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꽃 한 송이도 못 받았습니다만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윤용정 기자]
어버이날 전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과 친정을 다녀왔다.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꽃바구니와 용돈을 드렸다. 부모님은 우리가 올 때를 맞춰 만들어 두신 각종 김치와 밑반찬, 손수 키운 채소들을 바리바리 싸 주셨다. 부모님이 어린이날이라고 아이들한테 용돈을 주셨다. 우리가 드린 용돈보다 돈을 더 많이 쓰셔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버이날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꽃바구니를 들고 가는 교복 입은 아이 한 명과 꽃가게 앞에서 진지하게 꽃바구니를 고르는 아이 한 명을 봤다. 어린이날이라고 시댁과 친정에서 용돈을 두둑이 받은 고3 아들과 고1 딸을 생각하며, 내심 기대를 했다.
나는 작년까지는 꽃이 예쁜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누가 꽃을 선물로 주면, 며칠 못 가 시들어버릴 꽃보다는 차라리 먹을 걸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 봄 들어 나이 탓인지, 길가에 핀 꽃들이 너무 예뻐 보여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대다가, 결국 화분 몇 개를 집안에 들여놓기에 이르렀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아이들이 예쁜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 사다 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오후 다섯 시쯤,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빈손이었다.
"너 왜 빈손이야?"
"돈이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용돈 받았잖아."
"옷이랑 신발 샀어. 미안, 헤헤."
"꽃 한 송이 살 돈도 없었어?"
"엄마 꽃 별로 안 좋아하잖아. 엄마, 사랑해."
"엄마 이제 꽃 좋아하는데..."
돈이 필요하거나 상황이 불리할 때만 나오는 딸의 필살기, 눈웃음 애교에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잠시 후에 아들이 학원 가기 전에 잠깐 들렀다며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나를 한 번 안아주고 나갔다.
▲ 부모님이 싸주신 반찬(나물)을 넣고 만든 꽃 같은 김밥 |
ⓒ 윤용정 |
열한 시쯤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자려고 누웠는데 쓱 들어와 남편과 내게 각각 편지와 초콜릿을 주고 나간다. 한밤중의 깜짝 이벤트에 놀라 편지를 열어보니, 건강하게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 백 번도 모자랄 만큼 사랑한다고 적혀 있다. 너무 좋아서 입은 웃는데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자기 거 줘 봐. 뭐라고 썼나 좀 보자."
평소 혼내기만 하는 아빠한테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 썼을 거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편지를 읽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항상 가족을 위해 애쓰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자신 또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 감사한다, 사랑한다... 나한테 쓴 것보다 무려 두 줄이나 더 썼다!!
"뭐야? 왜 자기한테 더 길게 쓴 거야! 글씨도 더 정성껏 썼잖아!"
▲ 어버이날 밤에 아들이 준 초콜릿과 편지, 나한테는 여덟 줄, 남편한테는 열 줄을 써서 질투가 났다 |
ⓒ 윤용정 |
"초콜릿이나 먹어."
남편이 초콜릿 하나를 까서 내 앞에 내밀었다.
"아, 잘 밤에 초콜릿을 왜 먹어?"
잘못은 없지만 얄미운 남편에게 괜히 성질을 내고는, 초콜릿을 받아 입안에 넣고 씹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질투심도 녹아버렸다.
▲ 아이들이 어릴 때 내게 보내 준 수많은 러브레터 |
ⓒ 윤용정 |
난 그때 이미 넘치게 받았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부모를 사랑한다. 아이들은 내가 그 누구한테도 받아본 적 없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주었다. 건강하게 이만큼 자라 제 삶을 열심히 살고 있으니 아이들은 이미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다 한 것 같다.
▲ 가족 모두에게 사랑과 감사를, 내돈내산 카네이션 |
ⓒ 윤용정 |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편지지를 놓고 앉았는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청소년 아이들이 부모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검색했다. '네가 엄마의 아들(딸)이라서 행복해, 잘 커줘서 고맙다,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실수해도 괜찮아...' 검색한 문장들을 읽다 보니, 나는 요즘 정반대의 말만을 해주고 있었던 것 같다. 편지는 어느새 반성문이 되고 말았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발행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