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빙퉁그러진 자화상을 두 여자의 파국에 담다

김형욱 2024. 5.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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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마더스>

[김형욱 기자]

1960년대 미국, 정치부 기자 출신 셀린과 간호사 출신 앨리스는 회계사 남편과 약사 남편을 두고 동갑내기 아들 맥스와 테오를 키우고 있다. 그들 가족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지간으로 각별히 가깝게 지내고 있다. 와중에 앨리스는 다시 정치부 기자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진다.

셀린이 집안일을 하고 있던 사이 맥스가 지붕에 올랐다가 떨어져 죽고만 것이다. 사고 전 맥스의 마지막을 본 유일한 이는 다음 아닌 앨리스였다. 사고의 충격으로 셀린은 큰 충격에 빠지고 앨리스를 멀리 했다가 한 달여 후 정신을 차린 듯 돌아온다. 하지만 그 일 이후 테오가 땅콩버터 쿠키를 먹어 알레르기 반응으로 죽었다 살아나고 앨리스의 시어머니가 약을 제때 먹지 않아 심장마비로 죽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 

일련의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자 앨리스는 셀린을 의심한다. 앨리스가 전력을 다해 맥스의 죽음을 막지 않았다는 생각에 셀린이 복수하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 양부모와 함께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혼자만 살아남은 후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아왔다. 앨리스의 남편은 그녀의 정신병이 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의 심리 스릴러
 
 영화 <마더스> 스틸 이미지.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그렇다면 누가 주인공인 셀린과 앨리스를 연기했는지가 중요할 테다. 실제로도 절친으로 유명한 앤 해서웨이와 제시카 차스테인이 각각 셀린과 앨리스 역을 맡아 분전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두 배우를 한 스크린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충분할 것이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관계의 모습을 단단하고 깊이 있게 보여줬으니 말이다. 

아울러 1960년대 당시 미국의 의상과 분위기를 잘 구현했다. 아무래도 당시 기준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의 두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니 중요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반면 전체를 아우르는 연출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연기와 의상 등에 밀려서 크게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류의 심리 스릴러라면 개인 간의 우연적이고 지엽적인 충돌과 갈등보다 당대를 짙게 가로지르는 사건의 여파, 문화의 영향력, 시대상 등이 곳곳에서 엿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심리 스릴러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지점에서 부족했다. 1차원에 가까웠다고 할까. 

1960년대 미국의 빙퉁그러진 자화상
 
 영화 <마더스> 스틸 이미지.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우선 의상을 보자. 특히 두 주인공의 의상 말이다. 그들은 둘 다 전업주부지만 항상 '풀세팅' 상태다. 1960년대 미국의 빙퉁그러진 자화상 중 하나다. '여자라면 자고로 언제든 예쁘게 하고 있어야 한다'는 식인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세팅한다. 하루 종일 단 한순간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정치부 기자 출신의 셀린은 당연히 정치 현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둘의 남편들이 꺼내는 수박 겉핥기식의 정치 현안 대화에 끼지 못한다. '감히 남자들의 대화에 어딜 끼냐'는 식이다. 참지 못해 대화에 껴서 박식함을 선보일라치면 '여자 치고 대단한데?' 식의 비꼬는 대답이 날아온다.

맥스가 죽은 후 셀린과 앨리스의 파탄난 관계와 개인들의 무너진 심리는 1960년대 당시 미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반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1960년대 들어 베트남 전쟁으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됐으며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다양한 종류의 반문화운동도 지속됐다. 곳곳에서 삐걱거리며 흔들리고 또 무너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꽤 괜찮은 영화인 듯하나 막상 보면 당대와 맞물리는 해석까지 가닿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저 너무나도 친했던 두 여인이 큰 사고 후 반목, 시기, 의심, 갈등이 이어지며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감독은 분명 겉의 이야기와 속의 이야기를 잘 아울러 내보이려 했겠지만 말이다. '식상한 웰메이드' 정도가 어울리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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