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 시장 거버넌스 공정성 논란 시험대 [공기업은 지금]
- 한전 등 중앙기관 위주 비상임이사 선임 지적
- 가파른 재생e 성장세, “거버넌스 변화가 시작점”
한국전력거래소의 의결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재생에너지 등 민간 발전사업자의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1년 연임에 성공한 정동희 이사장이 전력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10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등 민간발전업계는 최근 자체 연구 및 용역을 통해 전력거래소 거버넌스 선진화 방안(개선안)을 도출해 발표했다.
전력거래소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한 시장운영자 역할을 하는 한편, 한국전력·발전자회사 중심의 운영이 아닌 다양한 발전업계가 공정하게 의결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갖춰야 한다는 게 골자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력거래소를 향한 민간발전업계의 거센 거버넌스 변화 촉구 움직임은 이미 현실이 됐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 등 소속 태양광 발전사업자 84명은 지난 3월28일 광주지방법원에 전력거래소를 대상으로 이사회결의 무효확인 소송을 접수했다.
이들은 전력거래소 이사회 중 회원대표 비상임이사직(사기업의 사외이사 개념) 선임 기준이 사실상 한전 및 발전자회사 재직 임원만 가능해 재생에너지업계의 의견을 수용할 구조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2년 3월 전력거래소는 이사회 및 총회 의결을 거쳐 회원대표 비상임이사 선임 기준을 기존 ‘거래소의 회원자격을 갖춘 회원사의 임원급 이상’에서 ‘출자금 납부의 경과조치에 따라 출자한 회원사의 임원급 이상’으로 변경했는데, 이 기준에 부합하는 회원사가 한전과 발전자회사뿐이라는 것이다.
소송에 참여한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이하 대태협)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관련 수많은 정책을 검토하고 의결하려면 많은 소통과 이해력이 필요한데, 이를 담당하는 위원들이 정작 재생에너지와 관계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관상 5인 이내로 둘 수 있는 전력거래소 이사회 회원대표에는 오흥복 한전 기획부사장, 전대욱 한수원 경영부사장, 이상규 남동발전 안전기술부사장 등 한전과 연관된 3인이 비상임이사로 참여 중이다.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원 사업자와 융화돼야”
의결권 행사 비중이 ‘발전량’을 기준으로 부여되는 점 역시 재생에너지업계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다.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총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로 전 세계 평균(30%)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대태협 관계자는 “협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총회에 참석했는데 발전량에 따라 의결권이 부여돼 결과적으로 아무 의견도 수용되지 못했고 헛걸음을 했었다”면서 “국회의원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비례대표가 있는데 이러한 체계 없이 본인들끼리만 소통하는 총회라면 굳이 참여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재생에너지업계는 시시각각 성장하고 있으며 글로벌 수요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면서 “발전량 조절이 되지 않아 출력제한을 반복하고 있고 송·배전망 구축도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목표를 제시하는 정책들만 나오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빠르게 관련 정책을 수립·추진하려면 이러한 거버넌스 변화가 시작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이어서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이사회에서 다루는 내용이 전반적으로 회원사 이해관계보다는 전력거래소 경영에 대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와 연관된 선임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소송 건 외에 내부적으로 거버넌스에 대한 법률 검토 및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과거 화력발전 중심의 거버넌스에 새로운 재생에너지원이 포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기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 2001년 전력거래소 설립 당시 전력시장 참여주체는 화력발전을 중심으로 10곳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기준 발전사 총 6333개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태양광의 발전량 자체는 기존 전력(화력 등) 대비 여전히 작은 규모지만 회원사 수는 무려 6013개에 달한다.
홍근기 고려대학교 교수는 “한전 등 관계자들이 이사회의 주를 이루게 되면 아무래도 해당 정부의 기조에 맞는 정책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당초 전력거래소가 독립한 이유였던 ‘거래’ 측면에서의 간접적인 개입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전력거래소는 어떠한 발전사업자라도 누구나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는 객관적 시장으로 형성돼야 하는 만큼, 본연의 역할 수행을 위해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정책적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다양한 에너지원 사업자들과 융화될 수 있는 제도·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거버넌스 관련 이슈는 현재 공기업 경영평가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동희 이사장의 주요 해결과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 2021년 문재인정부 시절 취임한 정 이사장은 지난 4월1일자로 3년 임기가 만료됐으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임에도 이례적으로 1년 연임에 성공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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