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잘못된 만남? ‘신세계’는 없었다 [스페셜리포트]
‘유통 공룡’ 신세계그룹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본업 부진으로 현금흐름이 위축된 가운데 이커머스 계열사 SSG닷컴 재무적투자자(FI)에 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 상환 압박마저 받고 있다. 수년 전 SSG닷컴은 FI에 총 1조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2024년 상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기업공개(IPO)는 속절없이 미뤄졌고 SSG닷컴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FI 측은 투자금 회수를 압박하고 나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로 그룹 재무 리스크가 가중된 데다 FI에 1조원 회수 압박을 받게 되자 신세계그룹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단 우려가 팽배하다.
주주간계약 5년여 만 부메랑
‘풋옵션’ 달린 자본 → 부채 돌변
지난 2018년 10월 31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신세계그룹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커머스 사업에 국내 최대 규모였던 1조원 투자 유치를 자축하며 당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철주 어피너티 부회장, 윤관 BRV 대표 등은 손을 맞잡았다. 윤관 대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맏사위다. 어피너티는 홍콩계 사모펀드로 당시 한국을 비롯 동북아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신주인수계약 체결에 앞서 투자 유치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낸 보도자료에선 “2023년 연매출 10조원을 달성해 그룹 핵심 유통 채널로 성장시키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담았다. 자신감에 찬 신세계그룹은 5년 내 SSG닷컴 거래액(GMV)이 5조1600억원을 넘지 못하거나 복수의 증권사에 기업공개(IPO) 가능 의견서를 받지 못하면 1조원을 FI 측에 돌려주기로 주주간계약을 맺었다. FI에 빌린 돈은 형식적으로는 자본이지만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꼬리표가 달려 실질적으로는 상환 의무를 띤 부채 성격이 짙다.
장밋빛 전망에 들떠 체결했던 주주간계약은 불과 5년여 만에 부메랑이 됐다. 이커머스 업황은 신세계 예상과 정반대로 갔다. 공격적인 물류 투자를 앞세운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지배적 사업자로 등극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기업 입지는 갈수록 위축됐다. 검색 기반 플랫폼 네이버마저 커머스로 수평적 다각화에 나섰고 최근에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중국계 e커머스)’ 공세까지 매섭다. 5년 전 꿈꿨던 매출 10조원과 상장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SSG닷컴 매출은 1조6784억원, 영업적자는 1030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 안팎에선 투자 유치 당시 주주간계약으로 체결한 풋옵션이 훗날 발목을 잡을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주주간계약에 담긴 풋옵션 행사 요건을 두고 현재 SSG닷컴 대주주인 이마트와 신세계는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과 벼랑 끝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어피너티와 BRV는 SSG닷컴에 2019년 7000억원, 2022년 3000억원 등 총 1조원을 투자해 각각 15%씩 지분을 갖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FI 간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타협점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세계 측은 SSG닷컴 GMV가 주주간계약 요건을 충족해 풋옵션 부담을 덜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FI 측은 상품권 판매 등 중복 계상 거품을 걷어내면 실질 거래액은 주주간계약 요건에 못 미친다는 주장을 편다. 풋옵션 행사 예정 기간은 지난 5월 1일부터 2027년 4월까지다. 아직 3년이라는 기간이 있어 FI 측이 풋옵션을 즉각 행사하기보단 신세계그룹과 피 말리는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실패한 ‘머니게임’ FI 무리수 시각도
주주간계약 쟁점은 ‘상품권’이다. 양측은 SSG닷컴에서 판매한 상품권 거래액의 GMV 포함 여부를 두고 대립을 빚는다. 신세계 측은 이커머스업계에서 통상 상품권 판매를 GMV에 포함시켜온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FI 측은 상품권을 GMV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상품권으로 다른 상품 구입 시 거래액이 이중 집계되는 중복 계상 문제가 있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SSG닷컴에서 10만원짜리 상품권을 구입한 뒤 이 상품권으로 물건을 샀다고 치자. 이 경우 상품권 구매에 따른 1차 거래와 상품 거래에 따른 2차 거래가 발생한다. FI 측은 2차 거래만 GMV에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논란이 빚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GMV 정의가 모호해서다. GMV 자체가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이커머스 플랫폼 거래 규모에 따른 성장성과 점유율 등을 추정하기 위한 보조 지표 성격이 짙다. 상당 기간 누적 적자가 불가피한 플랫폼 특성상 기업가치를 계산할 때도 재무지표보다 GMV가 주로 쓰였다.
