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음이 두렵다”… ‘연명의료 거부’ 철회도 늘었다 [삶과 죽음 사이②]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철회자도 늘어
“환자 생각 더 신중히 들어봐야”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죽음을 택하겠다는 이들이 230만명을 넘어섰지만, 반대로 이런 결정을 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꾸는 이들도 함께 늘고 있다. 가벼운 마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접수했다가 변심하는 이들도 있지만, ‘확정된 죽음’이라는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의 반발에 어쩔 수 없이 선택을 철회하는 경우도 많다.
10일 국민일보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입수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철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의향서를 제출했다가 철회한 건수는 2020년 469건에 머물렀지만 지난해에는 925건으로 3년 만에 배 가까이 늘었다. 누적 통계로 보면 2019년 501건이던 철회자가 지난해 말에는 3241명이 됐다.
서울대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의 유신혜 교수는 “의향서를 작성한 뒤 ‘왜 그런 걸 써놨냐’고 노발대발하는 가족 손에 이끌려 철회하러 오는 분들이 많다”며 “부모님께 끝까지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효도라고 여겨지는 한국적 문화나, 의료 행위에 집착하는 문화와 관련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찬녕 고대안암병원 호스피스-연명의료중단센터장은 “환자 본인 의사로 철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보호자 분들의 의향인 경우가 훨씬 많다. ‘우리 부모님은 할 수 있는 치료를 끝까지 다 해달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본인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치료나 가족의 경제적 부담 등을 걱정해 연명의료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지만,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해 철회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셈이다.
유 교수는 “의향서를 한 번 제출하면 나중에 죽음에 대한 결정을 뒤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작성을 최대한 미루겠다’며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가 있다”며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멀쩡하게 잘 계시는데 왜 이런 걸 작성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했나’는 생각에 거의 100% 철회하러 온다”고 설명했다. 의사로서 부적절한 말일 수 있지만, 환자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충분히 강력한 말이 된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철회하러 온 사람들에게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지만 (내 결정을) 문서로 남겨놓는 것은 최대한 보류하겠다’고 얘기하는 케이스가 가장 많다”고 전했다.
유 교수는 “미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d Directive)의 경우 작성자가 마지막 삶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료조치를 받기를 희망하는지 등을 10~15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기술하게 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의향서는 한 장에 불과하다”며 “현재 의향서는 작성자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환자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와 동기에 대해 의료진과 가족들이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연 경희대 의인문학과 교수도 현재의 의향서에 ‘생애 말기 대화’에 대한 기술이 빠져있다는 점을 아쉽게 봤다. 박 교수는 “스스로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고 싶은 마음, 가족들의 뜻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 등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지만, 실제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30%가 채 안 된다. 명시된 항목에 ‘체크 표시’만 하게 돼 있는 현재 의향서에 ‘생애 말기 대화’가 포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향서를 작성했어도 이런 사실이 전해지지 않아 환자 의사에 반하는 연명의료가 종종 이뤄진다는 점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조정숙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환자가 의향서 작성 사실을 주위에 미리 알리지 않은 경우, 환자 의식이 없어진 뒤에야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이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때 가족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가 실시된다면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최근 의료기관들은 의향서 작성자들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증명하는 카드를 지급하고 있다. 훗날 연명의료를 해야 할 시기가 오면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달라는 게 환자의 뜻임을 표식으로 남겨두자는 의미다.
한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측은 이러한 의향서 철회 건수 증가가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조 센터장은 “전체 의향서 작성 건수 대비 철회 사례는 0.01에서 0.02% 수준에 그친다. 의향서 철회는 매우 드문 일이며, 기관에서는 아직 해당 수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천양우·최다희 인턴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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