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 시대]⑩한국 노인, 선진국 중 가장 많이 일하는데 가장 가난하다
일해도 빈곤…"임금, 소득 낮아"
"노인 일자리 늘리고 연금제도도 개선해야"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동시에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 역시 우리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하는 노인은 많지만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기초연금제도를 개선해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고, 양질의 노인 일자리 확대와 은퇴 연령 상향 등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노인 빈곤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해도 가난" 노인고용률·노인빈곤율 모두 '최고'
'일하는 노인'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취업률(수입이 되는 일을 하는 노인의 비율)은 2014년 28.9%, 2017년 30.9%, 2020년 36.9%로 증가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고령자 통계'를 봐도 2022년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은 36.2%로, 전년(34.9%) 대비 1.3%포인트, 10년 전과 비교하면 6.1%포인트 올랐다. OECD 회원국 비교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일하는 노인 비중은 더욱 두드러진다. 통계청은 2021년 OECD 회원국의 평균 노인 고용률은 15.0%이며, 이를 상회하는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이어 노인 고용률이 높은 나라는 일본 25.1%, 스웨덴 19.2%, 미국 18.0% 등이었다.
이처럼 한국 노인은 선진국 중 가장 일을 많이 하는데도 가장 가난하다. 2020년 우리나라 66세 이상 인구의 소득 빈곤율(평균 소득이 중위 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 비율)은 40.4%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연금제도가 발달한 북유럽 등의 노인과 달리 한국의 노인은 93%가 '본인·배우자 부담으로 생활비를 마련(통계청)'하고 있어서 나이가 들어도 본인 자산 또는 노동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사하는 일자리와 시간당 임금 등을 보면 '일을 해도 가난한' 이유가 보인다.
취업 노인 2명 중 1명 '단순 노무'…폐지 줍는 노인 4만2000명
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 노인 중 2명 중 1명은 '단순 노무'에 종사한다. 2017년 취업 노인의 종사 직종은 단순 노무가 40.1%로 가장 높았고 이어 농림어업숙련(32.9%), 서비스·판매(10.8%) 순이었는데, 2020년에는 단순 노무 비중이 48.7%로 올라갔다. 서비스·판매도 16.9%로 증가했다. 농림어업숙련은 13.5%로 크게 줄었다. 임금도 차이가 있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8901원으로 전체 평균 2만2651원보다 3750원 적었다. 노인의 가처분소득은 전체 인구 평균의 68.0%에 그치는데, 여기서도 비(非)빈곤 노인과 빈곤 노인의 연 가처분소득은 각각 1797만원, 804만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의 경우 노인은 0.376으로 전체 인구(0.331)보다 컸다. 노인층의 소득 불평등이 전체 인구보다 심하다는 뜻이다.
'폐지 줍는 노인'이 일하는 노인의 빈곤을 잘 보여준다. 복지부는 올 초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폐지 줍는 65세 이상 노인은 4만2000명이며, 평균 일주일에 6일, 하루 5.4시간 폐지를 주워서 월 15만9000원을 벌었다. 시간당 소득으로 따지면 1226원으로,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9620원)의 12.7%에 불과하다. 폐지를 줍는 이유는 '생계비 마련'이 53.8%로 가장 많았고 '용돈이 필요해서(29.3%)'가 뒤를 이었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현재 노년층 상당수는 연금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 은퇴 후 다시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며 "이에 따라 노인 취업률은 계속 높아지지만, 임금이나 소득이 낮기 때문에 안정적 재취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복지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 일자리를 작년 88만3000개에서 올해 103만개로 14만7000개 늘리고, 예산도 2조264억원 배정했다. 증가 폭(31.6%)으로는 노인 예산 항목 중 가장 높다. 보육시설 봉사 등을 하는 공익활동형 보수는 월 27만원에서 29만원으로, 공공행정 지원 업무 등을 하는 사회서비스형은 월 71만3000원에서 76만1000원으로 올렸다.
"초고령사회, 기초연금 올리고 은퇴 연령 높여야"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연금제도 개선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위원회에서는 기초연금 수급 범위와 관련해 "소득 하위 70%인 현행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수급 대상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차등 급여해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는 현 체제에서 기초연금을 2027년까지 월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박 교수는 "경제 취약 상태에 있는 빈곤 노인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기초연금의 경우 현재 소득 하위 70%에게 32만3180원씩 나눠주는데, 하위 30%에게 70만원을 주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 취업률이 높아도 노인 일자리 자체가 저임금인 경우가 많고, 연금을 안 받는 노인도 너무 많다"면서 "기초연금 수급 범위를 현재 70%에서 100% 가까이 올리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연금을 올리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겠지만 노인 빈곤율을 낮추려면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은퇴 연령 상향 필요성도 제기된다. 대구시가 최근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의 연령'은 70.3세, '은퇴 희망 연령'은 76.3세였다. 그러나 직장인이 체감하는 은퇴 연령은 53.4세다(잡코리아·알바몬 조사). 현재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는 만 59세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64세로 높여 수급 개시 연령(65세)과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은퇴 연령 상향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은퇴 연령은 너무 어린 편"이라며 "한 번에 많이 늘리면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단계적으로 2년에 1세씩 늦추는 식으로 은퇴 연령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무할 수 있는 인력을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건 사회적인 낭비"라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우리 정부는 생산가능인구를 15~64세로 규정하는데, 이는 65세 이상의 36%가 일하고 있는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다"며 "초고령사회에서는 '계속 일할 수 있는 근로 권리의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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