다만, 상품권 판매의 회계상 처리는 결을 달리한다. 상품권만 판매한 1차 거래에서는 매출이 아닌 선수수익으로 처리되는 게 통상적인 회계처리 방식이다. 발행자 입장에서 아직 상품과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전이므로, 이행해야 할 의무가 남았다고 보고 부채로 보자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상품권 판매 땐 부채로 인식하되, 해당 상품권으로 판매가 이뤄지면 부채를 차감하면서 매출로 인식한다.
이에 비춰, 상품권 판매를 늘리는 것은 SSG닷컴 입장에선 사실상 밑지는 장사다. SSG닷컴은 지난해 자체 발행한 상품권을 3~5%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럼에도 SSG닷컴이 상품권 판매에 주력했던 것에는 GMV를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성 측면이 깔려 있다고 본다. 당초 SSG닷컴은 IPO를 염두에 두고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 계열사 간 위수탁 거래 기반 총 거래액을 늘리는 데 주력해왔다. 직매입 사업은 거래액 대부분이 매출로 반영되지만, 오픈마켓 사업은 거래액 가운데 일정 비율만 수수료 형태로 매출로 인식된다. 예컨대, 소비자가 SSG닷컴을 통해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 상품을 구매할 경우, 결제 금액은 SSG닷컴 총 거래액에는 모두 반영되지만 회계상 매출액에는 수수료 개념으로 일부만 반영된다. 대신, 상품 재고를 갖고 있는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 매출로 인식된다. 이런 식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계열사 매출 확대에 기여하겠다는 게 SSG닷컴 경영 전략 중 하나였던 만큼 상품권 거래 자체를 GMV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신세계그룹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관건은 주주간계약에 GMV 산정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시됐느냐다. 주주간계약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이 직매입하는 제품과 SSG닷컴에 입점한 업체(오픈마켓)가 판매한 제품 등 실질 거래만 GMV로 계산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FI 측은 이 대목을 협상 지렛대 삼아 신세계그룹을 압박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주주간계약 상세 내역에 대해 어피너티 측은 “신세계 측과 성실하게 논의해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자본 시장 일각에서는 실패한 ‘머니게임’으로 평판 위기에 노출된 FI들이 풋옵션 행사를 위해 GMV 요건을 무리하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내보인다. 신세계와 이마트가 사업보고서상 금융부채를 제거한 대목은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최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마트는 “풋옵션이 발생하지 않는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그동안 인식해온 금융부채 5879억원을 제거했다. 신세계도 같은 내용을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시했다. 이마트 감사인은 삼정회계법인, 신세계 감사인은 삼일회계법인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인이 주주간계약서에 구체적으로 적시된 GMV 산정 방식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신세계그룹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 같다”며 “FI 측 주장대로면 신세계그룹이 주주간계약과 다른 방식으로 GMV를 산정했음에도 이런 방식을 회계법인이 인정해 금융부채를 덜어냈단 의미인데, 상식적이지 않은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양측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소송전으로 비화할 경우 법정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회계처리 적정성 문제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시각이다.
이런 이유로,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양측에 모두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이 때문에 신세계그룹이 일부 투자금을 우선 상환하는 방향으로 협상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관계자는 “법적 분쟁으로 치달을 경우 투자금 회수가 더 힘들어질 수 있어 신세계나 FI나 둘 다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현시점에서 투자자가 회수를 원하는 금액을 신세계가 일부 지급하고 나머지는 차차 논의하는 쪽으로 협상의 중지를 모아갈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영업권 상각·금융비용만 수천억
SSG닷컴 풋옵션 이슈를 차치하더라도 신세계그룹이 풀어야 할 숙제는 켜켜이 쌓여 있다. 풋옵션 이슈가 소송전으로 비화하지 않더라도 신세계그룹 입장에선 FI 지분을 서둘러 되사오는 편이 ‘차악’ 선택지다. PE업계 관계자는 “FI가 주요 의사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어 신세계그룹 입장에선 달리 손쓸 방도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본업 부진은 물론 부동산 PF 이슈로 신세계그룹 곳간 사정이 빠듯하다는 데 있다.
