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용배 (7) 죽을 결심한 내게 “꼭 목회자 돼야” 장모님 눈물로 회유

신상목 2024. 5. 9. 03: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81년 3월 25일은 국회의원 선거날이었다.

장인 장모님께 죄송하다고 쓰고 울산에 있는 누나에게 '미안하다. 동생은 먼저 간다'는 내용으로 유서를 썼다.

장모님은 죽으려고 결심한 나에게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금식기도를 할 테니 정말 내가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장모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직접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그러면 순종하겠노라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에도 계속 아내에게 무시당해
농약 가져다 유서까지 쓰고 자살 준비
1981년 박용배(왼쪽) 목사의 장인 이재훈(오른쪽) 장로, 장모 김쌍금(왼쪽 두 번째) 전도사, 아내 이경희 사모와 함께 처가집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하는 모습.

1981년 3월 25일은 국회의원 선거날이었다. 그날 나는 결혼식을 올리고 부산으로 3박 4일 예정으로 신혼여행을 갔지만 신부는 나를 심하게 거부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혼자 밖으로 나와 길을 걷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일찍 떠나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하나님께도 원망스러운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렇게 나를 무시하면서 싫다는 사람과 왜 결혼하게 하셨습니까. 저는 이 결혼 인정하지 못합니다. 결혼식 올린 것도 취소하겠습니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집으로 가자고 말했고 고속버스를 타고 동대구 터미널까지 오게 되었다. 주례 목사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자고 했더니 신부는 자기에게 말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하느냐고 화를 막 내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시는 말 시키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한 나는 홀로 버스를 타고 부곡 온천으로 가 어느 여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사흘간 금식하면서 나는 이 결혼을 취소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장모님은 일단 집에 왔다가 가라고 하셨다. 나는 우선 집에 갔다가 짐을 챙겨서 대구로 취직해 나오리라 마음먹고 처가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딸을 앉혀놓고 야단치고 있었다. 사위에게 잘못했다고 빌라고 윽박질렀고 아내는 부모님 앞에서 잘못했다고 했지만 방에만 들어가면 똑같은 반응이었다. 자신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말다툼을 했다. 아내는 내가 소름 끼친다고 멀리했고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처가 집은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창고에서 농약을 가져다 놓고 유서를 썼다. 장인 장모님께 죄송하다고 쓰고 울산에 있는 누나에게 ‘미안하다. 동생은 먼저 간다’는 내용으로 유서를 썼다. 밤새 고민하면서 날이 새면 죽으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장모님이 교회에서 기도드리다가 새벽 2시쯤 오셨다. 당신이 기도해 보니 내가 죽으려고 하는데 죽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네를 신학교에 보내 주의 종으로 준비시키려고 하시는데 왜 죽으려 하느냐며 나를 붙잡고 우셨다.

장모님은 죽으려고 결심한 나에게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장모님은 처음에 나를 양자로 들어오라 하실 때부터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완강하게 거부했다.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고 내성적인 성격에 말도 잘못하는 내가 어떻게 목회자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단 0.1%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장모님도 결혼하실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죽음 외에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겠다고 서약을 했기에, 당신은 23년간 살면서 고난이 많았어도 참고 살아왔는데 왜 나는 두 달도 못 견디고 죽으려 하느냐며 우셨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자살하려던 것을 일주일 후로 연기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금식기도를 할 테니 정말 내가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장모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직접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그러면 순종하겠노라고 말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