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용배 (8) 날 부르시는 이가 하나님이라 확신, 목회자의 길 순종

신상목 2024. 5.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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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할 줄 모르니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기도하는데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내가 지은 것이 아니냐! 내가 너와 함께하니 순종하라'는 응답이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말할 줄 몰라 애굽에 갈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내가 지은 것이 아니냐 너는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말씀이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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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못해서 목회자 될 수 없다 했지만
기도 중 “내가 너와 함께하니 순종하라”
하나님 음성 듣고 신학 공부하기로 결심
박용배(왼쪽) 목사가 1985년 의성교회 전도사 시절 교회학교에서 인형극을 준비하는 모습.

나는 말할 줄 모르니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기도하는데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내가 지은 것이 아니냐! 내가 너와 함께하니 순종하라’는 응답이 있었다. 당시 내 몸무게는 43㎏ 정도로 바짝 마른 상태였고 빈혈이 심해 갑자기 일어나면 쓰러질 정도였다. 10여년 동안 객지에서 혼자 살면서 제때 식사하지 못했더니 위장이 약해져 조금만 매운 음식을 먹어도 배가 아팠다.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마지막 날 새벽에 비몽사몽 가운데 출애굽기 3장과 4장을 읽으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불을 켜고 성경을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모세가 하나님께 소명 받는 장면이 나와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말할 줄 몰라 애굽에 갈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내가 지은 것이 아니냐 너는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말씀이 나와 있었다.

나는 말을 잘할 줄을 모른다는 것과 학력이 모자라 신학교를 갈 수 없다고 핑계를 댔는데 그 말씀을 보고 나서는 더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나를 부르시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 맞다는 확신이 오니 더이상 못 한다고 할 수 없었다. 춘산교회 목사님을 찾아뵙고 의성에 있는 성경학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다. 성경학교가 3월 첫 주에 개강해 이미 5월 중순이 되어 있었는데 목사님은 자신이 성경학교 교장이니 시간이 지났지만 당장 따라가서 성경학교 기숙사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노트를 보고 옮겨쓰면서 성경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다음 날 목사님을 따라 성경학교에 갔더니 학생들이 30여명 있었고 신학교 학생 20여명이 다른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성경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앉아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과연 나 같은 사람이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나 같은 죄인이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졸업해 목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주의 종이라고 하는 목사로서 자격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닌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목회자로 사용하시려는 것일까. 자신도 없고 확신도 안 오고 그저 소리 없이 눈물만 계속 흘리면서 공부했다. 자신이 없으니 새벽마다 의성교회에서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못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으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밤낮으로 부르짖고 기도했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던 내가 성경학교 3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면서 검정고시로 중·고등 과정을 다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대구 계명전문대를 나오게 되었고 경산에 있는 대구신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의성교회 전도사로 교회 일을 했고 초등부와 중등부를 맡아 교회학교 사역을 하면서 총신대학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됐다.

그렇게 1987년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시험을 보고 합격했는데 등록금만 내고 한 해 휴학을 한 후 1988년 복학했다. 서울 면목동에 전세방 한 칸을 얻어 그동안 처가에 있던 아내와 아들 요셉과 딸 한나를 데려와 네 식구의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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