당장 본업부터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대형마트 1위 이마트는 이커머스와 계열사 신세계건설 부진 등으로 지난해 469억원 영업적자, 187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본업 현금흐름이 위축된 가운데 무리한 인수합병(M&A)과 설비 투자 등에 타인 자본을 활용하면서 빚만 잔뜩 늘었다. 2019년 6조원이었던 이마트 총 차입금(이자 발생 부채)은 지난해 11조5000억원까지 늘었다. 올해 별도 기준 이마트 예상 영업이익은 70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해마다 금융비용으로만 수천억원을 내야 한다. 이대로는 당기순손실을 피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유통업계와 시장에서는 G마켓(당시 이베이코리아) 인수가 그룹을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은 패착이 됐단 시각이 존재한다. 인수 자금으로만 3조원을 베팅한 탓에 이마트 재무 곳간이 바닥났고 SSG닷컴 역시 적기 투자 기회를 놓치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단 지적이다. 쿠팡을 견제할 목적으로 G마켓·옥션을 3조원 주고 인수했지만 FI 견제로 SSG닷컴과 물류 통합은 발도 못 뗐고 영업권 상각과 손상차손으로 회계 장부는 누더기가 됐단 지적이 비등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인수 금액이 세간에 알려진 뒤 롯데를 비롯 경쟁 그룹에서는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였다. 시너지는 고사하고 영업권 상각으로 골칫거리가 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G마켓 인수에 따른 영업권 상각이 뼈아픈 대목이다. 영업권은 매매 금액 가운데 피인수 회사의 장부상 순자산을 제외하고 추가로 낸 웃돈(프리미엄)을 회계 장부에 기록한 것이다. 기업을 인수할 땐 유형자산 외 영업 노하우, 브랜드 인지도 등 장부상 드러나지 않는 무형자산이 적지 않은데, 이를 회계 장부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인수한 기업가치가 급감할 때다. 영업권은 매년 감사인에게 재평가를 받는다. 영업권의 공정 가치(Fair Value)를 따져 장부 가치보다 밑돈다면 이를 상각한다. 즉, 영업권 재평가 때 과거 인수했던 기업가치가 감소했다면 그만큼 영업권에서 상각한다. 이를 회계용어로 PPA(purchase price allocation)라고 부른다. PPA에 따른 영업권 상각은 영업이익에서 차감된다.
영업권 상각으로 실제 현금 유출이 발생하진 않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신용 우려 부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 지난해 신용평가사는 이마트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영업권 상각 등에 따른 재무 구조 악화가 주된 요인이다. 신용등급 추락 땐 회사채 발행·신규 대출 등이 난항을 겪는다.
서정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쿠팡에 대항하고자 G마켓·옥션을 무리하게 인수했지만 물류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는 바람에 영업권 상각과 손상차손으로 회계 장부를 얼룩지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세계건설, 미분양 ‘직격탄’
이마트로 신용위험 전이 우려↑
두 번째 리스크는 신세계건설이다. 신세계건설은 한때 ‘부도설’로 입길에 오를 만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당초 신세계건설은 그룹사 설비 투자를 맡는 내부 거래로 매출을 유지해오다 이마트, 스타필드 등이 주춤하자 독자 시장 개척을 위해 ‘빌리브(VILLIV)’ 브랜드로 아파트 시공에 뛰어들었다. 그룹사 매출 비중은 줄었으나 미분양 우려가 큰 지방 사업장을 중심으로 시공을 늘린 게 독이 됐다는 지적이다.
신세계건설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위험 사업장은 대구다. 대구의 미분양 주택은 올 3월 기준 9814가구로 전국 1위다. 신세계건설은 대구에서 빌리브루센트, 빌리브라디체 등 주상복합 사업을 다수 벌여 대규모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건설사 주요 손익 지표인 미수금, 미청구 공사 가운데 어느 지표로 보든 신세계건설은 살얼음판이다. 미수금은 건설사가 도급받은 공사나 분양을 완료한 후 발주처에 공사비를 청구했음에도 받지 못한 금액을 뜻한다. 미청구 공사대금은 시공사가 공사는 진행하고도 아직 발주처에 청구 못한 금액을 말한다. 정상적으로 시공과 분양을 마쳤다면 문제 될 게 없지만 지금처럼 분양이 차질을 겪으면 현금흐름이 둔화하고 재무 구조 악화 요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미분양 직격탄을 맞은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영업손실 1878억원을 기록했다. 대구 ‘빌리브라디체(미수금 647억원)’ ‘빌리브스카이(276억원)’ ‘빌리브루센트(237억원)’ 등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해 부채비율은 1년 새 265%에서 954%로 수직 상승했다. 특히 만기 1년 안팎 단기 차입금은 2022년 말 515억원에서 지난해 말 1700억원으로 급증했다.
