례 더 가격했다. 서준이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안씨는 서준이를 방에 눕혀놨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아이가 사망한 상태였다면서 "죽일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만 5세에 불과한 어린 아이가 별다른 잘못도 없이 어른도 견디기 힘들 잔혹한 폭행을 당하여 사망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작 서준이를 죽인 범인은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인척 방송까지 나와서 경찰과 국민들을 모두 기만했다는 것이,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당시 형사들은 범인에게 속았다는 억울임이나 비정한 새 엄마에 대한 분노보다도, '슬픔'을 먼저 느꼈다고 한다. 형사들은 서준이의 시신을 어떻게 했는지 안씨를 추궁했다. 안씨는 사망한 서준이의 시신을 커다란 종이 상자에 넣은뒤 콜밴을 불러 경주로 이동했다고 한다. 안씨와 서준이가 CCTV에 전혀 포착되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리고 안씨는 경주의 외딴 마을에 도착하여 한 폐드럼통에 서준이의 시신을 상자를 밀어 넣고, 주유소에서 구매한 휘발유를 이용하여 시신을 불태우며 서준이를 두 번이나 죽였다. 이후 그녀는 끔찍한 범행 후 아이를 찾는 척 하며 지구대에 실종 신고를 하고 TV 출연까지 했던 것이다. 현장 검증 당시, 지켜보던 시민들은 안씨를 향하여 "사람이 아니고 사람 가죽만 뒤집어쓴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하나같이 경악과 분노를 금치못했다고 한다.
전문가는 안씨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숨기는 커녕, 뻔뻔하게 방송까지 출연한 심리에 대하여 "자기애가 높은 나르시스트이며 동정심을 유발해서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다" 는 분석을 내렸다.
안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을 속이는데 성공했지만 그녀의 연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빈틈을 드러냈다. 슬픈 엄마는 연기할수 있었지만 진심으로 서준이를 사랑하는 엄마를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준이의 비극이 모두 알려지고 난뒤에야 동네에서는 안타까운 목격담이 속속 드러났다. 서준이는 새엄마 안씨와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수시로 폭행을 당하여 상처가 점점 늘어났다. 보다못한 서준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권유하자, 안씨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간섭마라"며 도리어 역정을 냈다고 한다. 서준이의 친부 역시 계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수시로 아이를 폭행하고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왜 주변에서 그토록 많은 목격담이 있었음에도 정작 서준이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전혀 없었던 것일까. 2022년 기준, 아동학대 신고 전화는 약 4만 5천 건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16년전, 서준이 사건이 발생했던 2008년만 해도 불과 7천여 건에 지나지않았다. 이는 부모의 체벌이 사랑이나 가정교육이 아닌 학대라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상황을 짐작한 이들도 '남의 집 개인사'라는 생각에 주변에서 차마 참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씨는 사건 당일날 서준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행에 대해서 "분노해서 폭행을 한게 아니라 평소에 혼내는 것처럼 했다. 아이를 평소에 그렇게 미워했던건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그런데 이는 아동학대 부모들의 공통된 변명 패턴이기도 했다. 아이를 사랑해서 과하게 훈육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아동학대 사건은 가해자 진술 외에는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진실이 밝혀지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가해자들의 변명이 법정에서 인정되어 감형을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2000년대 이후 다수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중 살인죄가 인정된 경우는 극소수이며, 유죄의 경우도 미국에서는 3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는데 비하여 한국은 대부분 5년 이하의 가벼운 형벌에 그쳤다.
안씨의 살인죄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서준이의 시신이었다. 놀랍게도 서준이의 시신은 불에 탔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전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부검을 통해 직접적 사인을 밝힐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담당 형사는 "아마 서준이가 저희한테 할말이 많이 남았던 것 같다"고 먹먹한 기색으로 회상했다.
부검 결과 서준이는 내장이 심하게 훼손되어 내장 파열로 인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횡격막, 간, 위장, 폐 일부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복부에 지속적으로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진 것으로 추정되어 안씨가 진술한 것보다 더욱 심한 물리적 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유력했다. 서준이의 시신이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발견된 것은, 그 어린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맞은데가 아파서 고통을 홀로 참아야했음을 드러낸 흔적으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씁쓸한 뒷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씨의 죄를 인정했지만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의사를 계속 표시하고 있는 점, 피고인의 남편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피고인에 대해 '상해치사죄'의 법정형 상한인 '징역 15년'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경찰은 안씨의 행위가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서준이 친부는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안 씨의 선처를 호소하며 많은 이들을 허탈하게 했다.
2024년 현재는 안씨가 이미 모든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을 시점이다. 잔인하게 학대당하고 죽음에까지 이른 아이는 사라지고 잊혀져버렸는데, 정작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는 멀쩡히 살아서 세상 빛을 다시 볼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서준이가 사망하기 전 2달 동안 아이가 그린 그림들이 뒤늦게 공개됐다. 제작진은 당시 서준이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동심리 전문가들에게 사전 정보를 주지않고 오직 그림에 대한 분석만을 의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그림에 그려진 아이의 눈이 공허하고 손과 발이 없다. 환경에 대한 무력감, 내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표현이다. 아이는 집에서 갈등과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집에 그려진 전등은 사랑을 상징한다. 사랑에 대한 결핍 때문에 보상기제로 전등을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소름이 돋을만큼 정확한 분석을 내렸다.
또한 서준이의 마지막 그림에서는 직접적으로 '가해자'와 그에게 고통을 당하는 아의 모습이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오직 그림만으로 "가정폭력 가정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 대상은 상황을 통제하는 '여성'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하며 실제로 서준이가 처했던 상황과 거의 일치하는 분석을 내렸다.
한편으로 서준이의 마지막 그림은, 해외의 유명 논문에 예시로 인용된 학대받은 아이의 그림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학대를 겪는 아이들의 심리가 국적과 환경을 떠나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이지만, 안타깝게도 서준이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최근에는 아동학대 관련 단체로 생기고 SNS 활동도 활성화되며 가해자 처벌 요구와 아동학대 추모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16년전의 서준이는 범인인 계모의 잔혹성만 화제가 되었을뿐, 그 이후 판결이 어떻게 되었는지, 서준이가 어디에 묻혔는지 뒷이야기는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방송은 부디 지금이라도 서준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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