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재벌 총수 발언... 윤석열 정부, 또 우스워졌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기자]
▲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남대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서 발언하고 있다. |
ⓒ 대한상공회의소 |
지난 2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현 반도체 업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 엔비디아와의 관계, 보조금에 관한 생각 등 반도체 관련 주목할 만한 여러 가지 발언을 했습니다.
좀처럼 듣기 힘든 솔직한 반도체 업계의 이야기가 재벌 회장의 입을 통해 나왔기에 오늘은 대통령님께 최 회장의 발언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역대급 반도체 실적?
제가 그 기자간담회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라 최 회장의 모든 발언은 <연합뉴스>에서 인용했음을 먼저 밝힙니다. 최근 언론들은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실적을 내놓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만 보면 우리 반도체의 미래는 장밋빛입니다. 여기에 대해 최 회장은 "작년에 (반도체 업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해 좋아진 현상도 그리 오래 안 간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2021년 이후 분기별 반도체수출액. 2024년 1분기 수출은 2023년 1분기에 비해 크게 늘었을 뿐, 문재인 정부인 2022년 1분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상황입니다. 파란색은 문재인 정부, 빨간색은 윤석열 정부로 구분했습니다. |
ⓒ 이봉렬 |
2024년 1분기 반도체 수출액은 약 309억 달러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50.7%나 늘었으니 역대급이라 해도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인 2023년 1분기의 수출액이 약 205억 달러로 전년 대비 40%가 줄어든 2020년 이후 최저치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대통령님 취임 후 가장 나빴을 때와 비교하니 역대급 성장이 가능했던 거죠.
언론이 반도체 업황과 수출실적을 과장하는 것과 별개로 대통령님은 제대로 된 숫자를 보고 판단을 해야 합니다. 도표만 봐도 최 회장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좋아진 게 아니라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2) 반도체 회사들은 보조금을 바랄까
최 회장은 "반도체 미세화가 상당히 어려워졌기 때문에 미세화 과정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생각하고, 공급을 늘리려면 라인을 더 건설하고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기술로 해결이 안 되고 캐펙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계속 부딪힌다"라고도 했습니다.
어려운 말을 썼는데 캐펙스(CAPEX)는 투자비용, 오펙스(OPEX)는 운영비용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기존의 팹과 설비를 이용해서 보다 미세한 공정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객사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반도체 팹을 새로 짓고, 최첨단 장비도 새로 사야 하기에 운영비용 오펙스에 더해 투자비용 캐펙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생산하는 반도체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최첨단 팹 하나를 새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금액이 최소 5조 원에서 최대 30조 원에 이르다 보니 재벌 기업들도 쉽사리 투자를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최 회장은 이러한 투자 부담에 대해 "전부 자기 돈으로만 계속 투자하는 형태가 잘 안 나오니까 전 세계 다른 곳에서도 반도체 생산을 자기네 나라로 끌고 가고 싶어 하고, 그래서 보조금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캐펙스가 많이 들어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이 장사가 잘되거나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쪽으로 자꾸 흐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일본, EU 등 각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줘가며 반도체 제조시설을 유치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과 같이 보조금을 줘서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걸까요? 최 회장은 기자가 보조금이 해외 투자의 직접적인 유인책이 되는지를 묻자 "솔직히 보조금이 많은 것은 시스템이 안 돼 있거나 인건비가 비싸다거나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다른 시스템은 아주 잘 갖춰져 있다"고 답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EU 등에서 반도체 생산시설에 보조금을 주는 건 보조금이 없다면 경쟁력이 떨어져 아무도 팹을 지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우리나라는 보조금 같은 유인책 아니더라도 이미 반도체 하기 좋은 나라라는 걸 최 회장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입니다.
이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죠?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거액의 보조금을 받을 걸 두고 제가 지난 반도체 특강 기사 "미국이 삼성전자에 9조 보조금 지원하는 진짜 이유"(https://omn.kr/28cm7)에서 설명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외국의 보조금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 언론들이 우리도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기사로 사설로 지속적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중에 저만 대통령님께 그러는 거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느라 많이 외로웠습니다. 대통령님은 이제 반도체 보조금과 관련된 이야기는 잊어도 되겠습니다.
3) 중국과의 관계, 이대로 좋은가
최 회장은 중국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최 회장은 "수출도 해야 하고 경제협력을 많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이고 판매처이고 협력처"라며 "경제 문제를 풀 때는 차가운 이성과 계산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맞는 말이라서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최 회장의 이 말이 제게는 대통령님의 취임 이후 중국에 대해 차가운 이성 대신 뜨거운 감성으로 접근했고, 국익을 계산하기보단 앞뒤 재지 않고 막무가내로 지르고 보는 바람에 관계가 파탄 나 버렸다는 지적으로 들리는데 대통령님은 어떻게 느끼는지요?
최 회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지난 분기 반도체가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그건 작년이 워낙 나빴기 때문이고 이 상황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2) 해외의 보조금이 많은 것은 시스템이 안 돼 있거나 인건비가 비싸서이고, 우리나라는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3) 중국은 우리의 중요한 고객이자 협력처이니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 2022년 7월, 경기도-산업부-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투자협약식 모습. |
ⓒ 경기도 |
2022년 7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산업통상자원부, 경기도와 함께 국내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을 위한 투자 의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그러자 그해 10월 대통령님은 방미 기간 중에 AMAT로부터 반도체 장비 R&D센터 신설 투자 신고를 받았다며 대통령님의 방미 성과의 하나로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전자는 업무협약이고 대통령님의 것은 투자 신고지만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하긴 누구의 성과인지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AMAT가 한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지으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중요하지요.
그 후 AMAT는 작년 8월, 오산에 연구개발센터를 위한 부지를 매입했는데, 불과 석 달 뒤인 11월에 국토부가 해당 부지가 포함된 지역을 신규 택지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던 AMAT의 연구개발센터는 부지를 빼앗기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될 판입니다. 뒤늦게 산업부는 대체 부지를 찾아 주고 있다고 하지만 애초 계획했던 일정에 맞춰 연구개발센터가 완공되는 일은 물 건너간 상황입니다.
▲ "AMAT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글. 그 상징이 아파트 건설에 밀리게 생겼습니다. |
ⓒ AMAT |
대통령님의 고교 동창이 주중 대사로 가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교를 하러 보낸 대사는 취임 후부터 드러난 부하직원에 대한 갑질 의혹을 해명하느라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은 탈중국 선언과 대만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중국을 적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의 말처럼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중요한 고객이자 협력처입니다. 그래서 최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여전히 중국을 자주 방문하며 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님이 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는 일이 생긴다면 기업인들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개선 노력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지금부터 29년 전인 1995년,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라는 말을 해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지금 상황에 비춰 보면 어떨까요? 기업 경쟁력은 2류를 넘어 1류가 된 지 오래인데, 정치력은 여전히 4류인 것 같습니다. 4류가 1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혹시 저와 같은 생각이라면 이제라도 4류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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