진짜 위기는 준공 후 미분양이다. 1~2년 뒤에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부동산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더 큰 리스크를 안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 1만2194가구로 전월(1만1867)보다 약 3%(327가구) 늘었다.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역별로는 대구의 준공 후 미분양이 2월 1085가구에서 3월 1306가구로 가장 크게 늘었다.
특히 책임준공이 부메랑으로 돌변할 수 있다. 책임준공은 100% 분양이 되지 않더라도 건설사가 책임지고 건물을 짓겠다고 약속하는 것. 즉, 분양이 안 되더라도 건설사가 차입을 해 공사를 완료해야 하므로, 준공 후 미분양은 건설사에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온다. 지방은 대부분 사업장에서 대주단이 건설사에 책임준공과 조건부 채무 인수, 연대보증 약정 등 신용 보강을 줄줄이 걸어놨다. 과거 두산건설이 준공 후 미분양 최악의 케이스다. 두산건설은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일산의 한 아파트 시공을 맡았다가 준공 후 미분양을 대거 떠안았다. 두산건설은 PF 보증으로 조 단위 손실을 내 존폐 기로에 섰고 두산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휘청거렸다. 신세계건설이 자칫 그룹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단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세계건설이 신종자본증권 조달과 부동산 PF 펀드 조성 등으로 전방위 자금 조달에 나서는 과정에서도 결국 모기업 이마트와 얽히고설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현재 신세계건설은 부동산 PF 펀드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줄이고 주요 증권사와 사모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부동산 PF 손실 흡수 능력 확대를 위해 신종자본증권 등을 통한 부채 회피 전략을 적극 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에서는 모회사 이마트 신용 보강 없이 신세계건설 자체 신용만으로는 자금 조달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본다.
신종자본증권은 통상 30년 이상으로 만기가 길어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통상 2~5년 뒤 조기 상환할 수 있는 조건(콜옵션)이 부여된다.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높은 가산금리가 추가되는 ‘스텝업’ 조항이 달릴 때가 많아 콜옵션 기한이 임박할수록 부채 성격이 부각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건설 현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모회사가 시장에서 돈을 빌려 자회사에 다시 꿔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구조”라며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건설업 부진이 지속되고 조기 상환이 무산될 경우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세계그룹 돌파구는
자산 유동화·사업 효율화 속도
신세계 입장에서는 당장 폭탄으로 떠오른 ‘1조원 풋옵션’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일단락 짓는 게 갈급한 과제다. IPO를 통한 자금 마련은 현재로선 요원하다. SSG닷컴은 2021년 미래에셋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논의가 답보 상태다. IPO가 진행되더라도 FI 지분을 되사오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기업가치로 최소 3조3000억원을 인정받아야 FI에 1조원 투자금을 돌려줄 수 있다. 현재 시장에서 예상하는 SSG닷컴 몸값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유형자산 매각·유동화를 통한 자금 마련이 대안으로 꼽히지만 선택지가 좁다. 알짜로 꼽히는 부동산 자산은 이미 상당 부분 팔았다. 소비재 업종에 속한 여타 계열사나 사업부 매각은 최근 소비 심리 둔화로 시장 관심이 높지 않다. 최근까지 주력했던 SSG페이(쓱페이)와 스마일페이 매각 역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지난해 6월 신세계는 SSG페이·스마일페이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토스를 선정하고 협상을 벌였다. 이 탓에 일각에서는 ‘신세계가 자금 마련을 위해 스타벅스 경영권을 매각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은 “스타벅스 경영권 또는 소수 지분 매각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금 마련과는 별개로, 신세계그룹은 사업 효율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마트가 진행 중인 ‘오프라인 3사 통합’도 그 일환이다. 이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이마트에브리데이, 편의점 이마트24의 통합이다. 3사 통합으로 구매 협상력을 늘리고 물류 체계를 효율화한다는 방침이다. 비슷한 지역 안에 있는 물류센터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을 높이거나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 오프라인 3사 통합으로 기대되는 수익 개선 효과는 연간 1000억원 이상이다.
구조조정도 계속된다. 이마트는 현재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다. 최근 창립 31년 만에 처음으로 근속 15년 이상 직원 대상 전사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수익 부진 사업도 손질에 나섰다. 반려동물 전문 브랜드 ‘몰리스사업부’를 폐지하고 패션·테넌트사업부로 통합, 외부 전문점 수를 축소하고 있다. 이마트 점포 내 골프 전문 매장도 정리 중이다.
지난해 9월부터 스포츠 매장 내 골프 전문점의 납품을 중단하고 점포 정리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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