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작은 그리스도’가 돼주자”
“일이 놀이의 유쾌하지 않은 변주곡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일은 누구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이해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일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길입니다.”
자기계발서 저자가 전할 법한 이 조언의 주인공은 ‘독일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널리 알려진 목회자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이다. 나치 정권 전복 모의에 가담했다 독일 플로센부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본회퍼는 암울한 현실 가운데 방황하는 조국 청년에게 관심이 많았다.
청년을 향한 그의 애정은 192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인 회중교회 부목사 시절 전한 설교에 잘 드러난다. 당시 교회엔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빚더미에 앉은 고국을 떠나 돈을 벌러 온 이들이 꽤 됐다. 본회퍼는 이들에게 “삶과 순결을 위해 흑암 속에 역사하는 악한 세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자”며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며 스스로에 맞서 강한 청년이 돼라”고 권한다. 청년이 세파 가운데 ‘인간의 소중한 자산’인 순수함을 잃지 않으면서 인격적으로 성숙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당부다.
생전 본회퍼가 작성한 설교와 논문, 서신 등은 17권 분량의 전집으로 발간됐다. 책은 이중 그의 대표작과 국내 미출간 저작 일부에서 ‘청년’ ‘인간’ ‘신앙’ ‘영원’이란 주제로 선별해 발췌한 것이다.
청년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글은 주로 바르셀로나 거주 시절 작성됐다. 이 시기 자신이 돌보던 한 청년을 위해 쓴 메모에는 “인간의 힘은 기도에 있으니 청년의 때에 기도 습관을 기르라”는 내용이 나온다. “시대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시대의 전환점은 그리스도, 올바른 시대정신은 성령”임을 강조한 부분도 있다. 1928년 바르셀로나에서 본회퍼는 “모든 시대는 하나님과 직접 연결돼 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현재인 현시대를 섬기라”고 말한다.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이 당시의 소외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현재의 사람’이었듯, 그리스도인도 지금 이 세상을 섬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어 “(시대를 섬김으로써) 현재의 사람은 영원을 섬기는 자가 된다”고 강해한다.
독일로 돌아와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본회퍼는 1930년 미국에서 흑인 교회를 방문한 이후 ‘평화’와 ‘타자 사랑’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책에도 그의 관심이 반영된 설교가 여럿 실렸다. 베를린대 신학부 강사 시절인 1932년 전한 설교에선 “하나님의 진리로 자유롭게 돼 하나님과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혁명적인 인간”임을 역설했다.
나치에 저항하는 고백교회 운동에 동참한 이후로는 메시지가 더욱 선명해진다. 1934년 영국 런던에서 설교한 본회퍼는 “믿음을 선언하기에 앞서 형제와 화해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여기서 형제란 비신자와 낯선 인종, 배척당하고 추방당한 사람까지 모두 포괄한다”고 밝힌다. 덴마크 파뇌에서 열린 에큐메니컬 대회에서 평화를 주제로 설교한 것도 이즈음이다. “안전을 추구하는 길에는 평화로 가는 길이 없습니다. 평화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엄청난 모험이며 안전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비록 그 길이 십자가로 인도할지라도 승리의 길입니다.”
사후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본회퍼의 설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적잖은 건 그가 ‘말한 대로 행동한 의인’이기 때문이다. 39세에 생을 마감한 본회퍼의 조언을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청년’의 말로 이해하는 이유다. “서로에게 ‘작은 그리스도’가 돼주자”는 설교에선 작금의 한국교회가 새길만 한 지점도 나온다.
“오늘날 교회는 상대방이 내게, 내가 상대방에게 ‘작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고 돼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해 타인을 죄에서 구해내고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힘없고 연약한 우리 시대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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