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유연한 쪽이 이긴다

2024. 5. 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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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저쪽은 둘인데 이쪽은 한 명이다. 2대1의 불리한 대결이 시작되려는 찰라, 상대가 묻는다. “혼자서 괜찮겠어?” 모범답안은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나 “그래도 내가 이겨”일 터. 그런데 마석도(마동석)의 답은 결이 다르다. “이 ××가…외롭지.” 영화 ‘범죄도시 4’의 한 장면이다.

이 대사는 ‘범죄도시 1’을 변주한 것이다. 앞선 영화에서 우연히 마주친 흉악범이 “혼자야?”라고 묻자 마석도는 답한다. “어, 아직 싱글이야.” ‘범죄도시 2’의 결투도 다르지 않다. 상대가 “돈 필요하면 나눠줘? 5대5로 나눌까?”라고 하자 마석도가 되묻는다. “누가 5야?” 이러한 웃음 포인트는 이제 ‘범죄도시’ 시리즈의 시그니처다.

컷 cut

그는 왜 일촉즉발의 순간마다 엉뚱한 한마디를 내뱉는 것일까? 상대의 전열을 흩트리려는 고도의 심리전? 그건 아닌 거 같다. 이유는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가 거침없이 공격해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석도는 자신에게 그 말을 던지는 듯하다. 왜냐고? 내 생각엔, 긴장을 풀려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심각한 말만 늘어놓다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경직되기 시작하면 몸 안에 갇히게 되고, 상대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어려워진다. 반면, 엉뚱한 한두 마디로 흐름을 흔들어놓으면 몸과 마음이 한결 유연해진다. 그래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 있다. 유연한 몸짓으로 상대가 예상치 못한 공간을 만든 다음 그 공간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시인 이성복은 말한다. “약한 사람일수록 말을 강하게 한다”고. (『무한화서』) 지금 당신이 어떤 싸움을 앞두고 있다면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 말이 세고 거칠면 스스로 약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다. 차라리 여유를 갖고 가볍게 말해보라. 분명한 건 어깨와 팔에 힘이 빠져 있을수록 당신이 좀 더 완성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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